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인간을 바라보는 한 번의 시선
이 글은 회피형 사람들을 옹호하거나 두둔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쉽게 던지는 “회피형”이라는 단어 뒤에 어떤 감정의 구조가 숨어 있는지, 한 번쯤은 들여다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말한다.
"걔는 딱 회피형이야. 감정에 절대 책임지지 않아."
"다가가면 멀어지고, 진심을 말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요즘은 회피형 인간과의 경험담도 자주 눈에 띈다. 업무상 만난 사람, 호감이 있었던 사람, 혹은 연인이었던 사람. 이야기의 전개는 대부분 비슷하다.
한때 뜨거웠던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관계의 끝에서, 혹은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인연 앞에서 우리는 종종 그렇게 단정 지으며 상대를 비난하거나, 우리 자신을 납득시키곤 한다.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한 듯한 그들의 뒷모습에 우리는 분노하고, 때로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회피형"이라는 사람들은 이런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1)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거나 특히 취약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워해 억누르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2) 관계가 깊어지고 친밀해지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고, 책임이나 헌신이 요구되는 장기적인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3)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갈등에 직접적으로 대면하기보다, 대화를 피하거나 침묵하거나 자리를 뜨는 방식으로 회피한다.
이런 특징들을 찾아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특징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거나 특히 취약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워해 억누르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리는 경황이 특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자기 계발서나 여러 감정관리 서적들을 보면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던지 내가 부정적인 기분이 들더라도 그걸 표현하지 않는 것이 어른의 기분 관리방법이라는 글도 자주 접하게 된다. 또한,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꺼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특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특징과 세 번째 특징은, 회피형이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회피형을 옹호하고 그들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글은 절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 두 특징의 그런 무책임한 행동은 어쩌면이라고 좋게 봐주기가 좀 어렵다.
정말 이 사회를 아무런 진지한 관계없이 혼자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언젠간 누군가와 진지하고 두터운 신뢰를 쌓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회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나 문제를 마주했을 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물리적 회피를 동반한 무책임한 행동을 한 것이라면 더더욱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회피형들이 회피하는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례들을 읽다 보면 분명 그들도 처음에는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 회피형 사람들의 경우 타인을 해치려는 의도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한다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학습된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그들은 모든 상황을 회피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은 정말로 피하고 싶었던 게 감정 자체는 아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서, 감정을 올바로 전달하고 맺고 끊음을 경험하지 못해서 오는 행동의 결과일까?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좋은 결말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하게 되는 행동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마음을 들키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라기보다는, 그 마음을 들키고 난 후에 또 버려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관계가 끝나고 난 후에 남겨질 아픔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미리 끊어내려고 하는 행동이지는 않을까?
오히려 회피형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널 싫어한 게 아니야. 그냥… 네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무서웠던 거야. 내가 널 아프게 할까 봐, 혹은 네 사랑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내가 널 떠난 게 아니야. 내 안의 오래된 상처들이 먼저 날 떠났어. 그 상처들이 너무 커서 너에게 더 깊이 다가가지 못했을 뿐이야. 텅 빈 나를 네가 알아챌까 봐 두려웠어.
미안해. 너의 진심 앞에서 나는 너무 초라했고, 나를 지키는 법밖에 몰랐어.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잡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야.
맞다,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는 아직 진짜 회피형 인간을 만나지 못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부분들도 결국 사회적 현상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이라고 한번 더 틀어서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에 고민해 봤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면,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혹은 그런 징후가 보였을 때, 회피형이라고 단정 짓고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기보다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연고 한 번쯤은 발라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