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이를 키웁니다. 강아지 한 마리도요.
나의 월요일은 꽤나 분주하다. 주말 동안 아이 때문에 못했던 집 정리부터 강아지 산책, 빨래까지 모두 해내려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없는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팔자는 꽤 좋은 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남편이 없어서 혼자 모든 걸 다 해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조용히 내밀면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상대의 눈빛은 이내 측은지심으로 바뀐다. 혼자서 아들을 키운다는 조건에 강아지 한 마리도 더해지니 안타까움은 두 배로 불어난다. 게다가 비쩍 마른 몸에 헐렁한 청바지를 끊임없이 추켜올리는 모습이 란..
홀로 두 녀석들을 돌보는 동안 정작 나 자신은 늘 뒷전이라 170cm를 넘어선 이래로 가장 마른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아이를 낳은 후로 20킬로그램이 훅 빠져 다이어트에 대한 필요성은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까맣게 야위어가는 삶을 살아가면서부터는 거울을 볼 때마다 부쩍 나이 들어버린 얼굴이 서글퍼서 하루 중에도 거울을 보는 시간은 세수를 하는 아침과 저녁 오직 두 번뿐이다.
20대만 하더라도 혼자 사는 일은 늘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다행인 것은 혼자 보내는 시간들을 헛되이 쓰지 않고 달리기를 하거나 책을 읽고 블로그에 주절주절 일기처럼 글을 쓰는데 보낸데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그 시간들을 양분으로 지금을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아로 겨울이 찾아온 나에게는 그 시절 뿌리에 가득 담아둔 ‘혼자의 시간들’이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혼자 강변을 달리고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던 시간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보낼 것만 같다. 호주의 밤은 유난히 길어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온 젊은이들은 늘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30대가 훌쩍 되어버린 그들은 장담컨대 ‘심심했던’ 그 시절을 지금쯤 유난히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육아가 시작되고 나면 여유란 것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릴 테니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은 늙기 전까지는 지금이 유일할 테니 부디 심심함조차 감사하게 여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혼자서 아기와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아이가 조금씩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나아지기 시작했다.(물론 지금도 혼자 둘 수는 없는 26개월이지만. 꼬마버스 타요를 켜준 다음 불꽃같은 속도로 쓰레기를 냅다 던져버리고 올라오는 정도랄까..) 처음엔 어설픈 걸음마로 여기저기 부딪치고 울어대는 통에 눈을 뗄 수조차 없었는데 요즘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 되면서 크고 작은 부탁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문제는 홀로 하는 육아와 함께, 가장으로 살아가는 법도 익혀야 하는 데 있었다.
가장 처음 느꼈던 어려움은 화장실에서 시작되었다. 화장실 전구가 언젠가부터 깜빡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순식간에 빛을 집어삼켰다. 홀로 있는 낮이라면 문을 열어두고 볼 일을 보면 그만이었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의 목욕을 시킬 때면 컴컴한 어둠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비누거품이 잘 닦였는지, 엉덩이에 눌어붙은 응가는 잘 씻겨져 나갔는지를 도통 확인할 수가 없었다. 홀로 전구를 갈아보겠노라며 호기롭게 천장에 올랐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발에 피멍을 가득 얻고 난 뒤로는 용감하게 변기를 밟고 올라서는 일은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아파트 경비실에 씩씩하게 찾아가 남편이 없는 사정을 설명하고 경비 아저씨와 함께 돌아와서야 비로소 전구를 갈고 환한 세상에서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화장실 전구를 가는 일이야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지만 내가 남편에 대해 본격적으로 미움을 품게 되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해야만 하는 일, 바로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행위였다. 하루 두 번은 응가를 하는 아이 덕분에 하루에도 두툼한 기저귀 뭉치가 대여섯 개는 기본으로 나왔고 강아지의 쉬야패드도 야무지게 둘둘 말아 넣으면 20리터 봉투는 일주일을 채 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내용물이 담겨있었던 플라스틱과 나의 고통을 알차게 나눠주었던 무알콜 맥주캔까지 쓰레기는 아무리 버려도 버려도 쌓여가는 통에 나는 자주 남편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 당시만 해도 두 돌이 안된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서 분리수거통에 가득 쌓인 재활용품을 가득 들고. 기저귀로 들어찬 종량제 봉투를 다른 한 손에 든 채로 아기띠를 메고 밖을 나서곤 했다. 전쟁을 치르는 모습으로 나간 쓰레기장에서는 자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슬리퍼를 질겅질겅 끌며 잠옷 바람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누군가의 남편들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왜 쓰레기도 버려주지 않는 남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떠올렸고 어떤 날은 사랑에 콩깍지가 씌어 결혼한 나 자신이 한심해서 눈물이 났다. 다른 무엇도 아닌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 남편을 매일 미워했으니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한 달에 네 번은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셈이다. 그는 먼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착실히 일하고 있음에도 이유 모를 미움을 받았으니 그 억울한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얼마 전 어영부영 서른여섯 번째 생일 보냈다. 육아와 공모전 마감을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남편의 회사 대표에게 카카오톡으로 선물과 함께 메시지를 받았다. 남편이 몸담고 있는 곳은 스타트업이기에 늘 넉넉지 않은 살림으로 회사를 꾸려가야 하고(언제 어떻게 문을 닫을지 모르고), 그래서 우리 가족이 이렇게 떨어져 사는 일은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혼자 육아를 하다 보면 이런 상황들이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날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대표가 보낸 메시지를 곱씹은 것도 필히 그런 날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그런 시간도 또 필요했던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날은 유독 떼를 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마음이 좋지 않아서 대표가 보낸 메시지도 그리 달갑지 않은 그런 회색 빛의 날이었다. 몇 주 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앉아 대표가 보내온 메시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웅크려 스스로를 방어하기에 바빴던 내가 그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니. 그러고 보면 남편과 내가 떨어져서 보낸 지난 10개월은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외롭고 힘들어서 그를 만난 시간 모두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부부로의 역할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성장하는 시간임에는 분명했다. 부부 상담에서 시작해 개인 상담을 다닌 일을 비롯해 감정의 나락에서부터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차근차근 걸어 올라오는 반년의 시간 동안 나는 남편에게 의지하던 습관을 벗어던지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함을 얻었다. 어디에도 위로받을 수 없을 때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아이 그리고 강아지와 발맞춰 걷는 시간 동안 길 위에서 자주 행복을 주웠다.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은 기꺼이 누군가의 도움을 얻기 위해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일들은 용감하게 마주하며 허들을 하나씩 넘어섰다. 엄마로서도 부지런히 지냈지만 '나'로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올 해만 벌써 51권의 책을 읽었다. 그림책까지 더해지면 거의 80권의 책을 읽은 셈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이후로는 낮 시간을 이용해 쓰레기를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강아지와 산책을 나선다. 하루 두 번 꼬박꼬박 산책을 하고 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살면서 가장 단단한 몸을 가진 요즘이다. 주말이면 엄마와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간다. 스무 살이 넘은 이후 한 번도 엄마와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는데 서른이 넘은 후에야 고향에 돌아와 그럴싸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엄마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이토록 다정하고 아쉬울 수가 없을 만큼 모든 계절이 알차게 채워지는 중이다. 10월에는 브런치 공모전에 도전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보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믹스 커피 한 잔을 타서 책상에 앉으면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까지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정적을 채우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새벽 다섯시 알람이 울리면 반가운 마음으로 가장 이른 모닝커피를 만들어 모니터 앞에 앉았다. 몇 년째 도전하는 일이지만 올 해는 조금 더 간절한 바람과 희망을 담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전시회에 참여하는 기회가 생겨서 잠실에서 3주 동안 전시도 진행하게 되었다. 전시를 위한 글과 전시 서문을 맡아 작성하면서 하루종일 '마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 흘려보낸 마음 그리고 다시 붙잡고 싶은 마음들에 대해서. 나의 손 끝에 가장 오래 머물렀고 마지막까지 고치고 또 고쳤던 글은 기획자님의 마음에도 따스하게 닿아서 마침내 전시를 여는 글귀가 되었다. 만약 남편과 함께였더라면 매일 밤 맥주캔을 부딪히며 희로애락을 나누느라 스스로를 들여다볼 시간은 엄두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대표가 말했던 것처럼 혼자 두 생명을 책임지며 보냈던 지난 고독의 시간은 그래야만 했기에 나에게 주어진 것이었음을 이제는 잘 안다.
가장 다행스러운 일은 내가 '나'로 살아가는 동안 미움이라는 감정이 많이 옅어졌다는 점이다. 미워할 겨를이 없으니 요즘은 남편을 생각하면 미움보다는 측은지심이 앞선다. 그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 과거의 일이었다면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 되었다. 고된 육아에 치여 쓰러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버틸 체력을 키우고 하루 끝에 자그맣게 남아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이렇게 차곡차곡 모아둔 시간들이 가지런히 자라 든든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주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나무가 자라고 또 자라 울창한 숲이 될 수 있다면 오늘의 고단했던 육아도 훗날 웃으며 기억해 낼 수 있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