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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24.07.14)

다정도 병인 양


아침에 눈이 떠진 관계로 북한산에 갔다. 전날 제주 학회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거의 자정이었는데, 이것저것 처리하고 두시 넘어서 눈을 붙였다. 네 시간 남짓 잤는데도 사실 몸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만 습하고 더운 날씨가 “이번 여름 산행은 오늘 한 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엄포를 놓아서 한동안은 못 갈 것 같다. 내려와서는 늘 그렇듯 예와손만두를 갔다. 419 카페거리 가게 되거들랑 추천한다. 담배를 한 대 태우며 맞은편 찻집을 보는데, ‘다정도 병인양’이라는 찻집이 있었다.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화에 월백하고‘만큼 쉽고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시조가 또 뭐가 있을까? 배꽃에 걸린 달빛은 희고 밤은 깊어 하늘 한 편엔 은하수가 걸린다. 별도 잘 보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달은 그믐달 정도가 지평선에 걸려 있는 모습이 적당할 것이다. 나뭇가지 끝에 걸린 봄의 마음을 소쩍새가 알겠냐고 툴툴대는데, 어딘가 츤데레스럽지 않나. 이내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한다고 순순히 인정하니, 화자가 퍽 가엾다. 전에 배우기로는 이것도 왕에 대한 충심이 어쩌고 뭐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하등 쓸모없는 해석이다. 그냥 정말 처절하게 예쁜 시조, 그게 다인 것 같다.


문득 궁금해져서 이조년의 생몰연도를 찾아봤는데, 1269년에 태어나 1343년에 죽었다. 현대인에게 그 시절의 밤하늘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700년의 밤하늘을 날아와 닿는 문장은 그 자체로 강한 주술과 같다. 이 땅에 잠 못 드는 이들이 하나같이 다정도 병이라고 뇌까리는 것을 보라. 이젠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다정도 병인 양” 한다. 700년 전의 애달프고도 달뜬 마음으로 서성대는 아이들도 어느 방구석에 누워 있겠다. 하지만 때론 어느 남정네의 자기혐오와 욕정에, 어느 아낙네의 자기 연민과 공허에, “다정도 병인 양”한다는 주술적 변명이 붙는다. 백골이 진토 된 이조년씨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런 부분도 이 위대한 작품의 가치 아닐까? 남정네도 되어봤고 아낙네도 겪어봤는데, 다 나름대로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다. 그러니 “다정도 병인 양” 아무렇게나 지껄여도 좀 봐주고 그래라.


아무튼 오늘은 굳이 주술적 변명이 필요하지는 않다. 지금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 그런 것은 아니고, 초저녁에 잠들었더니 푹 못 자고 다시 깨버린 탓이다. 오늘 산행에서 마신 녹차도 한몫했겠지. 오늘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마저 읽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담배를 한 대 태우러 나왔다가 오후의 심상을 아무렇게나 늘어놓았다. 어제 그 책을 읽다가 “광대 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허무주의자는 아니지만, 나도 광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나. 좀 커서 발에 물집이 자주 잡힌다. 담뱃불 끝에 걸린 여름의 마음을 광대 신발로 비벼 끄지만,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이 골목길에 몇이나 될까 싶은 밤이다. 아 그래, 다정도 병인 양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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