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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단지, 나의 본모습

지금 서스팬스 소설을 하나 완성해서 이북으로 유통등록을 해놓았다.

그런데 소설의 캐릭터들을 설정하고 심리변화를 묘사하다 보니 그런 의문이 들었다.


사람은 힘들 때 나오는 모습이 자신의 본모습이다.


과연 이 말은 진실일까?



극 중 캐릭터 한 명은 낯선 환경에서의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그리고 현실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을 통해 과거의 학교폭력 방관자로 느꼈던 죄책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중학교시절 자기가 학교폭력의 대상이 될까 봐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며 학창 시절 친구의 괴롭힘을 방관하고 모른 척 지나갔던 아픈 기억. 과연 그때의 마음이 그 괴롭힘 당하던 친구를 향한 진심이었을까?


하지만 소설 속, 그녀의 현재 행동은 과거와 달랐다.


과거와 다르게 침묵하지 않겠다는 열망이 지금 가장 깊이 자리한 진심이었다. 그래서 다시 마주한 현재에서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더 나은 결정을 위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이 캐릭터는,

자신이 학교폭력의 대상이 될까 봐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며 모른 척 지나갔던 모습이 진심일까?

아니면 끝까지 침묵하지 않고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게 진심일까?


다시 한번 앞의 질문을 깊이 생각해 봤다.


정말 사람이 힘들 때 나오는 모습이 자기 본모습일까?


극한의 상황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자포자기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단 하나의 것.

그것이 비로 그 사람의 진짜 핵심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육아를 하는 엄마의 상황을 생각해 봤다.


엄마가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아. 진짜 키우기 싫다."라고 표현했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 산후 우울증을 겪는 산모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 힘들 때 내뱉은 저 말이 그 아이 엄마의 진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말은, 지금까지 키워왔고 앞으로 키울 미래가 모두 부정당하는 것이지 않을까?


'키우기 싫다'라는 말은 극한의 피로와 절망 속에서 터져 나온 자포자기한 외침일 뿐이지 그게 엄마의 가장 핵심적인 본심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 힘든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엄마들의 진심이지 않을까?


물론 회피형 인간의 예를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보다 진심을 지키는 힘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았을 텐데,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져서,

어쩌면 감당할 수 있음에도 감당하는 것이 연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결과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난 힘들 때 나오는 행동이 그 사람의 진심이라는 말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이야기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럼에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했던 마지막 순간이 정말 우리의 진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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