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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 Apr 12. 2023

#일상 - 무제008

승리

어린 날 보던 텔레비젼 속에는 멋진 영웅들이 악당을 물리친다.

그 때 보던 만화들에는 꼭 고난과 함께 승리로 연결되는 뻔한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무척이나 열광하던 소년이였다.




어린 날의 승리라는 것은 뭔가 희열에 찬 성취와 같은 것이라 여겼던 탓일까? 왜 그렇게 열광을 했던 것일까.


시간이 지나 머리가 굵어진 어느 날 문득 ‘승리’ 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 단어를 써야 할 일 조차 없어지고, 지금은 다른 사람의 승리를 응원하는 관중 정도의 위치를 가진 느낌이다.

아니면 이긴다는 행위 혹은 결과를 갖지 못해서 승리라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까.




무엇에 이겨야 할까?

내가 이겨야 할 것은 있을까?


저 질문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감정은 애매모호함이였다. 딱히 이겨야 할 대상이 없어, 허 하다는 느낌이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다른 위치에서 살아간다. 경쟁을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볼 법한 복수극에 승리가 아니고서야, 승리 혹은 성공의 기준 또한 다다르기에 나와 견주어야할 대상의 부재로 승리라는 단어가 삶에서 잊히는 것 같다.


그냥 문득 어린 날에 우리가 알고 지내던 승리라는 단어가 다시 한 번 낯설어져 보인다.


근데 그렇다고 그것이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나는 매일 새벽 3~4시에 잠들고, 9~10시쯤 일어나 출근을 한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은 공부와 일하기에 쓴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니까 사실 딱히 무기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날 그렇게 열광했던 ‘승리’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던 그 감정이, 머리가 굵어진 지금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패배’ 라는 단어가 어김없이 머리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승리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지금의 나는 패배라는 감정을 갖고 사는 것일까?


뭔가 아쉽게도 패배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승리와 패배 그 단어 어디 중간 쯤 되지않을까?


어중간하다.


괜히 승리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차분하게 생각과 감정을 추스리며 내일을 또 살기위해 잠들려했건만, 어중간해진 기분 때문에 기분조차도 어중간해져버렸다.


정리가 되지 않은 찝찝함.


그냥 다시 서랍 속에 넣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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