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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한 쓰레기

꿈속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어느 날.. 낮에도 더 이상 햇살에 더위를 느끼지 않는 어느 날이었다..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늘 있던 그 침대의 위치.. 책상의 위치.. 화장대의 위치.. 충전기의 위치..

너무 익숙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 방 한가운데서 난 눈을 떴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항상 방정리도 깔끔하게 하던 아이였는데.. 방은 지저분해져 있었다.. 항상 배터리가 없다며 충전기를 찾던 넌 오늘도 역시나 충전기를 꽂지 않고 잠에 들었을까.. 가야 할 곳을 잃어버린 충전기와, 만나야 할 충전기를 만나지 못한 패드가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으면서 서로 다가가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난 그 둘을 말없이 이어준다..

그때 방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침대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아이의 어머니셨다..

얘는 방도 안 치우고 어딜 갔냐며 주섬 주섬 쓰레기를 주으신다..

그러더니 침대 뒤에 숨어있던 나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그동안 잘 지냈냐고..
괜찮았냐고..

어찌할 바를 몰라 쭈뼛대며 나온다..

아 저 어기 있는 거 아셨냐고 물어본다..

그 덩치가 어디 가려지겠냐고 피식 웃어 보이셨지만 그 짧은 웃음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말없이 쓰레기 몇 가지를 주었다..

같이 찍은 사진 몇 장..

같이 나눈 선물 몇 개..

아마 버리기 애매해서 버리지 못했을 그런 것들..

그것들을 한 손에 꽉 쥔 채 다른 것들을 찾아 손에 더 움켜쥔다..

열어놓은 대문 밖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그 아이겠지..
날 마주치기 싫어하겠지..
서둘러 먼저 가보겠다는 인사를 어머니께 드리고 방을 빠져나온다..

인사하다 늦어졌을까..
난 역시나 그 아이와 만나 어색한 기류를 마주한다..

그렇게 매몰차게 날 떠나버린 그 아이였지만..

제발 배신의 대가로 평생 불행하라며 저주하고, 만나면 꼭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 복수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었지만..

마주하니 사과부터 나온다..
아.. 미안..
빨리 가려고 했는데..
미안..

그저 사과만 남긴 채..
난 또 돌아서서 계단을 서둘러 내려온다..
패배자처럼 또다시..

스치는 순간.. 깊게 눌러쓴 모자 속 그 아이의 얼굴엔 생기도.. 웃음도.. 기쁨도 없어 보였다..

1층에 내려와 단지를 빠져나와서야 드디어 난 속도를 줄였다..

공원 한가운데 서서 즐겁게 친구들과 탁구공을 가지고 깔깔거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 한가운데 서서, 그저 멍하니 가지고 나온 쓰레기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난..

그렇게..
꿈속에서도..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쓰레기조차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난 잠에서 깼다...

어쩌면 나는,
그 아이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잊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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