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 Ed sheeran _Supermarket Flowers
행복에도 발이 달려있어요
개그우먼 故 박지선. 그녀를 처음 마음에 들인 것은 개그콘서트가 아니라 어느 한 책의 모퉁이에 적힌 추천사였다. 2012년에 출판된 이지애 아나운서의 책 '퐁당'. 한창 이지애 아나운서와 같은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녀의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사인회까지 찾아갔을 정도였다. 어느 일 년 동안 가방 한 켠에서 꽤나 큰 지분을 차지했던 책이었다.
그 책에 적힌 박지선의 추천사가 유독 기억에 남아있다.
개그 생활 6년 동안 수천 번은 넘게 듣고 있는 '안녕하세요. 잘 보고 있어요'라는 말을 유달리 따뜻하게 해 줬던 사람. 그 순간 난 지애 언니의 얼굴에서 텔레토비의 해님을 보았다. 그토록 따뜻한 사람이 쓴 책이라니. 올 겨울, 난 이 책을 손난로 대신 들고 다닐 예정이다.
이토록 간결한 표현 속에 따뜻함을 가득 채울 수 있다니. 손난로는 이 책이 아니라 그녀의 추천사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누군가의 성취를 따뜻이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마음 한 켠으로 박지선을 향한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멋쟁이 희극인. 나를 내려놓고 누군가를 웃게 한다는 건 정말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안다.
여전히 '알고만' 있을 정도로 나는 실천해 본 적이 거의 없고 가끔 마음을 먹었을 때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타인을 즐겁게 해 줄 줄 알았던 그녀의 행보에서 때때로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자존감 수업. 그녀는 여타의 강연에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 스스로 존중하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희망을 주었다. 스스로 생각할 줄도 그것을 나눌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부고 소식에서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행복을 아는 사람도, 자존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충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타의 사람들은 행복을 말하던 그녀가 스스로의 삶을 다르게 선택했다고, 그러니 행복한 척은 중요하지 않고 실제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행복함 뒤에 감춰진 불행을 우리는 미처 알아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감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도,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곧 잘 해내던 공부의 길을 틀어 그 길로 개그우먼에 도전하고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또 인정을 받고 그 경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도 주었던 경험은 그녀의 인생에서 분명한 행복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행복이 찾아오면 어쩌면 그 행복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머리로는 행복은 영원하지 않고 지키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말은 하지만 행동은 그 반대를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실상은 순간 행복하던 사람도 순간 불행해질 수 있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그녀의 행복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행복 뒤에 감춰진 불행만 존재했듯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조금 더 슬펐다.
웃을 수 있는 사람도, 웃는 방법을 아는 사람도 어느 순간 감히 웃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사람에게는 행복을 추구하고 불행을 멀리하고 싶은 DNA가 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즐거움과 괴로움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면서 행복과 즐거움에는 마음껏 취하고, 불행과 괴로움이 나와 당신 그리고 주변 사람들 앞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을까.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미 그것을 알고 나름의 표현으로 단편소설을 적어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네가 즐겁고 괴로운 것은 당연해. 인생은 즐겁기도 하고 또 괴롭기도 해. 지금 행복하다면 며칠 뒤에도 계속 행복할 수 있는데 혹시 몰라.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불행한 일이 올 수도 있고. 그런데 네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니. 그러니까 영원히 혼자 살 것처럼 생각하지 마. 네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때 어떤 사람들이 네 옆에 있을지는 알 수 있잖아. 그러니 우리 친절하게 살자. "
♬ Supermarket Flowers song by Ed sheeran
안녕하세요. 11월 셋째 주 수요일 수플레의 주디입니다.
벌써 2020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설마 이렇게 되겠어? 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보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참 없다는 것을 배우고 있지만서도 또 한낱 가벼운 인간이기에 멋대로 희망하고, 멋대로 부정하고, 멋대로 소망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같아요.
무튼 각설하고 오늘은 행복에 대한 아주 작은 단상을 나누어보려고 했어요. 행복은 스윽 왔다가 눌러앉는 게 아니라 발이 달려 있어서 내게 더 가까이 총총총 안겨올 수도 있고 반대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 누군가의 인생을 그래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가 봐요.
오늘은 Ed Sheeran의 곡 중에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곡,
Supermarket flowers을 가져왔습니다.
So I’ll sing Hallelujah,
그래서 전 할렐루야를 불러요
you were an angel in the shape of my mum
당신은 제 엄마의 모습을 한 천사였어요
When I fell down you’d be there holding me up
제가 넘어질 때, 당신은 절 잡아주었어요
Spread your wings as you go
날개를 펼쳐서요
And when God takes you back
그리고 신이 당신을 다시 데려갈 때엔
He’ll say Hallelujah, you’re home
할렐루야 '당신은 집에 돌아왔어요'라고 말하겠죠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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