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즐거운 시험공부는 처음이었다

공대생의 국제기구 인턴십 도전기 2

by 무대가리

[[자기소개서를 쓴다는 건, 단순히 취업 준비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느라 평소에 갖지 못했던 성찰의 시간을 반강제로 부여받는 기회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소서의 항목 하나하나가 고통이다. 쓰는 내내 “난 그동안 뭘 한 거지?”라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공상은 많은데 회사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 억울했다. 나름 스펙보다 스토리 중심의 인생을 살았는데, 난 그 스토리를 내가 좋아서 살아 본 거였다. 회사에 적합한 인재임을 보이기 위해 만들어 낸 건 아니었다.]]



중남미 지역기구 인턴 파견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 블로그의 후기를 모조리 읽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의 전임 인턴 수기도 모두 읽었다. 합격자들은 대부분 DELE B2 이상을 가지고 있다. 혹은 스페인어권에 거주한 경험이 있거나 서어서문학과 출신이다. 공대생인 나는 자격증은커녕 배낭여행으로 고작 두 달 있었던 게 전부다. 자신은 없었지만 절박했다. 믿는 구석은 딱 하나. 공문의 ‘에너지 관련 전공자 우대’라는 구절이었다.


내가 가진 장점을 어필해야 했다. ‘4개 국어 하는 공대생’, ‘중남미 기술 ODA 전문가’를 키워드로 작성했다.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중남미, 이를 개발할 기술이 발달한 대한민국, 둘 사이를 연결하는 ‘에너지 분야의 체 게바라’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좀 과한 느낌이 있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배낭여행 때 남미 대도시의 빈부격차를 보며 저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었다. 스펙으로는 90프로 탈락이지만 10프로를 믿어야 했다.


1주일 밤낮, 자소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이 기관에서 일할 수 있다면 정말 전문가가 될 것만 같았다. 이런 미래를 상상하며 항목들을 채워나가니 그 시간이 괴롭지만 즐거웠다. 제출하고서는 반포기 상태였다. 어차피 될 확률도 낮은데, 하던 아르바이트나 계속하면서 칠레 워홀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합격이었다. 신기했다. 최종 합격 때보다 서류를 합격했을 때 더 기뻤다. (나중에 찾아보니 서류 전형에서는 자격 요건만 맞으면 대부분 합격시킨다고 한다.)

KakaoTalk_20180717_222506781.jpg 고산지대라 그런가, 늘 구름이 가까이 있다.

곧바로 필기시험을 준비했다. 필기는 중남미 기본 상식 및 지역기구 정보+번역 (영-한, 한-영, 서-한, 한-서)의 두 파트로 이루어졌다. 기본 상식은 지난 학기 들었던 두 수업(라틴사, 라틴문화)의 ppt를 복습했다. 중남미 각 나라의 국기, 대통령, 화폐, 수도, 최근 동향을 도표로 만들어서 밥을 먹으며, 길을 걸으며 외웠다. 지역기구 상식은 블로그와 외교부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서 암기했다.


문제는 번역 시험이었다. DELE B1도 턱걸이로 합격한 내가, B2수준의 번역을 할 수 있을까? 믿는 구석은 하나 있었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겁다는 사실이었다. 때마침 친구들의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었다. 도서관에서 함께 사흘 밤낮을 지새며 공부할 이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BBC MUNDO, TELESUR 같은 중남미 언론사의 기사들을 마구잡이로 읽고, 모르는 단어를 체크하고, 외우고를 무한 반복했다. 오랜만의 시험은 두통을 달고 살게 했지만 그 어떤 시험공부도 이렇게까지 재밌게 해본 적은 없었다.


시험 당일. 중남미 상식과 지역기구 파트는 최대한 빨리 풀었다. 모르는 것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찍고 넘겼다. 남는 시간을 모두 번역에 투자해야 했다. 영-한, 서-한 번역은 ‘엘살바도르의 homicide 비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이런 식으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를 남겨둔 채 번역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Caribbean'을 ’Carribean'으로 잘못 쓴 게 생각났다.


가장 자신 없었던 한-서 번역은 의외로 재밌었다. 숫자가 들어간 어려운 문장은 시간이 모자라 과감하게 뺐다. 대신 나머지 문장들은 알고 있는 가장 쉬운 단어들로 의역을 했다. ‘빈부격차’라는 단어를 몰라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인 사람들 사이의 돈 차이’ 이런 식으로 풀어서 번역했다. 사흘 안에 공부한 것을 모두 쏟아내고 온 느낌이어서 후련했다.


필기 전형의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거의 10분 단위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러나 오후 여섯 시까지 메일은 오지 않았다. 떨어졌구나 싶었던 찰나, 6:10쯤에 메일이 왔다.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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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떨어지면 뭘 준비하지?”라는 마음으로 도서관 지하에서 혼자 궁상맞게 허쉬 쵸코를 마시다가, 뭐라도 다시 시작해 볼까 싶어 열람실에 들어가 책을 빌렸으나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 엎드려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날따라 두통이 심했는데 필기 전형 합격 메일을 보자마자 온 몸에 힘이 쫙 풀렸다.


면접까지는 3일의 시간이 남았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스페인어 면접도 본다는데 어떡하지. 뭘 어떡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간절함을 쏟아부어 죽을힘을 다해 달려드는 거지. 그러면 결과와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에 즐겁게 몰두하는 모습 그 자체로.


한국어 면접은 자소서를 꼼꼼하게 읽으며 예상 질문을 짜고 답변을 준비했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어서 과거 해당 기관의 인턴 수기를 다시 정독했고, 전공 교수님께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온 버프가 있어 영어 면접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문제는 스페인어 면접. 이건 예상 질문과 답변을 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회화라고는 겨우 음식 주문, 자기소개 정도밖에 못했다. 다행히 중미에서 10년 넘게 살다 온 동아리 후배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전력분야 ODA 전문가가 되고 싶은, 중남미를 사랑하는 청년 이원희입니다.”


나는 정말이지 간절했다. 라틴아메리카에 가고 싶었다. 그 간절함이 면접에서 빛을 발했다. 굳이 답변을 달달 외우지 않아도 평소에 꿈꾸고 있던 내 모습, 중남미에 대한 생각, 이 프로그램에 합격해야 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말하면 그만이었다. 거기다가 나는 ‘실전파’라는 쇠뇌, 근거 없는 자신감이 면접장에서 긴장을 멎게 했다. 면접관님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적당한 손동작과 함께 또박또박 답할 수 있었다.


스페인어 면접은 약간 말아먹었다. 예상지 못한 질문이 나왔는데, 문법이 틀리더라도 그냥 아는 단어를 최대한 조합해서 말했다. 다행히 영어 면접에서 여유를 되찾았다. 모든 질문이 끝나고 각자 마지막 어필을 해보라고 했다.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ODA 전문가는 많습니다. 중남미 전문가 또한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발전한 기술을 가지고 중남미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는 극히 드뭅니다. 저는 제가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중남미 에너지기구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고 잘 활용하겠습니다.”


일주일 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며 메일을 확인했다.

합격이었다.


To be continued.


(필기시험, 면접 질문 등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신 분은 댓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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