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나침반이 될 것인가, 게으름의 칼날이 될 것인가?
얼마 전, 생성형 AI를 팀원처럼 활용해야 한다는 스탠퍼드 교수의 강연 영상을 접했다. 인공지능의 놀라운 효율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영상에 달린 한 고등학생의 댓글이 제 시선을 사로잡았다.
AI와 관련하여 한 고등학생은 깊은 우려를 표하며,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적으로 퇴화시키고 문맹자로 만들 수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이 학생은 학교에서 AI 없이는 짧은 글조차 작성하지 못하고, 학습지를 읽고 이해하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또래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겠지만, 이제는 AI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니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고 바로 AI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댓글 작성자는 AI의 효율성과 편리성이 오히려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고 있으며, 특히 AI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아직 성장하지 않은 뇌를 퇴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과정이 AI에 의해 회피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생활에서의 상호작용 능력까지 저하될 수 있다는 염려를 나타냈다.
결론적으로, AI가 단순히 정답만 알려주는 방식은 인간이 문제를 생각하고 학습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빼앗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효율성이 곧 지능적 퇴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이 전환기에는 개인의 태도에 따라 10년 뒤 지능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우려에 나는 충분히 공감했다.
하지만 역시나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해 보고자 했다.
나는 인공지능이 문해력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짧은 정보 소비', 즉 숏폼 콘텐츠의 유행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문해력과 사고 지속력의 문제는 예견되어 있었다고 보았다.
숏폼 콘텐츠가 유행하고 있을 때,
1분짜리 숏폼 영상에도 '요약 좀'이라는 댓글이 달리고,
그 요약 댓글이 설명이 3줄이 넘어가면, 또다시 '요약 좀'이라는 반응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긴 영상이나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내용에는 '해석 좀',
그리고 그 해석마저도 다시 '요약 좀'이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정보 소비 패턴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사람들의 편리성 추구 심리를 더욱 극단적으로 가속화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우리의 지능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을까?
나는 그것이 인공지능을 자신의 의도대로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결과라고 단호히 생각했다.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인공지능이 내놓는 정답만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과연 그 답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혹은 터무니없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었을까?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인공지능에 어떤 부분을 요청해야 할지, 현재 상황에서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와 같은 디테일한 질문들은 해당 분야에서 충분한 학식을 쌓은 뒤에나 비로소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지식이 쌓인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은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강력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은 지능 저하의 흐름이 아니라, 분명 더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도구의 진화를 경험했다.
수기로 모든 회계를 처리하던 사람이 계산기를 쓴다고 바보가 되었을까?
계산기를 두들기던 사람이 엑셀을 배운다고 지능이 퇴화했을까?
엑셀을 시작한 사람이 더 고차원의 함수를 익힌다고 해서 무능해졌을까?
도구는 진화했지만, 도구를 활용하는 인간의 판단력은 오히려 더 날카로워질 수 있었다.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공지능 그 자체보다는 인공지능을 쥐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그 위험성이 전적으로 달려있었다. 난 그래서 인공지능의 사용이 곧 저지능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런 인공지능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무지함으로 흘러가지 않게 책을 읽고자 하는 결심, 스스로 성장하고 싶다는 강한 자각이 있는 사람에게 인공지능은 결코 '지적 퇴화'를 부르는 기계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고를 확장하고 깊이를 더하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은 우리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이미 향하고 있는 방향에 속도를 더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도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태도와 의지에 따라 비속어를 좀 보태서 '딸깍충', 즉, 게으름이나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깊은 통찰의 인간을 만들기도 할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책임이 명확히 개인에게 주어진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