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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Sep 11. 2020

2년 차 사원, 직장 생활에 대한 단상

을 가장한 그냥 일기

 한 달째 재택근무 중이다. 이 정도 여유면 딱 좋을 것 같다. 내 역할이 어느 정도 있으면서 퇴근은 제시간에 할 수 있는 것. 근데 회사를 다니면 사람이 수동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 개척한다기보다, 잘 쳐내는 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배우는 게 있지만 회사를 나가서도 쓸모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 삶을 돌아보면 이렇게 수동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직장에서도 시키는 일만 하기보다는 나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제조업, 그중에서도 영업이라는 낯선 환경을 마주해서 그런 거라고 변명한다.


보통 낯선 환경을 마주하면 설렘과 두려움이 51:49로 공존해서 괴로워도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천천히 성장하고 있겠지만 좀처럼 이 업계와 업무에 설레지 않는 게 문제다. 다시 근본적인 고민으로 돌아간다. 업계 전망이 밝으니, 여기 남아있으면 몸값도 올라갈 거고 커리어 개발에도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내가 바라던 중남미로의 진출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떠나야 하나, 남아야 하나. 사람들은 적어도 2년, 3년은 해보라던데 과연 그렇게까지 버틸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 일은.


보다 더 근본으로 들어가서.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계속할 생각이 있는가.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삶의 2/3 가량을 차지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그런데 아직 나는 아무런 대안이 없지 않은가. 대안을 찾아보려고는 했나. 아 그러기엔 너무 게을렀다.

얼마 전에 이제 성인이 된 예전 과외 학생 인스타에 밤새 술 마신 사진이 올라왔길래, 대학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스물네 살로 돌아가고 싶다.”

“ㅋㅋ그땐 인생에 고민이 많았는데”

“근데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회사원) 그런 고민 하나도 안 했을 텐데.”

“그러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땐 무슨 얘길 그렇게 했더라?”

“기억이 하나도 안나...”

“아마 그때도 스무 살 때가 좋았다 그러고 있었겠지”

“결론은, 인생은 항상 좋았다! 근데 지금은 쉽지 않다..”

“맞는 듯..”

대화에... 이 늘어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다.


그래도 느슨했던 일상에 긴장감이 생겼다. 오랫동안 할까, 말까 간을 보다가 드디어 스페인어 시험을 신청한 것이다. 회사 업무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지만 덕분에 퇴근 후 시간이 좀 더 가득 채워졌다. 분명 이런 꽉 찬 느낌을 바랐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불안함이 가신 건 또 아니다. 영 모르겠다. 왜 이렇게 매일매일 채워지지 못한 느낌 속에 사는지. 원래 직장인은 다 그런 건지. 그렇다면 나는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헤매야 하는 건지.



예전만큼 글이 안 써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배가 부르다. 이 배를 조금은 꺼트릴 필요가 있다. 배부른 상태에서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소재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삶이 단조롭고,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무척 불안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재정의 풍요로움에서 오는 안정감과 정규직이라는 일자리가 꽤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무언가 더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다. 미래를 도모하지 않은 채 이것에 익숙해질까 봐 두렵다. 아 별게 다 두렵다. 나는 언제까지고 글을 쓰고 싶고, 매번 더 좋은 글을 발행하고 싶은데 배부른 현실은 글 같은 거 쓰지 않아도 괜찮지 않냐며 유혹한다.


최근에는 SNS 중독이 심각했다. 인스타그램에 하루에 한 번 꼴로 글을 써서 올렸다. 다양한 글을 선보일 수 있었지만 좋아요와 댓글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거의 5분에 한두 번씩 인스타를 들어가 보곤 했다. 머리가 아팠다. 이런 것들이 인생을 잠식하지 않도록 잠시 쉴 필요가 있었다. 보이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SNS가 아닌 다른 충만한 것들로 인생을 채워야 했다. 그래서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최소 1달은 이렇게 살아보자. 오늘이 그 첫날인데, 아직 금단증상은 없다. 양치를 할 때 핸드폰을 켜보지만 딱히 볼 게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핸드폰을 끄는 정도다. 돈을 벌기 시작하며 요금제를 데이터 무제한으로 바꾸었는데, 예전에 한 달에 300MB로 살았던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는 거다.


여전히 미스터리다. 일기는 이렇게 잘 써지는데 왜 브런치에 올릴 글은 생각이 안 날까. 브런치는 일기를 쓰는 플랫폼이 아니니까, 여기는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인데 일기가 작품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니까! 이 플랫폼에는 좋은 글들이 수없이 넘쳐나지만 나같이 글빨도 경험도 딸리는 사람은 들이밀 자리가 없어 보이니까! 우하하.


솔직한 이야기들을 쏟아내니 시원하다. 좋은 글감이 떠올라서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글이 나오지 않아 더딜 때가 있는데, 지금은 최고 난이도로 한컴타자연습을 할 때 마냥 술술술 쳐진다. 쓰는 나는 굉장히 즐거운데 이 글을 읽고 있을 구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육백이십구 명 구독자 분들에게 너무 예의가 없는 짓인가. 아니 또 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건 뭐람. 그러다 글은 언제 발행할라고. (죄송합니다)


물론 하나의 주제를 갖고 긴 호흡으로 글을 끌어내야 메인에도 실리고, 조회수도 늘어나고, 구독자도 많아질 확률이 크겠지만 지금 나는 어떤 긴 호흡을 갖고 쓸만한 소재가 없다. 직장생활은 글로 쓰기에 너무 평범하다. 그러니 연관성 없는 말들을 이렇게 늘여놓는 것이지. 이 글 조회수가 잘 나올 거라고는 하나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쓴다. 쓰는 행위가 주는 만족감을 누리기 위해 쓴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생전 안 하던 요리를 다 한다. 감바스를 했는데, 마늘을 다 태워먹었다. B급이었지만 그런대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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