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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Sep 30. 2020

김지은입니다

위력에 대하여 - 보고 듣고 말하기 #26

글을 쓰는 일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글쓰기는 번거롭고 지난한 노동의 과정이다. 경험이나 생각을 글로 남기고자 마음먹은 이는 필연적으로 자신과 마주한다. 나는 왜 쓰는가에 관한 의구심은 첫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쓰는 이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글을 업으로 삼은 이에게 있어 그 의구심은 업을 지속하는 힘이기도 하다. 자문과 자답의 과정에서 종종 글은 중단되기도,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김지은입니다」는 글쓰기에 업을 둔 이가 쓴 책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이 책은 ‘나는 왜 쓰는가’가 아니라, ‘나는 써야만 한다’라는 절박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종종 그런 글과 마주할 때가 있다. 첫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고통이 끊이지 않았으리라 짐작되는. 그런 글을 읽고, 또 이야기하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김지은입니다」가 출간하고 2018년 벌어진 안희정 지사의 성폭행 사건이 다시 논란이 되었다. 김지은 씨가 겪은 고통에 공감을 표하는 이들과 그의 용기에 감사를 표하는 이들, 그리고 그의 저의가 수상쩍다고 말하는 이들, 또 그가 파렴치한 자라고 비난하는 이들까지. 그 모든 경우를 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봄알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고통스러웠고, 그럴수록 이 책에 관하여 말하는 일이 망설여졌으며 또 꺼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 관하여 글을 쓰기로 하였다. 좋아하는 친구가 「김지은입니다」에 관하여 내게 건넨 말 때문이다. 그는 내게 우리는 안희정과 김지은 씨 사이에 발생한 일의 온전한 진실에 관하여 알 수 없으며, 설령 김지은 씨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현명하지 못한 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성폭행이 벌어졌을 때 이를 공개하거나, 적어도 비서직을 그만두었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에게 발생한 일은 애석하나, 그의 행동은 현명치 못하다는 그 말이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역했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불행과 만난다. 어떤 불행은 우리의 선택에서 출발하지만, 대다수의 불행은 아무 이유 없이 주어진다. 길을 가다 절도를 당했다고 신고한 이에게 당신이 현명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이에게 어찌 그리 미련했냐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그가 걸린 병이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작업 환경상 지속하여 장기적으로 노출된 유해물질 때문이었다면. 그에게 위험을 인지하고도 왜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냐며 혀를 찰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한다. 느닷없이 고통의 수렁으로 떠밀린 이들을 보며 애석하다고 눈가를 훔치며 혀를 차다, 그러게 좀 현명하게 굴지 그랬냐고 말한다.      


나는 한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났고, 출신지, 종교, 정치관, 성적 지향 등 ‘나’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관하여 장황한 설명이나 해명을 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주변과 갈등하며 성장할 필요가 없었던 이들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무감한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겪을 리 없는 고통과 불행에는 더더욱 무감하다. 나는 남성이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에 관하여 온전히 알지 못한다. 머리로는 인지하고는 있으나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미루어 짐작하는 부분이 훨씬 클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사회 문제에 한창 관심을 가질 시기에 내 주 관심사는 학내 학습 환경 개선 문제였다. 여성주의는 바람직한 가치관 정도로만 인식하던 무렵 학내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였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나와 가까운 이들이었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몇 차례의 성추행 사건을 더 경험하였다. 사건이 공론화된 경우도 있었고,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몇 명의 협력자들 사이에서 해결된 경우도 있었다. 가해 사실 발생 후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만이 서로의 안전을 위해 공유하던 일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여러 차례 비슷한 사건을 주변인으로서 경험한 뒤에야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위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교수와 선배라는 직위와 위치가 어떻게 위력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았다. 피해자를 고립시켜 자신의 손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짓밟고, 설령 가해 사실이 공론화되어도 피해자를 미친 인간으로 매도하고 무시하는 과정을 보았다. 현명하지 못했다는 말이 분노스러운 까닭은 그 말이 실제로도 성폭행 피해자들이 숱하게 들어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 술자리에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 옷을 입지 않았다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면, 밤늦게 길을 걷지 않았다면, 싸한 느낌이 들 때 거리를 두었다면, 적어도 부서 재배치를 요청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개소리를 그럴싸하게 늘어놓는 이들 때문에 많은 피해자가 자신이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너와 내가 생각이 다르니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고 말하지 못하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 성폭력사건 상고심 판결 기자회견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안희정 성폭행 사건은 이미 3심에 걸쳐 유죄가 최종 확정된 사건이다. 나는 이 사건의 세부적 부분에 관하여 증명할 능력이 없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성범죄에 관하여 굉장히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대한민국 재판부에서 3년 6개월을 선고할 정도면, 범죄 사실과 그 심각성을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사건이라 생각한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가 고작 18개월 징역형을 선고받는 나라이니 말이다.


가해자 안희정은 범죄를 저지르던 당시 충청남도 도지사 신분이었으며, 현 정권 실세 그룹에서 속한 차기 대권 주자였다. 김지은 씨는 고발 이후 직장을 잃었으며, 한 사람으로서의 일상을 포기해야만 했다. 법정 다툼 내내, 심지어는 그 이후에도 추문에 시달려야 했다. 어떤 이들은 안희정 사건에 관하여 잃을 게 없는 여성이 잃을 것이 많은 남성을 물어뜯은 케이스라고 말하며, 성폭행 문제는 절대적으로 남성이 불리하다고 말한다. 가해자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뽑혀 나간 피해자를 향해 말이다. 


위력은 개인과 개인 사이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존재를 해명하거나,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던 이들은 간신히 가해자에게서 벗어난 피해자의 입을 또다시 틀어막으려 든다. 안희정 성폭행 사건을 기록한 「김지은입니다」가 읽기 고통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도 생생히 주변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내 곁을 맴돈 의문은 ‘나는 왜 쓰는가’가 아니라 ‘나는 쓸 자격이 있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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