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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t Festival Aug 07. 2019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되었다

남편 머리채 잡고 비명 지르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가봐요

"나 너무 무서워."

"걱정만 하면 뭐해. 맘 편히 먹어."

"나 너무 무섭다고."

"으이구. 차라리 내가 낳고 말지."


이것이 남편과 내가 임신 3개월부터 반복해서 나누었던 대화이다.


내 남편은 평균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절대 배려심이 없거나 무심한 사람이 아닌데도 출산에 대해서 만큼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공감을 해주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이리라.


솔직히 내 몸에서 아기가 자라고 나오는 것은, 정말 당사자 아니고서는 공감하기 힘들다. 가장 친한 친구도 출산 경험이 없다면 전혀 공감할 수 없고 경험이 있는 친구도 금세 잊기 십상이다.




"난 소중하니까."라는 모토 하에 설거지도 꼬박꼬박 고무장갑을 끼고 하고 겨울에는 피부가 거칠어질세라 마스크와 장갑을 꼭꼭 착용하며 너무 힘든 건 하지 말자는 주의로 집안일을 꾸려온 나인데. 그런 내가 "맘카페"에 가입해서 출산 후기를 읽고 있노라면 뒤통수에 머리털이 곤두섰다.


굴욕 3종이라는 내진, 제모, 관장에 대해서 엄마들이 써 놓은 글을 세세히 읽지 않아도. 손을 쑥 넣어 검진을 한다던지. 간호사가 제모를 한다던지, 관장약을 먹고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던지 하는 것을 상상하면 과연 이것을 해야 하는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 마리 짐승이 되는 순간 아기가 나온다."라든지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온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들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냥 농담일 뿐이다.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보지만 남자들은 그것 조차 없다. 그래서 남자들이 피를 보면 더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런 위인들(?)이라 피갑칠을 해야 하는 출산에 대해 공감을 해달라고 하면 "멀뚱"할 뿐인가 보다. 오히려 배가 아프다고 할 때 어떻게 병원으로 데려갈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이지 병원에 가서는 의료진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뿐인 것이다. 자연주의 출산에서조차 남자는 뒤에서 와이프를 안고 있어 주는 게 다 아닌가. 그러면서 "차라리 내가 낳을 수 있으면 내가 낳겠다"는 어차피 실현 가능성 없는 말을 재잘거리는 것이 얄미웠다. (그렇다. 쿨하지 못한 나는 아직까지도 남편의 공감 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나 얄밉던지.)




아무튼 그런 두려움에서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점차 '될 대로 되겠지. 다들 낳는데 나라고 못하랴.'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또 내가 고생해서 낳는 것을 옆에서 두 눈뜨고 지켜보면서 남편이 눈물을 뚝뚝 흘려주기를 내심 기대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예정일이 가까워져도 아기는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유도분만에 당첨되었다. 배가 갑자기 아플까 봐 긴장하고 있던 우리는 그냥 날짜를 정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입원 가방과 조리원 입소 가방을 싸야 하는 데, 아기 배넷저고리나 회음부 방석이나 산모용 패드 등을 챙기면서 이것을 왜 나 혼자 해야 하나 싶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힘들고 어려운 것을 묵묵히 견디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도 먼, 꼭 가족과 친구에게 의지하고 꼭 티를 내고 마는 미천한 천성의 소유자이다. 그런 내가 무릎 떨리게 무서운 출산 길에 가는 가방을 혼자 싸고 있으려니 세상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 무렵 회사일과 개인일 두 가지를 하느라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이 짠했지만 동시에 왜 하필 이 시기에 일을 받아서 하고 있는지 화딱지가 나기도 했다.

(회사들이여 막달에는 예비아빠 직원에게 칼퇴를 보장해 주세요.)




입원하는 날을 엄마와 시엄마께 알리고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 분들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 설명하나 친절하게 해 주어서 위로가 많이 되었다.(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주는 것은 역시 의료진뿐이군요.)


굴욕 3종 중에 제모도 관장도 하고 내진도 했는데, 그 무엇도 굴욕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가 봐도 의료행위일 뿐이었고 불편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크지 않았다. 역시 인터넷의 카더라 글들을 믿는 게 아니었다.


보통 유도분만은 1박 2일 정도 걸린다고 해서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촉진제를 투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기 심박수가 떨어졌다. 의료진이 달려왔고 심박수가 회복되어 다시 촉진제를 투여했는데 곧 심박수가 또 떨어졌다. 초음파를 다시 하고 담당 의사가 오더니 나는 자궁에 혹도 있고 아기가 탯줄도 감고 있으며 게다가 아기가 전혀 내려오지 않고 아직 저 위에 자리 잡고 있으니 제왕절개를 오후에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헐. 제왕절개는 생각도 안 했는데.


재빨리 친정엄마에게 카톡과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아놔. 딸이 출산하러 병원에 와 있는데 전화기를 붙들고 마음 졸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는 의외로 속 편한 엄마였나. 친구들에게 카톡을 했다. 상황 설명을 하니 의사이고 출산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괜히 고생 말고 수술해라"라고 했다. 진통을 하다가 제왕 절개하면 아플 거 아프고 수술까지 한다며. 때마침 의사가 오더니 제왕절개 하는 게 낫겠다고 해서 냉큼 하겠다고 대답해버렸다. (골반 늘린다고 임신 4개월부터 요가를 했던 나는 무엇을 위해 나비 자세를 그렇게 열심히 했던가.)


수술 침대에 누워 병원 형광등의 조도를 감상하면서 수술방으로 실려갔다. 남편과 안녕하고 나 혼자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자니 슬슬 긴장이 되었다. 사실 나는 걱정으로 만들어진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고 상상을 하며 걱정을 키우는 피곤한 스타일이다. (고백하자면 20대에 혀를 깨문 것이 잘못 아물어서 혓바닥 돌기 제거(?) 수술을 1만 5천 원 주고 5분 동안 했는데 그때 간호사님께 "손 안 잡아주세요?"라고 해서 간호사님의 어이없다는 눈총을 받았다.) 마취를 하고 누워있는데 의료진들이 나를 옮기고 준비를 하는데 어째 하반신에 아직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배를 누르는 느낌도 나는 것 같았다.


'헉. 나 느낌 나는데 지금 칼질하시려는 거 아냐?'

그래서 다급하게 "선생님! 저 느낌 나는데요? 느낌 나는데요? 지금 배 만지시죠?"라고 호들갑을 떨어대자 선생님이 "원래 느낌 나요."라고 차분히 대답해 주셨다. (죄송해요. 저도 제왕절개 처음이라서요.)


잠시 후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렇게 저렇게 하시더니 "**아~"라고 우리 아기 이름을 크게 부르셨고 0.5초 후에 "응애~응애~(딱 좋은데 나 왜 꺼냈어요?)"하는 누가 들어도 뭔가 억울하다는 그런 울음을 터뜨리며 우리 아들이 세상으로 나왔다.




그때 왠지 눈물이 났다. 그건 뭐 안도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아니고. 뭔가 우주와 나와 아기가 연결된 것만 같은. 아기가 정말로 배 안에 있었구나. 그리고 세상으로 나왔구나 하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그런 눈물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정확히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들어오고 의료진이 "이유~아빠랑 똑같네~!"라고 한마디 덕담(?)을 해주고 아기를 안겨 주셨는데 한껏 투덜거리는 퉁퉁 부은 정말 작은 얼굴이 내 가슴에 놓였다. 의사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주라고 지시(?) 하셔서 남편과 나는 태명으로 아기 이름을 불러주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또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라고 하셔서 참으로 분위기 안 나고 무미건조하게 생일 축하노래도 불렀다. (이런 거 손발 오그라들어 못하는데 시키니까 얼떨결에 해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아기와 남편은 수술방 밖으로 나갔다.


아침 7시 반쯤 병원에 도착해서 점심 시간 좀 지나니 모든 과정이 끝나 있었다. 수술은 총 1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은데 12시간 진통하면서 남편이 내 옆에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여보야~힘내.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라고 맹세(?)하길 내심 기대했던 나의 예상은 보란 듯이 뒤집어지고. 아주 빠르고 깔끔하게 나의 출산 여정은 끝이 났다.




그리고 제왕절개 후에 마취가 풀릴 때의 통증은.

그 옛날 90년대 초등학교 다닌 사람들은 기억하는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컴퓨터 게임에서

왕자가 위, 아래에서 나오는 커다란 칼 벽이 열고 닫히는 장애물을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지나가면

그 칼에 허리가 잘려 게임 오버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계속)

철없이 간지(?) 나게 살아온 인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육. 알. 못. 엄마의 솔직한 육아 분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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