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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서점 May 09. 2017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빛나는 4월, 밤의 북클럽에서 나눈 죽음에 대한 이야기 

* 4월 22일에 있었던 밤의 북클럽 후기를 순전히 폭풍의 점장 관점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면서 아버지께 선물할 책을 골라보았다. 생각보다 마땅한 책이 없었다. 저번에 집에 갈 땐 스님들의 대담집, 100세가 된 철학자의 에세이, 논어 관련 서적을 가져다 드렸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큰 돋보기를 들이대며 바로 한 권을 뚝딱 읽으실 정도로 아직도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유지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고르려고 보니 태반이 아버지가 이미 지나온 시절의 고민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왠지 소설은 읽을 시간이 없으실 것 같고 노년에 관한 책들은 당사자가 읽기엔 좀 우울한 내용일 듯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고를 수가 없었다. 80에 가까운 노인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실 나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자식이 이런 책을 선물해주는 것을 받아들이실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난처한 책이다. 이 책이 꼭 필요한 늙은 사람들에게는 금기로 여겨지는 주제고, 젊은 사람들은 아직 궁금해하지 않는 문제다. 나는 이 책을 두 해전 어머님이 정밀검진을 위해 입원한 병동을 지키면서 읽었다. 책의 표지를 손으로 가리고 탄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탄 환자분이 책 측면의 제목을 보고 ‘여기서 읽기는 적절하지 않은 책 같군요’라고 말해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맞다. 낫기를 희망하며 입원한 병원에서 읽기는 적절하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죽음이란 것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의학적 경험으로 변한 지금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에서가 아니라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병원에서 읽는 것이 제일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이 책의 조언대로 어머님과 어떻게 죽고 싶은 지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마음을 터놓고 나누었다. 어머님은 병원에서 의학적인 도움 하에 가능한 한 고통스럽지 않은 임종을 원했고 항암치료는 거부하셨으며 뜻하신 방식으로 돌아가셨다. 


 모든 죽음은 갑작스럽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죽음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이 책의 원제인 <BeingMortal>처럼 노화의 끝에 당연하게 오는 삶의 현상인데도 우리는 삶에 죽음을 포함시키를 거부하고 있다. 4월의 화창한 봄날에 우리는 서점에 모여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자신의 장례식에 어떤 노래를 틀고 싶은지, 앞으로 남은 삶이 한 달이라면 뭘 하고 싶은지 존엄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열심히 나누었다. 그때 우리들은 죽음에 대해 말했지만 죽음이 감히 다가서지 못할 만큼 삶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더 이상 혼자서의 생활이 어려워질 시기가 올 것이며 결국은 요양원이나 병원에 들어갈 때가 올 것이다. 혹은 몸속의 종양을 없애는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 선택을 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가 미리미리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런 결정을 준비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자의 표현처럼 ‘늙었다는 죄’로 ‘감금’당하거나 정말로 중요한 삶의 정리를 하지 못한 채 병원 침상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지 않기 위해(죽음 앞에 속수무책으로 허둥대지 않기 위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필요하다.  


 죽을 때까지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죽음까지 우리 삶을 연착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 모두 인정하였던 것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순간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진리였다. 작년 봄에 돌아가신 어머님은 죽음의 순간까지 자기 연민을 비추지 않으셨다. 본인은 원 없이 살았다고, 해볼 사치도 다 해봤고 집도 차도 많이 사 봤기에(….) 죽는데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으신 후 바로 백화점으로 달려가 멋진(=비싼) 코트를 사셨으며 가진 옷들 대부분을 드라이클리닝 하셨다. 그리고 그 옷들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정해주셨고 옷들에 대한 추억-언제 어디에 가서 장만했는지, 이 옷을 입고 어떤 자리에 가셨는지 그때 자신이 얼마나 멋졌는지 등등-을내게 하나하나 얘기해주셨다. 나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어머님의 이야기를 곁에 앉아 들으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옷 따위에 시간을 쓰셔야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러나 지금은 알겠다. 어머님의 인생에서 옷은 정말 중요했고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은 옷을 정리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였다는 것을 말이다. 어머님은 자신의 욕망대로 끝까지 삶에 충실하셨다. 


 우리는 책에 나온 ‘죽는 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옛날에는 늙어감이 축복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죽는 자의 역할’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노인이 되면 많은 지식을 습득하여 지혜로워지고 꼭 필요한 어른이 되었기에 죽는 자가 남아있는 자에게 잘 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의미 있는 조언들을 해주고 아름답게 정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죽는 자의 역할이었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과 위안이 된다. 이별 인사를 충분히 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에게 더 아프다. 나는 어머님과 이별 인사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어머님이 그립지만 슬프지는 않다. 어머님은 당신의 말대로 원 없이 살았기에 남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았다. 나도 내가 죽은 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슬프지 않게 원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올봄에 나는 매우 슬펐다. 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슬프다. 그런데 내게는 갑작스러운 이별이지만 돌아보면 당사자에게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얼마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알았기에 슬퍼하기를 멈추고 나는 그것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나 자신을 애써 납득시켰다. 하지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훨씬 경감시킬 의료적 방법이 있었다면 그가 자살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안다. 마찬가지로 존엄사를 택하는 사람들이 고통 없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명할 수 있는 치료법을 만들어낸다면 그들은 그것을 택할 것이다. 존엄사가 좋은 선택인가에 대해 저자는 존엄사가 합법화되어 있고 그 수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네덜란드의 예(2012년 사망자 35명 중 1명이 안락사를 택함)를 들면서 그것은 완전한 실패의 증거라고 말한다. 존엄사 혹은 안락사라는 선택지를 만들어두면 끝까지 잘 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실제로 네덜란드는 완화치료 분야에서 뒤처져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히 보여주며 우리를 생각의 길로 이끈다. 이 좋은 책에 무슨 말을 더할까. 죽음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정리하는 걸로 대신하겠다. 의사인 저자는 죽음 문제에 있어서 의학의 실패를 인정한다. 죽음에 대한 관점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관점 자체가 부재’ 한 것이 문제라는 점을 말한다. 우리가 단순히 가죽과 살덩이와 피로 채워진 존재가 아니듯 그저 생명기능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인간은 의미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잘 죽는 것은 끝까지 잘 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죽는 날까지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죽음에 대해 의학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불편한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저자는 권한다. 아툴 가완디는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이 불편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어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잘 보내드렸는지 자세하고 감동적으로 기술했다. 나도 가완디의 아버지처럼 우리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까지 가치 있게 살다 돌아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마지막을 바란다. 다음번에 고향에 내려갈 때는 아버지께 내가 밑줄 그으며 읽은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물론 선물은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함께여야 한다는 걸 잊지 않겠다.

(by 폭풍의 점장)


* 밤의 서점에서는 해마다 꽃 피는 4월에 죽음에 관한 책을 선정하여 북클럽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죽음을 주제로 한 좋은 책 제보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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