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다른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1.
회고, 연말이 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면서 스프린트를 진행하는 조직에서도 항상 나오는 단어다. 개인의 회고이든, 조직의 회고이든 회고라 하면, 뭘 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다.
2.
특히 스프린트를 진행하는 조직에서는 스프린트 기간 막바지에 회고라는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회고를 더욱 효율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KPT (Keep, Problem, Try)라는 방법론을 쓰기도 한다. 이외에도 회고를 시도하는 각 조직들은 조직에 맞게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하려 노력한다.
3.
그런데, 회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모인다고 진짜 회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회고는 그냥 함께 모여서 떠들기에 가깝고, 뭔가가 잘 되었을 때는 내 덕분이고, 문제가 있었을 때는 내 탓이 아니라는 말들을 늘어놓기만 할 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진짜 회고도, 상호 간 줄 수 있는 좋은 의견들도 할 수 없다. 이런 회고는 그냥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4.
개인적으로든 조직적으로든 회고는 어렵다. 특히 조직 내에서 회고를 진행하는 것이 더 어렵다. 혼자서 해도 어려운 것이 회고인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회고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회고가 어려운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아래 3가지 이유가 있다.
5.
우선 잘못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잘못 행동한 것을 생각해야 하고, 잘못 판단한 것을 생각해야 하고, 실수한 것을, 실패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좋은 것만, 잘한 것만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다는, 문제가 없다는, 이렇게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려 한다. 그리고 실수하거나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더 나아가서 성숙하지 않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비난까지 하려고 하고.
6.
오죽하면 자신은 복잡한 선인이고, 타인은 단순한 악인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자신에 대해서 잘한 것만 생각하고 싶어 하고, 실수와 실패, 잘못은 타인의 몫으로 미뤄두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그러나 회고는 이러한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 본성을 거스르고 내가 실수한 것, 내가 실패한 것, 내가 잘못 생각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본성을 거스르는 일은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 '내가 잘못한 것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회고를 어렵게 만드는 첫 관문이다.
7.
회고가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본성을 거슬러서 잘못한 것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한다는 것은 꼭 조직 내에서 타인에게 말하는 것만 포함하지 않는다. 조직 외부의 타인에게, 또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을 포함한다. 잘못한 것을 생각한 것과, 잘못한 것을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그 말을 쉽게 내뱉지는 못하듯이.
8.
특히 조직 분위기가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거나 방어적일 경우, 자신의 실수나 실패를 말하기 더 쉽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리더가 이러한 분위기를 바꿔서 모든 팀원들이 실패나 실수를 더욱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회고를 주도하는 리더는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9.
실수와 실패에 대한 비난을 하는 구성원에게는 명확한 주의를 주고,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구성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 이를 통해서 회고의 목적은 개선과 발전이지 책임 회피 혹은 책임 소재 찾기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회고를 주도하는 리더가 이를 하고 있지 않다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10.
회고를 통해서 잘못한 것, 실수한 것, 실패한 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마치 결승선을 앞두고 마라톤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유리한 생각만 하려는 본성을 거스르고 힘든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쳤는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11.
똑같은 잘못, 실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생각과 행동은 하루하고 마는 게 아니라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스스로 잘못한 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 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고 자신이 익숙한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사람의 본성이라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변화를 마음먹었더라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시 원래 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12.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또 실수와 실패, 잘못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실수와 실패는 이전의 실수와 실패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설령 똑같은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10개의 카드 중 딱 한 장 있는 조커 카드를 집어야 하는데, 첫 번째 시도에서도 두 번째 시도에서도 조커가 아닌 카드를 집은 것뿐이다. 누군가와 번갈아가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기회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다른 카드를 또 집으면 된다. 그뿐이다.
13.
진짜 나를, 조직을 개선시키는 회고는 정말 어렵다. 특히 스스로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배경과 생각과 성격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뜻을 모아서 개선을 이뤄낸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회고를 하는 개인과 조직은 많이 없다. 바꿔 말하면, 어렵지만 제대로 된 회고를 조금이라도 하면 한참을 앞서 나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14.
회고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려운 일은 해낸다면 그만큼 많은 성취와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니까. 그 성취와 성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