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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수 Jul 08. 2022

내부자 거래

파괴하다

최근 JTBC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클리닝 업>은 투자증권사에서 일하는 청소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인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특성'을 십분 활용해서, 증권사 내부 직원이 불법적으로 판매하는 내부자 거래 정보를 엿들을 계획을 세운다.


드라마는 그 계획의 개연성을 위해, 어떤 투자자에게 주식이 크게 뛸 것으로 확실시되는 기업의 내부자거래 정보를 은밀하게 계속 물어다 주는 증권사 트레이딩팀 팀장을 보여준다. 그 불법적 행위를 증권사의 구석진 곳에서 우연히 듣게 된 주인공도 팀장이 말한 종목에 투자하게 된다. 정말 수익이 나자, 주인공은 아예 팀장의 통화 소리를 더 자세히 듣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때의 우연이 또 일어날 거란 확신이 없었으므로, 결국 팀장 사무실에 청소하는 척 들어가서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불법까지 자행하기에 이른다.


드라마  청소노동자들이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는 이유는 거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현실은 막막했다. 청소일의 대가로는  탕감은커녕 이자의 노예가  처지였고, 로또와 같은 운에 기댄다고 해도 언제 터질지 몰랐다. 내부자거래 정보를 얻는 것도 당연히 그들의 입장에서는 운의 영역에 속하지만, 청소노동자의 특성을 적극 활용한다면야 로또보다는 확률이  높은 편이었다. 이미   성공을 맛본 상태여서 못할 일도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cleaning up' "청소하다, 치우다"라는 뜻뿐만 아니라 "거금을 벌다" 의미로도 사용돼, 극의 전개와도 맞닿아 있다.


이는 내부자 거래가 발각되면 누구도 청소노동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지 않을 거란 점을 간파한 주인공이 역이용한 계획이다. 이 바탕에는 청소용역 주제에 증권사 업무를 어떻게 알겠냐는 무시가 다분하게 깔려 있다. 하지만 내부자의 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은 청소노동자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 곳도 자유자재로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한 청소노동자도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을 이용해서 청소용역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 사무실(원청)에 몰래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는 상상까지 했었다고 터놓은 적이 있었다. 이런 시도를 하려 했던 이유는 자본주의 자체를 교란하는 범죄인 내부자 거래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원하청의 관리자들이, 청소노동자들이 가입한 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벌인 증거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그 증거들을 얻으려고 했던 건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거금을 벌기 위한 욕심도 아니었다. 단지 인간다움을 보장받기 위해 가입했던 노조를 지키려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 노조원의 절반 이상이 관리자의 등쌀에 못 이겨 떠밀리듯이 탈퇴를 하는 탓이었다.


대부분의 노조파괴 공모는 사용자 그룹 내부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노조파괴 행위는 노동법상('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불법이므로, 증거를 최대한 외부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내부자끼리만 '거래'되는 특징을 보인다. 기존의 내부자 거래가 주식투자의 예측성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범죄라면, 노조파괴 공모는 노조가 인간다움을 요구할 때마다 들어갈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범행이다. 노조가 없다면, 그 비용을 아예 들일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조파괴의 공모자들이야말로 '클리닝 업'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조를 없앰'(치우다)과 동시에 '비용 절감'(거금을 벌다)을 하려니 말이다.


노조파괴 행위는 노조를 와해시키는 과정에서 정황으로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상 정황은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결국 내부에서 공모자들끼리 논의한 대화 메시지나 녹취, 문건 등 확실한 공모 증거가 필히 요구된다. 문제는 내부자의 양심선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공모 증거가 외부로 노출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청장치를 통해 관련자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면 노조파괴의 증거로 삼을 만한 단서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녀는 추측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말한 뒤 곧장 "허무맹랑하죠?"라고 되물었다. 도청장치와 같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애초에 증거로써 활용 가치가 없다는 점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며 그녀는 괜스레 머쓱해했다. "노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돼요."


불법적인 파괴행위에 대해 합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틱한 계획'은 그녀의 머릿속에만 맴도는 구상은 아닐 터다. 노조가 파괴되는 상황에 직면한 노조원들이라면 아마도 한 번씩은 생각해봤을 계획일 것이다. 불법의 증거를 잡기 위해 상대와 마찬가지로 불법을 저지르는 상상을 하는 자체가, 어쩌면 파괴의 표적이 된 노조원들의 불행한 현실을 반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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