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엇을 믿고 나를 뽑았나

공대생의 국제기구 인턴십 도전기 3

by 무대가리

시험에 합격은 했으나 걱정이 많았다. 고작 이 회화 실력으로 현지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을까? 나 스페인어 못하는 거 뻔히 봤으면서 뭘 믿고 나를 뽑아 준거지? 그 이후, 도서관에서 DELE B2책을 빌려 청해 파트를 공부했다. 경험상 회화를 익히기 전에 말을 알아듣는 일이 중요했다. 일단 들려야 대답할 거리가 생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견 기간 내내 자괴감 든 적이 많았다. 나보다 스페인어를 더 잘하는 분이 왔다면 일도 잘하고 더 알차게 보냈을 텐데. 내가 그 사람들의 기회를 뺏은 건 아닐까. 다른 기관으로 파견된 인턴 동기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생각이 더 깊어진다. 누구는 무슨 포럼, 세미나에 다녀왔네? 누구는 직원들이 생일도 살갑게 챙겨주네? 누구는 현지인 친구들 사귀어서 잘 놀러 다니네? 다들 즐거운 때를 누리고 있구나. 이들 중에 내가 스페인어 제일 못 할 텐데. 꿈을 하나 이루었지만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의욕이 없을 때마다 전임 인턴들의 수기를 읽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잘나 보였다. 스페인어과 출신들은 탁월한 언어 능력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업무를 처리했다. 한국 회사와의 계약 체결에서 통역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분들도 있다. 지금 내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나와 같은 전기전자공학과 출신의 인턴은 전기 분야에 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를 상사로 만났다. 그 밑에서 중남미 농촌 전력화 프로젝트 등,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경영학과 인턴은 에너지에 대해 잘 몰랐지만, 옆 사무실 문을 자주 두드려서 물어물어 업무를 완수해내는 끈기가 있었다. 상사에게 강력하게 요청해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나는 언어도, 끈기도, 경험도, 강하게 어필할 깜냥도, 아무것도 갖춘 게 없었다.


수기를 읽으면 늘 의지가 타올랐다. 내 능력이 지금은 미천하지만, 인턴이 마칠 때쯤에는 뭐라도 남기리. 그럴수록 의지와 정 반대로 굴러가는 현실은 더 암담해졌다. 일거리가 없으면 사람들이랑 친해지고라도 싶은데 대화가 잘 안됐다. 점심시간 외에는 다른 직원들과 대화할 일이 없었다. 단순 반복 업무만 할 때도 “일은 할 만하니?” 묻는 상사의 질문에 “재밌네. 많이 배우고 있어.”라는 가식적인 대답밖에 못했다. 짧은 스페인어로 일이 재미없다느니, 전공 관련된 일감을 달라느니,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더 머리 아팠다. 한국과 중남미를 잇는 최고의 ODA 전문가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는 어느덧 한국에 두고 온 것 마냥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KakaoTalk_20180722_225451213.jpg 어느 주말. 공원에서 호떡 팔다가 만난 프리허그 해주는 사람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임 인턴들처럼 업적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게 보내려면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은 언어가 시급했다. 브런치에 글을 잠시 쉬겠노라고 선언했다. 업무가 끝나고도 두 시간 가량 회사에 남아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집에 가봐야 늘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식 퇴근은 네시 반이고 다섯 시면 모두가 떠나는 사무실에서 일곱 시까지 공부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운 좋게 만난 소수의 현지 친구들과 약속을 계속 잡았다. 어느 날은 친구의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갔는데 스피드 퀴즈를 하고 있었다. “너 스페인어 할 줄 알아?”라며 악의 없이 묻는 질문에 오기가 생겨 잘 한다고 답했다. 아시아 인들은 다 스페인어 못하는 줄 아니? 그러나 그들의 놀이에 낄 수 없었다. 스피드 퀴즈.. 하... 모두가 즐거운 한 때에 나는 웃지 못했다. 다들 빵 터지면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이유는 몰랐다. 안 웃으면 다음부터는 안 불러줄 것 같았다. 자괴감이 바닥을 뚫고 들어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도 공부의 일환이겠거니.


파견 4개월 차. 땅을 뚫고 내려가던 자존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임기 초부터 진행해 오던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영역은 아니었기에 전적으로 내가 맡고 있었다. 3달 동안 찾고 계산하고 편집한 결과물로 보고서의 초안을 작성했다. 초안을 갖고 연구국 국장님과 미팅을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국장님의 아르헨티나식 발음을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영어로 이야기했었다. 이제는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로 내 의견을 피력할 정도까지 올라왔다.


국장님은 내 보고서를 훑어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하던 결과물이 나왔다며 수고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물론 수고한 것에 합당한 칭찬을 하는 것이 이곳 문화이다. 수정해야 할 사항들은 날카롭게 지적했지만 상처가 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수정한 보고서는 내년 통계집에 그대로 실을 수 있겠다고 했다. 미팅을 하고 나니 국제기구 인턴으로서 중남미 에너지 발전에 작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보람이 생겼다.



여전히 면접관분들께 묻고 싶다.

“왜 저를 뽑으셨나요?”

아마 그분들도 내 스페인어 실력이 꽝이라는 것쯤은 알았을 거다. 언어 실력을 커버할 만한 조금의 가능성을 봤기에 뽑지 않았을까. 그게 무언 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새내기로서 나의 포부가 틀리지 않았음을 몸소 증명하고 싶었다.


전임 인턴들 만큼의 아웃풋을 내기는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애초에 저들과 나는 출발선이 다르다. 나는 바닥부터 시작해서 합격했으니 무엇이든 더 열심히 하되 겨우 6개월의 시간 동안 업적 남길 생각은 하지 말자. 겸손한 자세로 배우자. 아직 갈 길이 멀다.



4화에서는 이곳의 '자유로운 사내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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