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국제기구 인턴십 도전기 4
6개월의 인턴십이 끝나기 일주일 전. 상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희, 혹시 1주일 더 일해줄 수 있니?” 잘못 들었나 싶어 “왜?”라고 물으니 평소와 다르게 눈을 못 마주치며 말했다. “보고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랄 것 같네.”
완전히 내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남미의 여유로운 문화가 일에서도 드러났다. 일정대로 했으면 6개월 안에 보고서까지 충분히 마무리 짓고도 남을 프로젝트였건만 다른 일에 치여 미루고 미루다 보니 결국 연장근무까지 부탁한 것이다. (별 일 없는 내가 눈치껏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싶다...)
이 뒤로 아무런 계획이 없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인턴십의 월급은 한국 정부에서 주기 때문에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은 없다. 즉, 무료봉사다. 다만, 그냥 봉사는 억울했다. 인턴을 하며 하나라도 더 얻어가고 싶었다. 그동안 맡은 프로젝트를 주제로 국제기구 인턴 업무의 꽃, PT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남은 건 겨우 1주일이고, 그 안에 보고서를 마무리 짓기도 빠듯하다는 이유다. 게다가 PT를 하면 상사의 일이 더 늘어나게 된다. 그녀로서는 좋아할 이유가 없다.
포기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주는 일 받아하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강하게 어필했다. 정색하며 절대 안 된다고 하던 상사도 결국 “한국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고집이 세니?”라며 “그래, 한번 해 보자.”는 답을 줬다. 잠시 신났으나 생각해보니 PT는 1주일 안에 한국인 인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용도, 스페인어도, 전적으로 상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PPT를 만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적을 받았다.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일을 하며 아무런 실수가 없었다. 일을 잘해서가 결코 아니다. 실수가 생길 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아무도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키는 일만 따박따박해내면 됐었다. 상사와의 트러블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PT를 준비하며,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깐깐했구나를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깐깐함이 기뻤다. 드디어 뭔가 배우고 있구나, 더 이상 무료하지 않는구나! 옳다. 4시 반이면 눈치 안 보고 칼퇴하던 내가, 마지막 1주일은 자발적으로 야근을 했다. 하루는 전 직원 중에 가장 늦게 퇴근을 했다. 경비원은 남은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방금 막 입구를 잠그고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업무 시간에는 PPT를 만들고 수정하고, 상사의 지도 아래 PT를 연습했다. 인사말부터 마무리까지, 스페인어 악센트와 ppt 디자인도! 모든 것에 지적을 받았다. 중간중간 “너의 스페인어는 0점이야” “이 PPT는 0점이야”는 얘기를 했는데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말을 알아듣는 스스로가 신기했고 지적을 받는다는 사실이 기뻤다.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인턴 나부랭이에게 불평 없이 이 모든 과정을 도와주는 책임감 있는 상사를 만났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집에 와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계속했다. 지적받은 대로 보고서를 수정했고, 해당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커피를 진하게 타 마시고 대본을 짰다. 늦게까지 pt를 연습했다. 지난 6개월간 7시간 이상 꼬박 잤는데, 마지막 1주일은 평균 3시간을 잤다. 갑자기 얼굴에 10개 가까이 트러블이 생겼다. 뾰루지조차 기뻤다. 그저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이 기쁜 건 아니었다. 무료하던 참에 일이 생겨서? 이것도 좀 부족하다. 아마 하고 싶었던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모습이 기뻤겠지.
기뻤지만 불안함은 늘 있었다. 30분 넘는 시간을 스페인어로, 그것도 원어민들 앞에서 혼자 떠들어야 한다. PT 연습하며 녹음본을 들을 때마다 핸드폰 속 낯선 내 목소리에 미칠 것 같았다. 이대로 하면 망신만 당할 게 뻔했다. 친구들에게 걱정 카톡을 계속 보냈다.
나 이거 괜히 한다고 했나 봐.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말할까?
그런데 나는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고 싶었을까.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나. 6개월 동안 능력과 언어의 부족을 절절히 느꼈음에도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미친 듯이 스페인어를 공부하다가도, 그저 매일매일 자괴감에 빠져 “어차피 열심히 해도 티 안 날 거, 여유나 누리다 가자”는 심보가 발동됐다.
상사는 발표 직전까지 PPT를 손 봐줬다. 세미나실에 함께 가서 동선과 마이크, 모든 것을 체크했다. 여전히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발표 시간은 10시. 10시 10분쯤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내려온다. 10시 20분, 사무총장님이 도착했다. 긴장을 풀어주려 했는지 "원희씨와는 축구한 기억이 가장 크게 남네요. 가기 전에 그 빨간 축구화 나한테 꼭 팔고 가요." 농담을 던졌다. 간단한 소개 멘트 후 마이크가 내게 넘어왔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안녕하십니까 사무총장님, 안녕하세요 동료 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OLADE에서 6개월 동안 일한 것 중에서 오늘은 다음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잘 외워둔 오프닝 멘트를 자연스럽게 말했다. 조금 떨려서 더듬었으나, 직원들은 서툴고 낯선 이국의 악센트로 발표하는 한국인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봤다. 덕분에 긴장이 금세 풀렸고 준비한 40분이 4분처럼 지나갔다.
발표가 끝났다. 아. 난 아무리 생각해도 무대 체질이다.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 말이 더 술술 나온다. 연습 때보다 훨씬 잘한 걸 스스로 느꼈다. 재수 없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실전파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이 습관이 살면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많은 칭찬을 받았다. 직원들은 내 발표의 주제가 흥미로웠다며 ppt를 보내달라고도 했다. 사무총장님은 재밌게 들으시더니 이 주제를 더 깊게 연구해서 12월에 있을 에너지 위크에 내놓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긴장이 풀리고, 지난 일주일을 돌아봤다. 정말 힘들었다. 일단 Comfort zone에서 벗어났다면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스스로 벗어나기를 택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상황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대학교 때 전공 공부가 재미없던 이유는 흥미 없는 주제를 타의에 의해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PT를 마쳤고 국제기구에서의 6개월이 끝났다. PT를 준비하는 과정도, 결과도 모두 좋았으나 상사에게 일이 늘어나버렸다. 사무총장님이 몇몇 시나리오를 추가해보면 어떻겠냐고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간 것을 그녀가 캐치한 것이다. 잔뜩 스트레스받은 표정으로 “일 양이 2-3배로 늘어났네”라고 했다. 이래서 하지 말자고 말린 건가. 내가 상사였어도 나 같은 직원이 있었으면 빡쳤을 듯... 하나 더 배웠다. 사회생활은 눈치다. 상사에게는 두고두고 미안하고 고맙겠지만 인턴이기 때문에 가능한 실수였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상사가 될 텐데, 인턴 시절의 나를 결코 잊지 말아야지. 상사가 나를 어떻게 도왔는지 기억해야지. 후배들의 가능성을 믿고 도와주는 사람이 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