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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림 Jun 03. 2021

제발 우리 집 창문 좀 고쳐주오.

네덜란드 생활 - 창문교체, 그 1년의 기다림

사건의 발단


바람이 무섭게 불던 지난 9월, 창문에 모기장을 달고나니 열고 닫힘을 조절하는 고정 틀이 너무 거추장스러워 잠시 분해해 놓은 어느 날, 쨍그랑 소리와 함께 2층에 위치한 큰 방의 유리창이 박살이 나며 아래로 떨어졌다. 당시 창문은 열려 있었고, 때 마침 엄청난 세기의 바람에 창이 닫히며 그 충격으로 유리가 깨진 것이다. 1층에 있던 집사람은 무슨 일이냐며 달려왔고, 옆집 사람들도 크게 놀랐는지 집 밖을 뛰쳐나와 우리 집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바람은 멈추질 않았고, 유리 조각들이 흩날리며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으나, 다행히 커튼이 어느 정도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침 창고로 활용 중인 3층에 큰 박스가 몇 장 있었고, 바람이 조금 잠잠해지는 틈을 타 창문을 막고 은색 박스 테이프로 주변을 막아 긴급한 상황을 벗어났다.


출근을 해야 했기에 며칠은 박스를 붙인 체 버텼다. 인터넷으로 창문 업체를 알아봤으나, 창문에 유리 하나만 교체하기란 쉽지 않았다. 목재로 만들어진 창틀이 너무 오래되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움푹 들어갈 만큼 삭았기에 집에 있는 모든 창틀을 바꾸기로 했다. 1970년대에 집이 지어진 후 한 번도 창틀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유리가 두장 붙어 단열 기능을 하던 큰 창 역시 가운데 공기가 들어차 있었기에 재 역할을 제대로 했을지 의심스럽다. 처음 이 집을 살 때 주인이 몇 번이고 이점을 강조했었는데, 막상 창을 교체하고자 비용을 알아보니 주인이 왜 그렇게 강조를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2층 작은 창문을 나무판으로 막아두고 1년을 버텼다.




첫 번째 업체와의 만남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부분 소소한 집안 공사는 직접 한다. 그러기에 DIY를 위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매장들이 잘 갖춰져 있는데, 거기에서 봤던 창틀 업체 중 한 곳에 연락을 했다. 1층에 있는 창 3개와 2층에 있는 창 3개 교체, 화장실에 있는 삼각형 창문 한 개를 포함하고 3층 확장 공사까지 하고 싶어 견적을 의뢰했다. 네덜란드는 보통 지붕이 뾰족하게 되어 있어 끝 층 공간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확장 공사를 하는데, 아이들이 클 때를 대비해 우리도 이번 계획에 넣기로 했다.


업체 사무실에 방문 약속을 잡고 그다음 주에 사무실에 방문해 이런저런 재료를 확인했고, 정확한 견적을 위해 직원이 우리 집에 방문해 치수를 재야 된다고 하여 10월 9일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흰머리에 나이 드신 어르신이 초인종을 누르고 문 앞에 서계셨다. 아마도 은퇴를 하고 쉬엄쉬엄 소일거리를 하는 분 같았다. 신발을 신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치수를 재고, 사진을 찍으셨다. 우린 작업자들이 집에 오면 신발을 벗으라 강요하진 않는다. 지금까지 신발을 벗어야 되는지 물어본 사람도 없거니와 바닥이 카펫으로 깔려 있지 않기에 그냥 작업자가 집을 나가면 쓱쓱 청소를 하고 만다.


치수 확인까지는 문제없이 진행되었고, 아저씨는 견적내는데 2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2주나 걸린다고? 내가 우리 회사 거래 업체를 들들 볶으면 이틀이면 받을 수 있는 견적이 2주 걸린다기에 너무 바빠서 그러려니 이해하고 수락했다. 10월이 훌쩍 지나고, 연락이 왜 이리 없지 싶었을 때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는 무응답이었고, 며칠이 지난 후 견적은 어떻게 되었는지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 또한 묵묵부답. 11월이 지나갈 때쯤 안 되겠다 싶어 담당 업체에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회사에 이메일을 보 다음날 바로 답이 왔다. 그동안 휴가 중이었고, 1주일 후에 견적을 보내 주겠다고, 그 후로 2주 정도 걸렸고, 우리가 견적을 받은 날짜는 12월 10일. 하지만 견적서에 적힌 내용이 내 뒤통수를 내리쳤다. 네덜란드어로 적힌 견적서에는 페이지마다 치수가 기입 된 여러 가지 창틀과 참고 자료들이 적혀 있었고, 마지막 페이지 중간에 견적 금액이 있었다.


'우리가 확인 한 치수를 기준으로 창틀 및 설치 비용은 47,168 유로이다.'


네덜란드어를 정확히 직역한 내용이다. 저 다섯 자리 숫자가 끝이었다. 창문이 몇 개고 하나당 얼마고 설치비는 얼마인지 디테일한 내용도 없이 저 한마디만 적혀 있었다. 혹시나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몇 번이고 이메일을 뒤지고 첨부 파일을 뒤져 봤지만, 다른 숫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더치 스타일이야? 속으로 생각하 헛웃음만 나왔다. 이메일을 받고 며칠 후에 난 답장을 보냈다. 너희가 디자인 한 창틀의 개당 가격을 알고 싶고, 이동 및 설치비는 얼마인지, 우리가 이야기한 3층 확장 공사는 포함이 된 가격인지에 대한 질문이 담긴 내용이었으나, 답은 없었다. 재밌는 건 몇 주후 그 회사에서 자신들이 보낸 견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퍼를 수락할 건지에 대한 이메일이 와서 아저씨에게 보낸 이메일을 그대로 보냈으나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이 업체랑은 이제 끝.




두 번째 업체와의 만남


회사 동료에게 자초 지경을 이야기하자 자기가 아는 회사를 소개해 줬다. 12월은 휴가 시즌이라 우린 첫 약속을 1월에 잡았다. 이번 업체는 치수를 먼저 쟀고, 견적을 함께 확인하기 위해 약속을 따로 잡아줬다. 우린 회사를 방문해 이런저런 재료들과 디자인들을 확인했고, 난 우리가 왜 다른 업체에서 견적을 받고도 여기에 왔는지 설명했다. 이 업체는 달랐다. 창틀 별로 가격이 세밀하게 적혀 있었고, 어떤 재료에 그 재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기술되어 있었다. 우리 이야기를 들은 업체 관계자는 자신들은 다름을 수차례 강조했다. 역시나 그랬다.


1차 견적에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재료를 선택하여 가격이 조금 올랐다. 다만, 이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선 모기지를 추가로 신청해야 했다. 네덜란드는 집안 인테리어 공사를 위한 비용도 모기지로 받을 수 있다. 어차피 공사를 하면 집값이 오르기 때문에 굳이 안될 건 없지 않나. 우린 주거래 은행인 ING에서 모기지를 받고자 했다. 모기지를 받기 위해선 월급명세서, 연봉 확인서, 계약서 등등 준비할 서류가 상당히 많다. 정직원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회사에서 사인도 따로 받아야 한다. 이런저런 서류가 다 구비되고, ING 측에 서류를 보냈다.


근데 이게 웬걸, 기껏 서류는 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안된단다. 이유 인즉은 우린 첫 번째 모기지를 주택 담보 대출 회사에서 받았고, 추가로 받으려면 그 회사에서만 받아야 된다는 거다. 아니면 지금 받은 모기지를 그쪽에서 이쪽으로 옮겨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진작 얘기했으면 될 것은 서류를 다 준비하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격렬한 답변을 몇 번이고 이메일 창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가 그냥 몰랐다며 됐다했다.


지칠 만큼 지친 우린 거래 중인 모기지 회사에 연락을 했다. 이미 준비 한 서류가 있었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신청 절차 역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창틀 업체에 최종 견적을 받아 모기지 회사에 전달했고, 이젠 끝이겠거니 집사람과 마음을 조리고 있었다.




우리 창문은 바꿀 수 있는 거니?


며칠 후 모기지 대행업체에서 다급하게 이메일이 왔다. 추가 모기지를 받으려면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빚을 모두 갚아야 한단다. 모기지를 제외하고 우리에겐 자동차 할부가 잡혀 있었다. 48개월 할부로 구입하고 1년을 갚았고, 남은 3년 치를 한 번에 갚아야 했다. 세상에나, 갑자기 이런 목돈을 어디서 구한담. 먼저, 내가 네덜란드에서 투자 중인 주식을 모두 익절 하고, 한국에 저금해 놓은 돈을 끌어 왔다. 집에 있는 중고 제품을 모두 팔았고, 따로 모아놓은 비자금도 탈탈 털고 나니 겨우 금액을 맞출 수 있었다.


모기지 회사는 집요 했다. 자기네가 확인했을 땐 빚이 몇 개 더 있단다. 우린 자동차에 관련된 빚은 다 갚았고, 더 이상 낼 돈은 없다고 이메일을 보냈고, 업체에서는 BKR에 확인해 보니 몇 가지 빚이 더 있다고 하는데, 처음엔 BKR이 BMW 회사의 일부인 줄 알았다. BKR는 네덜란드에서 개인 신용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다. 사이트에 접속해 은행 계좌를 통해 로그인하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얼마의 빚이 있는지 리스트로 보여준다. 확인해보니 자동차 할부를 BMW 측에서 3가지로 분류해 놓았고, 우리가 다 갚았음 데도 이 3가지가 모두 확인이 안 됐던 거다. 우선 스크린 캡처를 통해 지불 사실을 모기지 회사에 보냈다.


며칠 후 모기지 업체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하하하. 한 개가 더 남았다. 집사람이 약정으로 산 핸드폰도 다 갚아야 한단다. 약정을 바꾸기엔 절차가 너무 복잡해 우린 됐다 했다. 남은 금액은 핸드폰 약정이고, 이 약정을 미리 갚을 생각은 없으니 그냥 진행해 달라고 했다. 모기지 회사에서는 끝내 이 약정 금액을 트집 잡았고, 결국 모기지 10년 만기 계약을 10년 10개월로 변경하며 마무리했다.


드디어 5월 중순에 창문 업체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하고, 담당자가 제품을 주문하기 위한 정확한 치수를 체크으며, 10월 18일로 설치 일정이 잡혔다. 작년 9월에 창문이 깨지고, 10월에 새로운 창문이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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