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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열 확률

추석 연휴다.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는 일을 해 왔기에 연휴가 크게 와 닿지는 않지만 밖에 문 연 가게가 많이 없으니 자연스레 집에서 쉬게 되는 게 나에게는 법정공휴일이다. 


나와 함께 '예지예슬 YES Beauty' 채널을 하는 예지. 실물이 훨씬 예쁘다


다음 주 유튜브 채널 첫 업로드를 위해 영상을 찍고 있다. 화면 속 내 모습이나 목소리를 다시 못 듣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건 어쩔 수 없이 직접 편집을 해야 하니 지겹도록 계속 돌려볼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내가 나이가 든 걸 느끼지 못하다가 영상작업을 같이 하는 동생이 스물넷이다 보니 자연스레 내 나이가 얼굴에 보인다. 사실 처음 볼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간 살아온 시간이 있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인 건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그게 화면에 확 보이면 속상하더라. 이제는 뭐 이것도 나 이니깐 내가 아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레스토랑


지인들이 결혼 소식을 많이 전한다. 늘 궁금하다. 결혼을 어떻게 마음먹게 되는 것인지, 요즘 한번 넘게 하는 건 일도 아니라지만 난 한 번만 하고 싶은데 상대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수락하는 건 어떤 마음일지. 갈수록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게 쉽지 않다. 첫눈에 반하는 건 더더욱. 


서비스직에 종사하면 자연스레 눈치가 빨라진다. 크루로 일했을 때 승객들이 탑승을 하면 이 사람은 어느 국적이고 그러면 보통 어떤 것들을 많이 찾고 (중국인 승객들은 따뜻한 물을 원하는 경우가 많고 아프리칸 승객들은 고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기분 상태는 어때 보이며 비즈니스로 가는 것인지 단순히 홀리데이로 가는 것인지 허니문인지 단시간에 캐치해 내야 한다. 그래야 일하기 수월하다. 영국 드라마 [셜록 Sherlock]의 셜록처럼 쓱 한번 보고 많은 걸 파악해내는 능력치가 상승했을 때가 이 시기. 가끔은 알아차리기 싫은 것도 알아차려서 모른 척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오늘 문득 생각 난 꽤 오래전 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베이스인 도하로 오는 비행이었다. 그때도 이맘때 가을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독일을 떠나오는 건 늘 별로지만 케이터링에 독일 주스가 리프트 되어 좋다. 어느 포지션을 받든 하라면 해야 하는 쭈구리 신세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지션을 받을 때면 독일을 떠나오는 길도 마음이 가볍다. 중간 갤리를 보조하는 포지션을 받고 룰루랄라. 비행기에 타서 짐을 넣고 승객들이 타기 전까지 준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짧다. 손이 빠른 편이 아니라 큰 갤리까지 맡은 날에는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쩔쩔맸다. 그래서 나는 보딩 하는 시간을 제일 싫어했는데 이렇게 맡은 것이 많지 않은 날에는 승객들이 탑승하는 것도 즐겁게 맞았다.



비행기에 사람들이 차곡차곡 들어온다. 내가 맡은 구역에 어떤 사람들이 앉는지 유심히 본다. 내 존 zone에 있는 승객들만 챙기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무난하고 조용한 승객들이 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때 어떤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에 무테안경을 끼고 귓속엔 이어폰을 꽂고 있던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던 동양인이었다. 동양인도 언뜻 보면 국적을 가늠할 수 있는데 미국 교포 느낌의 한국인처럼 보였다. 한국인은 괜히 반가웠으니까 밀 서비스 meal service(식사 서비스) 때 식사를 주면서 짧은 대화를 해 보니 영어가 한국인이 하는 영어가 아니었다. 독일 사람이 하는 영어 발음. 정신없는 밀 서비스가 끝나고 트레이를 걷고 일을 하는데 괜히 눈길이 계속 갔다. 이런 사람 아닌데. 괜히 중간중간 음료 서비스 때 가서 말도 걸어보고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고 그랬다. 알고 보니 그는 베트남계 독일인에 친척을 만나러 베트남에 가던 길이었다.



비행은 무난했고 독일 승객들은 토마토 주스를 많이 찾았고 특별한 인 없이도 언제나 정신없던 일을 마치고 헐레벌떡 착륙 준비. 점프슛에 앉아있는데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한눈에 반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렇게 눈에 자꾸 들어올 때는 뭐라도 표현해야겠다 싶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래서 회사 냅킨에 후다닥 "좋은 여행 하길. 나중에 한국 오면 연락 해. 내 이 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는 이거야." 하고 적었다. 


가까이 와라. 가까이 와라


비행기 날개 오른편에 앉은 승객들은 내가 있는 곳을 지나서 비행기를 나가야만 하니깐 내릴 때 전해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고 착륙 후 예상대로 그는 내가 서있는 쪽으로 나왔다. 내릴 때 서서 승객들께 인사를 하는데 보통 다들 빨리 내려서 연결 편을 타야 하기에 정신없이 내린다. 그가 내 앞에 왔을 때 그 사람의 손을 덥석 잡고는 꼬깃꼬깃 접은 냅킨을 강제로 전하고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떠밀려 비행기를 내렸다.



남자는 반드시 이래야만 하고 여자는 이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감이 있다면 여자가 마음을 먼저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좋아해야 행복한 관계라는 것도 누가 정해준 것인가. 상대가 다가와주기를 바라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내 마음을 확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


일할 때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나중에 도착해서 회사에  ID카드 찍고 집에 가면서 확인하니 그는 나도 승객들이 내리는 곳으로 내릴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다고 메시지가 와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로 친구로 남게 되었다. (그는 무려 나보다 6살이나 어린 현지에서 모델로 일하는 학생이었다.) 그때 내가 냅킨을 건넨 일은 시간이 흐른 후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나이가 들면 연애에도 적든 많든 나름의 경험치라는 게 생긴다. 이럴 때는 이랬고 저럴 때는 저랬고 이런 사람은 이랬고 하는 나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인다. 마치 내가 비행기 안에서 일을 하며 승객들을 스캔 해 그들의 정보와 성향을 지레짐작했던 것처럼. 그래서 점점 관계가 쉬워진다는 사람이 있지만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줄어든 설렘을 자극으로 대신하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이미지 컨설턴트로 하는 일은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의 지식과 정보, 지적서비스로 고객의 마음을 얻어야만 한다. 나도 점점 마음을 여는 게 어려운 만큼 고객들도 어렵다고 생각하면 가끔 겪는 마음의 찜찜함을 마주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작지만 일을 위한 내 공간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흐른다


이렇게 이번 가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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