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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oooong Aug 09. 2016

남노송동 365번지 텃밭, 상추를 심다, 사랑이 자라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의 이야기 -4

남노송동 지역의 어렵고 힘든 가정을 집집이 방문하며 우리 이웃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는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집집이 새로운 주소로 바뀌면서 우리 이웃들의 집을 찾는 것은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슴 먹먹해지는 사연과 초라한 환경, 선뜻 방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건네는 것조차 망설임의 모습이 역력합니다. 어쩌면 낯선 이에게 당신의 가슴 아픈 사연을 꺼내놓은 것조차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남노송동 365번지, 이곳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잡음과 함께 들려오는 고장 난 TV로 외로움을 달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장 난 TV, 빛바랜 가족사진, 지붕이 내려앉아 창문을 열기조차 힘겨운 상황, 어쩌면 이런 모습은 초라하고 부끄러운 공간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눈길을 돌립니다. 그곳에는 잘 가꾸어진 화단이 부러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꽃 이름에 대해 궁금해하고 잘 익은 앵두를 나눠 먹고, 무화과 열매 익을 때쯤 다시 찾아뵙겠다는 이야기로 그렇게 서로의 관심과 마음을 열어놓습니다. 제 눈에는 가지런히 심겨 있는 화초들의 모습에서 그분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따뜻한 공간, 정말 아름다운 공간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여쭙습니다. 화초의 이름과 가꾸는 방법, 그리고 그 화초의 일부분을 내어주시는 나눔의 사랑까지 큰 행복을 가득 안고 돌아섭니다.


그분의 삶의 경험과 나눔을 배우고 돌아섭니다. ‘무엇을’ 주려고 나섰던 제 부끄러운 마음을 훈훈하게 열어주는 그분, 그렇게 다시 생각을 돌립니다. 그분의 진심이 담긴 화단, 그 공간에 마음이 머무르니 대화가 시작되고, 마음을 나누게 됩니다. 그 생각에 잠시 머뭅니다. 남노송동 365번지, 그 아름다운 공간을 더 아름답게 나누는 방법, 그것은 그 화단을 같이 가꾸고,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진실한 만남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우리 이웃들과 그런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은 간절함이 생깁니다. 뭔가를 주고받는 불편함이 아닌 함께 나누고 함께 어우러지는 소박한 모습, 이웃사촌의 모습이 지금 우리 삶의 참모습은 아닐까 기쁜 마음, 즐거운 상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가족과 할머니의 첫 만남은 텃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부시장에서 산 상추 모종을 들고 방문한 걸음,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등장에 할머니의 반가움이 더 큰 듯합니다. 건네주시는 음료수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아이들은 할머니의 손을 마주 잡고 재롱을 피웁니다. 얼굴이 제법 익숙해질 즈음 할머니와 우리 가족은 마당 구석 텃밭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할머니가 내어주신 호미로 텃밭의 흙을 일구는 아이들은 마냥 신 났습니다. 텃밭이 제법 정리되자 할머니께서는 아이들에게 상추 심는 법을 천천히 일러주십니다. 꼭꼭 눌러 심은 상추에 수북하게 물을 뿌려주고 나니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기로 합니다. 상추가 얼마나 자랐을지, 아이들은 또 얼마나 자랐을지, 그렇게 아이들에게는 할머니가, 할머니께는 어린 손주가 생깁니다. 시간이 지나고 소박한 정이 쌓이고 쌓일 즈음 텃밭 상추는 사랑을 가득 품고 자라고 있을 테지요. 그때는 삼겹살을 챙겨서 할머니를 찾아뵈려고 합니다. 함께 키우고 설레며 바라보던 텃밭의 상추, 그 공간에서 우리 가족과 할머니의 소박한 정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서로를 기억하고, 서로를 기다리고,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삼겹살 구수한 냄새를 기다려봅니다. 그때는 우리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랐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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