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 스토리의 기억
초등학교 5학년 때 메이플스토리가 처음 나왔다. 그때 나는 현실 친구들보다 게임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사춘기가 늦게 온 탓에 오학년이 되고 육학년이 되면서 스스로를 꾸미기 시작한 친구들이 낯설었다. 저학년 때 서로 집도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친했던 아이들과 멀어졌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나는 참 지질했다. 동네 미장원에서 자른 스포츠머리, 통통한 볼, 체육 시간에 모두가 축구를 할 때 스탠드에 쭈그려 앉아있던 아이. 한창 키가 크는 남자들이 교실 뒤에서 말뚝박기를 하며 쉬는 시간을 보낼 때, 구석에서 조용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원카드를 하던 아이. (심지어 잘했다.)
그리고 집에 오면 게임 속 세상에 빠져 있던 아이. 나는 회원수 60만 명이 넘는 메이플스토리 카페의 운영자 중 한 명이었다. 당시에 ‘에피소드’라는 게시판이 유행했다. 메이플스토리 캐릭터와 배경화면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편집해서 올리는 곳이었다.
사실상 레벨 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접속하면 게임 친구들을 불러 모아 에피소드를 찍었다. 나는 감독이었다. “OO누나, 점프하면서 웃는 표정 지어.” “OO형은 엎드린 채로 ‘널 사랑해!!’ 대사 하고.” “오케이, 컷!! 이번 에피소드에는 어떤 노래가 어울릴까?”
한껏 스크린샷을 찍어서 촬영을 마치면 곧바로 포토샵을 켜 편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찍어낸 작품들이 3달 동안 50개가 넘는다. 학교에서 따분하게 있는 시간보다 오늘 구상한 에피소드를 어서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임 속 세상이 훨씬 더 설렜다.
에피소드들은 ‘공포특집’, ‘3부작 멜로’, ‘포스터 패러디’,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지금 보면 개연성도 엉망이고 오그라 들게 뻔하지만, 어쩐지 무슨 내용이었을지 궁금하다. 댓글에 ‘명작추천’이 50개가 넘으면 ‘명작에피소드’라는 Best 게시판으로 옮겨지는데, 내 작품은 초딩들 사이에서 꽤나 잘 먹힌 작품들이 많아서 대부분 ‘명작에피소드’ 게시판으로 옮겨졌다.
당시 나는 ‘벨로칸’ 서버에서 에피소드를 찍고 있었다. 벨로칸은 신생 서버로, 에피소드 활동을 하는 유저가 거의 없었다. 유명한 배우도, 감독들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에피소드 시장을 개척해 낸 것이다. 이런 활동력을 인정받아 나는 에피소드 게시판 운영자가 되었다. 에피소드계 마이너 서버 최초의 운영자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운영진으로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권력의 맛을 알게 된 나는 운영자가 되자마자 고향이었던 벨로칸을 버렸다. 유명한 작가님들이 많이 계셨던 ‘플라나’와 ‘아케니아’ 서버로 족적을 옮겼다. 이를테면, 미술을 공부하겠다며 한국을 버리고 프랑스 파리 같은 곳으로 유학을 간 것이다. 당연히 벨로칸 사람들은 나를 배신자로 여겼다. 유명 인사들과의 사교에만 집중하니, 새로 옮긴 곳에서 좋은 에피소드가 많이 나올 리 없었다. 재미도 작품성도 없는 에피를 내놓아도 사람들은 권력의 그늘 아래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잘난 줄 알았다.
어느 날, 나는 탄핵을 당했다. 같은 운영진 중에 동갑이어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작당하고 모의를 한 것이다. 나를 미워하던 사람들을 알음알음 모아, 내가 운영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퍼뜨렸다. 공개처형은 당시 유행했던 다음 카페 실시간 채팅방에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를 욕했다. 누군가는 초등학생이 운영진이 돼서는 안 된다며, 나이 상한제를 두자고 했다. 나는 순식간에 태도가 바뀐 그들이 무서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죄송합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카페를 탈퇴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짧았던 권력의 맛은 씁쓸하게 끝이 났다.
때마침 다른 게임을 시작하기도 했고, 포토샵을 다루는 취미도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입시에 전념하느라 싹 잊어버렸다. 아무래도 너무 찌질하니 공부라도 잘해야 되지 않겠냐는 절박한 심정이 작용했나 보다. 그때는 포토샵의 단축키를 모두 알고 있었고 합성과 각종 디자인이 뚝딱이었지만 지금 나는 포토샵을 하나도 다룰 줄 모른다.
오랜만에 메이플스토리 카페에 들어가 봤다. 나의 게시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디 [벨로칸]천국의계란vV. 다만 에피소드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 어린아이가 들였던 정성은 모두 엑스박스로 바뀌어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파란, 엠파스, 드림위즈, 프리챌, 네띠앙, 이런 포털사이트들은 망했고 그 안에 있던 소중한 자료들이 모두 사라졌다. 엑스박스로만 남았다.
어쩐지, 초라하게 남겨진 엑스박스 뒤로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 정확하게는 무언가에 몰두했던 그 시간들. 하염없이 점심시간과 퇴근, 주말만 기다리며 일주일을 아등바등 버티고 있는 직장인은 빨간 엑스표 뒤에 숨겨진, 모두의 기억 속에 잊히고 사라진 그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이제는 무엇에 몰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