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oooong Feb 04. 2022

건들건들

암팡지고 꾀바르게 사느라 웃음 배웅한 뒤 그늘 깊어진 얼굴들아,


건들건들 간들간들 근들근들, 애써 졸음 물리치며 흔들리는 몸짓이요, 살랑살랑 몸 비틀며 불어오는 바람의 가벼움이다. 봄볕 낮게 드리운 따스한 날, 시 한 편이 눈에 띄었다. 


건들건들


꽃한테 농이나 걸며 살면 어떤가
움켜쥔 것 놓아야 새것 잡을 수 있지
빈손이라야 건들건들 놀 수 있지
암팡지고 꾀바르게 사느라
웃음 배웅한 뒤 그늘 깊어진 얼굴들아,
경전 따위 율법 따위 침이나 뱉어주고
가볍고 시원하게 간들간들 근들근들
영혼 곳간에 쟁인 시간의 낱알
한 톨 두 톨 빼먹으며 살면 어떤가
해종일 가지나 희롱하는 바람같이


(이재무『즐거운 소란』천년의시작)


이 시 한 편이 있기에 시집 한 권 찜한다. 이재무 시인이기에 감히 소문낸다. “앞으로는 시다운 시를 지양하고 형식에서 자유로운 시를 활달하게 쓰고 싶다.” 시인의 다짐이 끌린다. 시집의 목차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묘한 즐거움이다. ‘따글, 자글하다’ 제목에 잠깐 멈춘다. ‘동사(動詞)를 위하여’ 짧은 시와 함께 축배를 들 생각이다. 우연한 산보에서 만날, 세월을 거슬러 추억할, 나와 마주할, 면면이다. 한 편 한 편 마주하며 곱씹을 생각에 잠시 간들간들 바람 불어 간지럽다. 


‘암팡지고 꾀바르게 사느라 그늘 깊어진 얼굴’에서 나와 대면/외면하고, ‘경전 따위 율법 따위 침이나 뱉어주는’ 유쾌한 소란에 어깨 들썩인다. 사실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얼추 비슷한 품새나마 그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음을,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암팡졌던 적, 꾀바르게 살았던 적, 그렇게 살지 못한 것 같은데 늘 그늘 깊었으니, 웃음 배웅을 제대로 못한 탓 아닐까. 마흔 넘어 건들건들, 쉰 접어들어 간들간들, 예순이면 근들근들, 가볍고 시원한 몸짓이 시인 닮았으면, 철딱서니.


움켜쥔 것 놓아야, 빈손이라야, 한다. 꽃한테 농이라도 걸라치면 꽃 이름이라도 기억해야, 새것도 좋지만 더러 익숙한 낯익음에 마음자리 열어 보여야, 빈손에 다른 이의 손 얹히면 그 따듯함은 또 오죽할까. 암팡진 다부짐도, 꾀바른 재바름도, 소란(巢卵)이 될지 모를 일.


시집에 실린 시 한 편 미리 훔쳤다. “명사에는 진실이 없다/ 진실은 동사로 이루어진다/ 신이나 진리를 명사로 가두지 마라”(‘동사를 위하여’ 전문) 시집 몇 권은 선물로 나누리라.


(2022. 2. 4.)


신앙하다
철학하다
예술하다


억지스럽지만 그래도 그다지 어려워 보이진 않습니다. 종교 안에서 삶을 성찰하고 나누고, 그렇게 나와 나의 이웃을 내 신앙에서 만나는 일, 신앙합니다. 사유의 학문으로, 관념의 학문으로, 회의의 학문으로, 철학의 존재가치는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역시 삶의 방편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돌이켜보는 기준이 되기도, 타인과 더불어 세상을 향하는 도구로, 철학합니다. 예술, 전시와 관람이 낮은 범위가 아닌 타인을 향한 감정의 동요와 관심, 참여까지 움직임을 전제로 동사형 예술과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예술합니다. 세상 삶, 살이, 모든 걸 동사형으로 불러도 그다지 어려울 일 아닌 것이지요. (2021. 3. 23.)

작가의 이전글 어서 내려오너라, 자캐오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