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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v i DK Aug 27. 2020

2020년 8월 26일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당당히 요구하자

남편과 나, 둘 다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어서 코로나 테스트 예약을 해두었다. 토요일에야나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해서 남편이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야 집에서 일하니까. 학생들에게 연락해서 수업을 취소한다고 해두었다. 코로나라고 생각되기 너무 어려운 증상이지만 예방 차원에서. 애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유치원에 보냈다. 


친구가 유치원에 아이 언어 발달과 관련된 걱정을 진지하게 나눴더니 미팅을 잡아줬다고 했다. 어제 미팅을 했었을 것 같아 잘 했는지 연락을 했더니, 언어 발달 프로그램을 별도로 잡아준다고 했단다. 유치원 내부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또 외부 전문가를 통해 밖에서 개별적으로.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한국 뿐 아니라 덴마크에서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다. 예전에 하나 병원에 입원했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부모가 매사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이에게 추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설 경우 적당한 시기에 부모가 개입을 해서 도움을 청하고 대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바쁜 일상 속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게 눈에 보인다. 


잘 따르는 선생님과의 작별

유치원 선생님 한 분이 이달 말을 기점으로 관두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으신 분으로 하나가 엄청 따르는 분이고, 우리 유치원에서 14년이나 일하신 분이라 왜 관두시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선생님을 마주쳐 관두시는 이유 여쭤봐도 되겠느냐 했더니, 작년에 새로 부임한 유치원장님과 맞지 않아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야 선생님들하고만 접촉하니까 원장님이 어떤지는 느낄 일이 없어서 어떤 면에서 맞지 않았는지 여쭤보니, 선생님들끼리 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하면, 선생님들끼리 잘 결정하라고 한다는 거다. 본인은 어려움이 있을 때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해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며, 그게 안되는 채로 시간이 흐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거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나도 과거 경험을 통해 알기에 이해한다는 말이 그냥 나왔다.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본 건 아니지만, 선생님의 느낌은 또 본인의 느낌인 거니까, 둘 사이의 리더쉽 관점에서의 케미스트리가 매우 안맞았다는 건 분명하다. 누군가에겐 좋은 리더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안좋은 리더일 것이고. 아쉽다는 마음과 함께 보고 싶을 거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목이 잠기고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내 아이를 봐주는 선생님으로 믿도 맡기도 따라온 좋은 선생님이 리더와의 케미 문제로, 오래 일하신 직장을 떠나 다른 곳을 알아보신다니 마음이 엄청 상했고, 진짜 보고싶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도 선생님이 매우 보고 싶을 거다. 어느 타이밍인가에는 하나도 유치원을 졸업해서 선생님을 거의 보지 못하는 시기가 오긴 하겠지만, 그건 자기의 새로운 앞길에 대한 설렘과 겹치며 그 여파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넘어가겠지. 특히 미리 진학할 학교를 방문시키며 적응기간을 거치는 덴마크의 시스템 속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자기의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선생님이 관두는 건, 그것도 자기가 정말 많이 따르는 선생님이 관두는 건 조금 충격적인 일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고 길게 아이를 돌봐주던 선생님들이 관두시거나 일하시는 건물을 바꾼 일이 몇차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힘들어할 지도 모르겠다. 아직 세상을 삼년 반 정도밖에 살지 않은 아이지만, 정을 쌓고 작별을 하는 일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나오시는 다음주 월요일에 하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별거 아니야, 라고 털 수 있는 능력

Pyt med det! Skidt, pyt! 라는 말이 있다. 안좋은 일인데, 별 거 아니라고 하고 넘어가자고 할 때 하는 말이다. 작은 일에 집착하는 것,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다. 작은 실패도 넘어가지 않고 개선을 하든, 정정을 하든 해서 상황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그냥 넘어가도 될만한 일 하나하나에 집착해서 짜증을 자주 느끼거나, 실패하는 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시간이 갈 수록 덴마크인들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여전히 느껴지는 건 어떤 일상의 불편함이나 실수, 실패 등에 있어서 ”Pyt med det!” 하고 말하며 툭툭 털고 가는 걸 잘한다는 거다.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포함해서. 


우리도 하나에게 어떤 실수나 실패를 할 경우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잘 못하는 일로서, 나 또한 이런 마음을 가지려고 실천하고 있는 바라 더욱 이를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제 하나는 두발 자전거를 평지에서 스스로 출발해서 페달을 밟아 주행하고 코너를 돌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브레이크를 잡아 정지하는 것까지 모두 익혔다. 아직 잘 못하는 것들이 있지만, 우선 해낼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기까지는 물론 무수히 많이 넘어지고 연습을 했다. 넘어질 때마다 아파하는 건 호호 불어주고, 피나면 반창고도 붙여주지만, 원래 그렇게 배우는 거라며 시도하게끔 도와준다. 하기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고. 동시에 아이 아빠나 나 모두 각자의 취미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또한 연습만이 실력이 좋아지는 유일하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Øvelse gør mester. (Practice makes perfect.)”, 이건 하나가 세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흔히 하게 된 말이다. 그래서 그냥 실패에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배우는 법을 이미 익힌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일이 안풀리면, ”Pyt med det!”하고 이야기 하니 말이다.


물건과 관련되어서도 뭔가 잘못되었을 때, 그걸 해결하거나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미 꺠진 거 속상해봐야 달라지는 거 없으니까, 얼른 그 감정을 털어버리는 게 중요하다 싶다. 어제는 하나가 많이 기대하던 새 신발 두 켤레가 도착했다. 발이 커져서 새로이 신발을 장만해야 했는데 신발이 젖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여벌까지 해서 두 켤레를 주문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 취향 정도만 반영해 내 마음대로 나이키 등에서 활동성이 좋은 신발 중심으로 구입을 해왔는데, 이번엔 본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서 불이 들어오는 캐릭터 신발 – 내 취향이나 기준에는 별로 맞지 않지만 – 을 샀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한켤레의 불이 잘 안들어오는 거였다. 한짝은 아예 불이 들어오지 않고, 다른짝은 반절만 들어오는 거다. 막상 주문한 나도 속상한데, 반품하고 또 주문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잡했다. 내 거였으면 그냥 넘어갈만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할까...하는 갈등으로 찰나의 순간 마음 속이 동하고 있었는데, 하나가 “Pyt med det!”라며 괜찮다는 거다. 그래서 얼른, “신발 색깔이 이뻐서 불이 조금 안들어와도 마음에 들지?”라고 물어봤더니, 그렇다는 거다. 귀찮았던 마음을 한번에 해결해 준 하나의 태도에 고맙기도 하고, 귀찮음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고 다소 미묘한 마음속 갈등이 생겼지만, 그냥 그런 속상한 상황을 그렇게 넘길 수 있는 태도를 가진 하나가 대견해서 그거려니 넘겼다.


자식을 키우는 일에 농사라는 표현이 이런 때 와닿는다. 하루하루의 작은 일들이 쌓여서 아이의 태도에 영향을 주니까. 물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서 농사라는 표현을 쓰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직접 어떻게 발현할지 선택할 수 없는 유전자라는 씨앗이 가장 큰 일을 결정한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콩심은 데 콩나지, 팥이 나지는 않을 게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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