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는 넘치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있나요?
우리는 SNS로 세상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가 뭘까? 더 편리하게 연결될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연결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SNS 친구는 늘어나지만, 그중에 내가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내 콘텐츠에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지만, 정작 타인과 진심으로 '좋아하는 관계'를 맺고 있을까? 이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표면적인 관계를 넘어 진정한 공명을 이룰 수 있을까?
최근에 우연히 Jay Shetty Podcast에서 인간행동 연구자이자 강연가, 베스트셀러 작가인 바네사 반 에드워즈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학생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매력적인 외모? 뛰어난 학업성적? 우월한 신체능력? 물론 그런 것들이 작용할 수 있지만 핵심적인 키는 아니다.
바로 '좋아하는 친구 리스트'가 가장 길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즉, 타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려는 내면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비대면과 온라인 소통이 익숙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좋아하는 친구 리스트를 길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숏폼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댓글을 남기기란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좋아요를 누르고 지나가기보다 정말 인상 깊었던 점을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 내가 소비하고 있는 콘텐츠에서 느껴지는 좋은 점들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연습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타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이 작은 연습은, 놀랍게도 우리의 시선을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습관이 발현될 수 있지 않을까? 화면 너머의 창작자에게 보냈던 존중의 시선은, 어느새 내 앞에서 묵묵히 일하는 분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서비스를 제공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늘 잊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돋받고 하는 일인데 감사인사를 왜 해?"
정말 그럴까? 받는 급여의 차이나, 하는 일에 따라 귀천을 따지고 당연하게 여기는 게 맞는 걸까? 시간제 일이 싫다며 모두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몇몇 직업에는 유난히 해당 직업에서 이슈화되는 사건들로 인해 직업 자체를 비하하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안 계시다면?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는 많은 서비스들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사회를 보면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단점을 찾아내어 깎아내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무엇일까? 그저 심리적으로 그 사람과 동등해졌다는 정신승리? 그러면 그다음은?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른 사람의 진짜 장점을 칭찬해 준다면 어떻게 될까? 나의 진심 어린 칭찬에 그 사람이 미소 짓고, 그 긍정적인 파동은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의 하루를 밝힐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 우리는 그렇게 할 때 서두에서 언급한 좋아하는 친구 리스트를 늘리는 일이 될 것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장점을 봐주고 칭찬하고 노력한다면,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 남을 깎아내리는 것보다는 좋은 영향이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행위가 나를 포함한 모두를 고립시키는 '벽'을 쌓는 일이라면, 장점을 찾아주는 행위는 분명 우리,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따뜻한 '다리'를 놓는 일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결국 외로움은 연결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려는 나의 시선이 멈추었을 때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오늘,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다리'하나를 놓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시작이, 이 고립된 시대를 끝내는 가장 위대한 실천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