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함 Sep 18. 2019

연애를 권함, 아니 솔로를 권함.

아니, ‘나’이기를 권함




스펙에 미친 나라여서인지, 하다못해 연애까지 종종 스펙으로 친다. 모솔이라는 말에는 왠지 모를 위축감과 조급함이 담겨있다. 솔로에서 연애는 어쩐지 레벨업을 한 느낌이다. 연애 경험이 쌓일수록 인생의 경험치도 쌓이는 기분이다. 그래서 다들 연애를 권한다. 얼른 사귀어야지, 젊은 때 많이 만나봐야지.


그래서 그게 권한다고 되나요?


오늘의 권함은 연애도 솔로도 아니라, 연애할 때도 솔로일 때도 변함없는 나 자신입니다.









첫 연애가 언제이든, 연애를 하기 전 모두들 글과 영상으로 먼저 연애를 접한다. 분명 그 글 속, 그 드라마와 영화 속 주인공은 내가 아니건만 나는 필시 그런 주인공들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주인공들처럼 빼어난 외모나 활달하고 특이한 성격이나 부유한 환경도 아닐뿐더러, 그래서인지 운명적인 만남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그저 그런, 흔해빠진 만남도 운명이라 믿는다. 그가 운명의 상대인 것 같으니 대충 그렇다 친다. 하지만 환상은 쉽게 깨진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던 연애의 모습은 드라마와 매우 달랐고, 흔하다는 건 내 연애도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애써 나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일종의 로또를 사는 것과 같다. 그리고 곧 실망하고 마는 그런 흔하디 흔한 연애를 한다.


내 마음도 종종 갈피를 못 잡는데, 상대방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알 수 있는 방법은 표현뿐인데, 그 표현도 맞춰나가야 한단다. 마음의 크기를 잴 수는 없다지만, 그 크기를 짐작할만한 것들은 많다. 연락 횟수 만남 횟수 쏟는 시간과 비용 등..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들로 내 나름의 크기를 재고 나만의 저울에 올려놓는다. 저울이 출렁일 때는 그 간격만큼 서운함과 실망감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오로지 내 기준으로 0점이 맞춰진 저울에 상대방의 마음을 올려놓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애써 마음에 새겨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에도 슬픔과 외로움의 감정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쉽게 찾아오기도 한다. 좋아하는 감정이 흘러넘쳐도 누군가와의 만남은 하나부터 쉬운 게 없다. 도대체 좋아하는 사람과 그저 함께하는 것에도 배움이 필요하다니. 인간은 모든 부분에서 고뇌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인가.


연애는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을 오로지 사랑이라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만으로 함께하려는 어찌 보면 무모한, 그래서 환상적인 관계이다. 몇십 년 동안 비슷하게 유지해오면서 안정을 찾은 내 삶에 어디로 튀어갈지 모르는 무언가를 끌어들이는 일이다. 끊임없는 관찰과 세심한 관심도 요구된다. 이미 경험해본 적 있는 다른 인간관계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일상을 공유하는 크기는 훨씬 큰, 그래서 더 폭넓고 다양하게 실망과 기대를 할 수 있는 관계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를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 사실 에너지 소비가 매우 큰 일이다. 그래서 사랑은 꽤 큰 힘을 발휘해야 한다. 나 자신만큼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가 없이 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내 일상을 일정 부분 포기하게 만든다. 즉 내 일상과 그 사람의 일상을 맞물리는 어려운 일에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든다. 그 사람과 함께하면서 생긴 여러 변화들이 있지만, 분명 함께할 때가 적어도 0.1이라도 더 좋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믿음이 단단하고 그 사람이 그런 믿음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일때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때론 나와 상대방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내가 갖고 있는 삶을 내팽개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맞춰갈 것이 없으니 맞춰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애는 맞춰가는 과정 그 자체지 맞춰진 무언가가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맞춰질 수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맞춰가려는 소모적인 일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을 만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연애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괴로움은 있기 마련이다. 혼자여도 연애를 해도 이 부분은 항상 지닐 수밖에 없는, 여전히 고민으로 남게 되는 부분이다. 연애라는 인간관계가 하나 더 생겨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혼자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연애의 반대말이 솔로가 아닌 이유다.


혼자 있을 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바쁜 것도 연애할 때와 비슷하면 했지 절대 덜 바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쏟을 애정과 시간이 나에게 혹은 내 주변 사람에게 쏟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비슷한 감정들이 찾아온다.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렵고 힘든 일은 그대로다. 이런 부분은 연애를 하는 것과 상관없이 홀로 감내해야 할 것이다. 연애를 통해 이 부분을 해결하려 들거나 의존하려 들어도 결국 채워질 수 없음에 실망하게 된다. 존재의 허무감,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표류하는 듯한 느낌, 길을 잃어버린 느낌, 이대로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운 느낌은 끊임없이 우리 삶의 문을 두드리고, 그것을 맞는 것은 나 혼자다.


결국 솔로든 연애든 혼자 감당할 것이 많은 삶이다. 그러니 연애를 권하지 말고, 홀로 감당하는 것에 지치지 않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삶을 권하자. 그것이 굳이 연애일 필요는 없다. 세상엔 내가 좋아하고, 좋아할 것들이 넘쳐난다. '나'라는 존재부터 완성해 나가자.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좋아했다가 싫어하는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지 말이다. 내가 되어야 할 것은 누군가의 상대방이 아니라 '나'이니깐.




언제나 '나'가 되기를 권함.





작가의 이전글 '시시콜콜한 자신만의 수식어 만들기'를 권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