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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서점 Feb 24. 2017

먼지에 대한 명상

- 먼지만큼 성실해보자고 다짐하는 어느 날

  얼마 전 지인이 마감 후 서점에 들러서 서가를 보며 말했다. 서가가 좀 흐트러졌다고 초심을 잃은 것 아니냐고.  듣고 보니 책이 조금 삐뚤삐뚤 놓여있는 것 같기도 하여 다음날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서가 사이의 먼지를 닦았다. 흠칫 놀랐다.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바닥을 닦는데도 서가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손님이 바글바글할 리가 없는 서점에서는 책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홀로 있을 때 나는 이국 여자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시인의 심정으로 책 제목들을 하나씩 읽어 본다. 그러는 순간에도 먼지는 계속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나를 조금 덜 쓸쓸하게 했다.  

  먼지의 일이라면,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는 것과 (당연하게도) 쌓이는 것이다. 가끔 내가 늦었다는 이유로 물걸레질을 빼먹을 때도 있고 아주 빨리 대충 닦는 때도 있지만 먼지는 그럴 때에도 계속 쌓이고 있다. 먼지는 비나 햇살처럼 존재감을 단번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드러낸다. 엊그제 서점에 출근하는 길에 쨍하게 맑은 하늘을 보며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근거 없는 희망에 가까운 행복함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명징함처럼 내 앞날도, 아니, 멀리까지 가지 않고 오늘 하루가 그럴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이다. 맑은 날 우리가 쉽게 느끼는 이런 감정에 대해 좋은 게 좋은 거지 라고 하며 굳이 희망을 의심하지 않는다. 근거 없이 낙관적인 건 최고로 좋다. 안 그랬다면 인간은 벌써 멸종했겠지.

  비가 오는 날에는 그것을 인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선 평소와는 달리 우산이 필요하다. 비는 때에 따라 후두둑 쏴 보슬보슬 소리를 내고 바람과 만나 사납게 창을 두드리기도 한다. 또 열로 후끈 달아오른 아스팔트에 소나기가 내릴 때 올라오는 냄새, 딱딱한 지면을 공격하여 무력화시키는 흙냄새, 이런 것 역시 우리의 기억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그러나 먼지란 얼마나 조용한가. 눈에 보일 때쯤엔 아이쿠나 하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먼지는 조용히 내리고 있다. 컨디션을 핑계로 청소를 하루 빼먹어도 먼지는 내 사정 따위를 봐주지 않는다. 먼지는 무자비하고 성실하며 그것에는 인간적인 면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 다소 슬퍼진다. 함께 있지만 생각을 공유할 수 없다니. 또 먼지는 외롭다. 화창한 날이나 비 오는 날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억이 있다. 그러나 먼지가 내리는 날의 추억은 들어본 적이 없다. 먼지는 그냥 먼지일 뿐이다. 당연히 먼지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다. ‘투성이’란 친구가 있는데, ‘투성이’와도 얼마나 감정을 공유할는지 의심스럽다. 먼지는 오랜동안 함께 한 ‘투성이’에게 얼마만큼 마음을 열었을까? 사실, 투성이에게는 먼지 말고도 몇몇이 더 있다. 흙투성이, 재투성이, 실수투성이, 상처투성이…. 투성이는 더럽고 슬프고 안타까운 친구들과 동병상련하여 나름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먼지에게는 투성이만큼 긴밀하진 않지만 다른 친구도 있긴 하다. 더미, 구덩이 같은 애들이다. 먼지더미, 먼지 구덩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사전을 찾아보니 먼지는 ‘가늘고 보드라운 티끌’의 옛말이라고 한다. 먼지는 가늘고 보드랍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변함없는 성실함을 지니게 된 것 같다. 무서운 성실함으로 시간이 흐르면 더미와 구덩이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어느 날 변함없이 청소를 하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먼지 더미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말한다. 이런 먼지 구덩이라니! 혹은, 먼지 구덩이인 방에서 잠자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눈을 떠 중얼거린다. 안 되겠어. 아침이 되자마자 청소를 좀 해야겠군. 먼지는 이런 갑작스러운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사실 그는 억울하다. 우리가 존재를 몰랐을 뿐 그는 끊임없이 일하고 있었다.

  서점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밤, 나는 먼지에 감정 이입하며 우리 서점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서점이고, 한 점 먼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먼지에 대한 찬사의 단어가 있다. 

 우주먼지.

  우주먼지는 별 사이에 있는 먼지인데 우주먼지가 모여 돌멩이가 되고 더 커지면 소행성과 행성으로 자라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을 우주먼지를 연구하며 찾고 있다고도 했다. 먼지에게 투성이나 더미나 구덩이를 엮어 준 일반인들에 비해, 역시 과학자들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따뜻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깨끗한 밤의 서점에서 발견한 먼지에게 투지를 불태우며, 밤의서점에는 먼지 쌓일 틈이 없게 해 보자고 글을 쓰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주먼지의 존재를 안 나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우주먼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 밤의 서점도 먼지만큼 오래 성실히 해 보자는 다짐을 한다.  (by 폭풍의 점장)


*우주먼지_참고 링크

http://www.sciencetimes.co.kr/?news=%EC%9A%B0%EC%A3%BC%EB%A8%BC%EC%A7%80%EC%97%90-%EA%B7%B8%EB%A0%87%EA%B2%8C-%EA%B9%8A%EC%9D%80-%EB%9C%BB%EC%9D%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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