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로 이번에는 <신과 함께>를 보고 왔습니다.
원작인 웹툰을 보진 않았으나 웹툰 자체가 워낙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어 영화화한 작품 역시 귀추가 주목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 진기한이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원작 팬들의 원망을 사기도 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신과 함께>는 적절한 각색을 통해 웹툰의 영화화를 성공적으로 실현시켰습니다.
오래간만에 각색이라고 부를만한 통큰 변화들이 원작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의식을 일관되게 통일시키며 작품을 전개해 나가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굳이 원작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만이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의 왕도가 아님을 잘 보여줬습니다.
무비 패스로 최근에 본 두 개의 작품들 <강철비>와 <신과 함께>가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훌륭한 CG를 뽐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지 CG만으로 점철된 작품이 아니라 적절히 주제의식과도 아우러진다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올해 연말은 아주 만족스러운 한국 영화들로 끝을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과 함께>는 원작의 어떤 부분과 다르고 또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각색을 했는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영화와 원작 웹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변호사의 존재입니다.
웹툰에서는 원귀를 찾는 자사들의 내용과 지옥에서 받는 김자홍의 심판이 아예 별도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진행되게 됩니다.
귀인 김자홍이 49일 동안 지옥의 7가지 심판을 받는다는 점은 똑같지만 그 과정에서 김자홍의 변호를 맞은 사람은 변호사 진기한이 아니라 지옥의 세 차사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변호사의 역할을 흡수한 인물은 강림차사(하정우)입니다.
강림차사는 훌륭한 언변으로 김자홍을 변호할 뿐만 아니라 원작의 내용처럼 원귀를 찾아 현세에 오기도 하는 등 만능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원작 웹툰을 보게 됐는데 영화만 볼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웹툰을 보고 나니 영화 내에서의 강림이 변호사와 차사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것이 좀 벅차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내에서 강림은 실제로 시간에 굉장히 쫓길 뿐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옥과 현세를 오가야 하기 때문에 원작에 없는 포탈을 연다든지 덕춘과 자신을 연결하게 되는데, 그러한 설정들이 다시 보니 좀 무리수 같아 보입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지옥의 구조에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순서대로 지옥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도산지옥-화탕지옥-한빙지옥-검수지옥-발설지옥-독사지옥-거해지옥 순서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망자가 지옥에 들어오는 순간 가장 가벼운 죄부터 가장 무거운 죄의 순서대로 개인별로 지옥의 순서가 편성됩니다.
따라서 망자는 자신이 저지른 가장 약한 죄로부터 시작하여 가장 무거운 죄까지 심판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며 그중 하나의 지옥에서라도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때까지 환생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원작에서는 각 지옥의 특성이 처벌의 종류로 밖에 구분되지 않았으나 영화에서는 볼거리를 더하기 위해 각각의 지옥의 외관뿐 아니라 재판장의 모습 그리고 각각의 지옥들을 다스리는 대왕들의 모습을 개성 있게 표현합니다.
이 부분이 저에게는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각각의 지옥들에 맞는 형벌과 재판의 모습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객들은 과연 다음 지옥에서는 어떤 대왕들과 어떤 재판정이 나올지 기대를 하게 됩니다.
특히 김해숙은 이번에도 초강대왕 역을 맡아 짧고 굵은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김해숙뿐만 아니라 지옥의 일곱 대왕들은 모두 단역으로 짧게 짧게 등장하는데 감독은 이 일곱 대왕 들을 모두 짱짱한 카메오와 우정출연으로 채웁니다.
변성대왕은 정해균이 초강대왕은 김해숙이 태산대왕은 김수안이 송제대왕은 김하늘이 진광대왕은 장광이 오관대왕은 이경영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위압감 있는 염라대왕은 이정재가 맞으면서 각각의 대왕들의 특징이 원작에 비해 잘 살아나게 됩니다.
또한 지옥의 심판과정 역시 원작과 차이를 보입니다.
원작에서는 각각의 지옥마다 특이한 심판과정이 있습니다.
가령 한빙지옥에서는 망자의 부모의 몸을 엑스레이로 찍어 박힌 못을 본다든가 검수지옥에서는 망자와 추를 양쪽 저울에 달아본다든가 하는 각 지옥 특유의 심판 방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일곱 지옥에서 모두 업경(죄를 비추는 거울)만을 사용하여 심판을 합니다.
업경을 보면서 판관들은 각 지옥에 해당하는 죄를 보여주고 차사들은 망자를 변호하며 대왕들이 최종 판결을 내게 됩니다.
원작과 다른 세 번째 부분은 원귀와 김자홍 간의 관계입니다.
원작에서는 김자홍과 군인 원귀는 생판 남남이지만 영화에서 김자홍과 원귀는 형제지간입니다.
김자홍이 소방관으로 일하다가 순직하게 되면서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심판이 시작되는데 동생 김수홍(김동욱)이 군대에서 박중위(이준혁)에게 생매장당하게 되어 원귀가 됩니다.
친인척 중 누군가가 원귀가 되면 망자의 지옥에도 불온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차사와 김자홍을 위협하는 귀신이 등장하게 되고 심판을 받기 위한 49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역시 더 빨리 흐르게 됩니다.
이에 따라 자신들 역시 환생을 원하는 차사들은 제한된 시간 내에 망자 김자홍을 환생시켜야 하고 설상가상으로 강림은 현세에서 자홍의 지옥에 영향을 미치는 원귀까지 찾아 없애야 하는 짐까지 지게 됐습니다.
아마 이것은 웹툰과는 다르게 러닝타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각색으로 보입니다.
이밖에도 차사들의 능력이나 성격, 지옥의 디테일한 부분들 역시 수정이 있었으나 가장 중점적인 각색은 위에 있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런 과감한 각색을 했던 것일까요.
각색들을 이유 없이 중구난방으로 했다면 오히려 원작 팬들의 비난만을 샀겠지만 영화 <신과 함께>는 원작 웹툰에는 없었던 새로운 주제의식을 향해 영화가 흘러가도록 만들기 위해 각색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주제의식은 바로 효(孝)입니다.
뻔한 주제의식입니다.
하지만 유교 사상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가장 강력하고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지옥의 구조가 바뀌는 것도 원귀와 자홍이 가족관계가 된 것도 바로 이 효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이 영화는 김자홍이 귀인이라는 정보를 관객들에게 제시함으로써 그가 다른 망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즉 관객들로 하여금 일종의 안심을 하게 만듭니다.
이 김자홍이라는 인물은 죄가 상대적으로 덜하고 곁에 능력 있는 차사들까지 있으니 무사히 지옥을 빠져나갈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에서 펼쳐지는 블록버스터를 관람하면 되겠구나 라고 관객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옥을 통과하고 죄가 점점 무거워 짐에 따라 그리고 강림이 원귀와 접촉하게 되면서 영화는 조금씩 김자홍의 천륜의 죄를 노출시킵니다.
자홍은 왜 노모에게 거짓 편지를 쓴 것일까?
자홍은 왜 영양실조가 걸린 어린 동생을 때린 것일까?
자홍은 왜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을까?
이 질문에 도달했을 때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맞습니다.
결국 귀인 김자홍은 자신과 차사들 그리고 스크린 너머 관객들까지 배신한 천륜의 죄를 저지른 인물이 됩니다.
하지만 그때 동생 수홍이 어머니의 꿈에 현몽하여 15년 동안 쌓여 왔던 가족들의 말 못 하였던 갈등을 해결하고 자홍은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부모가 살아계실 때 잘하라'라는 뻔하디 뻔한 말을 천륜지옥의 모래와 염라대왕의 대사를 통해 통렬하게 보여줍니다.
자홍이 아무리 어머니의 용서를 받았다한들 천륜지옥의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지나간 시간이라는 것은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단지 김자홍의 지옥 여행기나 차사들의 원귀 사냥기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제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자체가 제가 좋아하는 사후 세계의 주제를 담고 있어서 재밌게 본 것도 있지만 오래간만에 제대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다만 수홍의 죽음이 된 총기 발사 사건은 차라리 웹툰에서 설명하는 이유(멜빵끈이 끊어져서)가 더 개연성 있어 보입니다.
달리 말하면 원작에서도 크게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원일병(디오)에게 영화에서 굳이 그렇게 큰 비중을 줘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또 해원맥(주지훈)의 성격이 원작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긴장된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캐릭터인 것은 맞지만 영화에서 혼자 연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져 다른 캐릭터들과 잘 섞이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