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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홍시 Sep 02. 2021

잡문 126 - 사라진다는 것

2021.05.31에 쓴 글입니다.




새벽에 큰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년 전부터 암 치료 중이신 데다가, 최근에는 항암도 받지 않고 폐렴까지 겹치셔서 많이 힘든 상황이긴 했다.

며칠 전 보았던 사진 속의 외삼촌은 '먹고 싶은 음식 목록'이 적힌 쪽지를 꼭 쥐고 계셨다.

어제 잠깐 영상통화를 한 엄마의 말로는, 외삼촌이 아주 멀쩡히 대화를 하고 인사를 했단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마치 곧 일어날 것처럼 잠시 기력을 회복하기도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곧 나아서 퇴원할 것 마냥 보이다가 한순간에 숨이 멎는 것이다.

일흔의 외숙모는 장례식장에서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이제 마흔 남짓 된 자식들은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얼굴이 마스크 위로도 보였다.

상대적으로 죽음에 익숙한 어른들이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볼 때마다 미묘한 감정이 든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의 양이 적다고 하여, 슬픔의 양이 젊은이들의 그것보다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 성질은 다를 것 같다고 감히 짐작해도 될까.


외숙모는 어젯밤 외삼촌에게 계속해서 내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몇 번이고 이름을 물으시며 내 이름은 ㅇㅇㅇ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잊지 말아 달라는 얘기였을 테다.

외삼촌과 만날 때마다 즐거이 술잔을 기울이던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올렸다.

웃으면서 농을 하기도 했다.

아내인 외숙모도, 동생인 엄마도 모두 웃었다.

장례식장의 많은 이들은 각자의 슬픔을 저마다의 방식대로 풀어내었다.


명절 때나 만나던 큰 외삼촌이 돌아가셨다고 내가 크게 슬프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외할아버지를 빼닮은 외모, 용돈을 주시던 주름진 손뿐이다.

나 또한 가슴 한편은 찡하고, 또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정말로 어느 순간엔 깜빡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당연하면서도 이상한 일이다.


돌아가셨다는 말의 어원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태초에, 아니 그전에 우리가 존재했던 그 어딘가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곳은 필시 좋은 곳일 테니까.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건강히, 즐거이 지내시기를.

아빠가 올려드린 소주 한잔을 기쁘게 들이키셨기를.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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