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3)
비행기를 타게되면 이륙과 동시에 잠들곤 하는데, 생각해보면 매번 비행기 시간을 못 맞출까봐 밤잠을 설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두시간 반 후에 알람을 맞춰놓고도 잠에 들지 못해 글이나 하나 써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적의 심장부에 침투하여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맞다 거짓말이다. 일본 서브컬처의 이해 정도로 포장하고 싶은데 그냥 덕질하러 간다. 그런데도 설레는 것인지 불안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뱃속을 기어다닌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뭘까 생각해 봤는데 일종의 원영적 사고가 필요한 것 같다.
오늘 퇴근할 때 원영적 사고에 확 꽂혀서 럭키비키를 입에 달고 다녔다. 도쿄로 여행을 가는데 낮 최고온도가 35도잖아? 여름에 휴가를 못갔는데 덕분에 여름휴가가 되었잖아? 이거 완전 럭키 비키잔앙 토요일 아침 황궁 런을 하려고 하는데 밤잠 설치고 여행가는 덕분에, 심야까지 안 설치고 빨리 잠들 수 있잖아? 이것도 완전 럭키 비키잔앙아 그렇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원영적 사고다. 쉬워 보이지만 주화입마에 빠지기 딱 좋은 컨셉이다. 이건 긍정적인 마음이 몸과 하나를 이룬 신검합일을 넘어, 눈빛이나 기세에도 긍정적인 마인드가 묻어나와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심검의 경지 아닐까? 하지만 이 지고한 여행을 할 수 있어 정말 럭키비키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인데,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라고 독백하는 주인공이다. 어찌보면 이 대사도 원영적 사고로 구성되어 있다. 극중 주인공은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한 불화를 전부 자신의 탓으로 만들기 위해 위악을 부린다. 그리고서는 혼자 학교 옥상에 주저앉아 ‘자신은 괜찮으니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잖아? 이거 이거 완전 럭키 비키잔앙’ 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그렇게 스스로를 돌보지 않을수록 가까운 사람들은 상처를 받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되고,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과 마주하며 같잖은 위악을 내던지고 인간이 된다. 그렇게 그는 청춘의 햇살을 마주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이라면 인간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 주는 존재라는 점이다. 어떤 관계의 존재 양식이든 인간은 서로를 잡아먹는 존재이며 상처를 교환하는 존재다. 그러니 받은 사랑에 이유따위 찾지 말고, 남긴 상처에도 변명따위 찾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면 그만 아닐까? 사는 대로 생각하면 그만일까? 와타시노 진세와 럭키비키데스까? 그래도 오늘 럭키비키 타령하며 징징대자 세상 바쁜 연구실 동료가 같이 코인노래방에 가줬다. 생각해보면 그 동료에게 나같은 언럭키가 또 없다. 갑자기 기분이 또 안 좋아졌다. 글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그냥 그만 쓰고 싶다. 그래도 잠을 자긴 자야 하는데 글도 쓰기 싫어졌잖아.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