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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Nov 24. 2023

짧은 만남, 긴 안녕

짧은 만남을 끝내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


 월요일은 일주일 중에서도 가장 한가한 축에 속하는 날이지만 이번 월요일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3개월 만에 한국에 온 남편이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국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여덟 시에 김행공항을 떠나 호찌민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시골에서는 새벽 다섯 시 공항버스를 타야 하는 일정. 일요일은 남편과 새벽 한 시가 넘도록 대화를 나눴다. 딱히 중요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세 시간 후면 다시 일어나 눈곱을 떼고 배웅을 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있었기에 잠드는 일조차 아쉬웠던 이유에서였다. 남편의 지난 머묾은 초록이 무성했던 8월이었다. 녹음이 무성했던 사진을 바라보다가 남편은 말했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샛별이가 정말 많이 컸네”


 늘 곁에서 아이의 자람을 지켜보고 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한국에 다녀갈 때마다 부쩍 자란 아이를 보며 놀라곤 했다. ‘엄마’를 겨우 말하던 아이가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엄마 보물' 같은 아름다운 말들을 선물처럼 건네주었을 때 남편의 눈에는 잠시 호수가 내려앉았다가 사라졌다. 아이가 18개월이 되었을 때 한국에 돌아왔는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27개월에 접어들었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에 미루어 우리가 얼마나 오래 떨어져 있었는지를 가늠해 볼 뿐이었다.




 

 새벽 다섯 ,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를 깨우지 못해서 짐을 챙겨 들고 둘이서 몰래 현관문을 빠져나왔다. 공항버스에 오른 남편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작 십오 분의 시간이지만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가 깰까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는 ,  시간을    터라 다시 집에 가면 누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마음이 무색하게 현관문을 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이 몽땅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기왕 잠이 달아난 김에 아침이 오는 풍경을 두 눈에 담으며 하루를 시작하기로 한다. 믹스커피 두 개를 털어 넣고 진하게 커피를 마셨다. 아이가 채 일어나지 않은 새벽 여섯 시의 거실은 여전히 적막이 감돌고 나는 잠시 꿈을 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젠 남편이 있는 것보다 없는 생활이 더 익숙해져 버린 까닭일 테다. 배낭 하나만 메고 돌아온 그는 머물렀던 자리도 깨끗하게 비워두고 돌아갔다. 그가 벗어두고 간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밀어 넣으면서야 비로소 그 시간들이 존재했음을 안다. 몇 시간 전 그가 눈을 붙였던 침대에 누워 한동안 그리워질 냄새를 뒤짚어쓰고 한 손으로는 잠들어있는 아이의 발을 만지작 거렸다. 잠시후면 깨어나 쫑알쫑알 질문을 던질 아이를 생각하니 산다는 게 문득 어렵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강남 출신이라는 그의 직장동료는 큰 어려움 없이 가족 모두가 베트남으로 이사를 떠났지만 돈 한 푼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 우리에게는 회사의 지원 없이 다른 나라에서 삶을 꾸리는 일이 모든 걸 내건 도박과 다를 바가 없다.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여전히 나는 그 도박이 두려워서 떠나는 일을 애써 회피하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남편과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그가 화장실을 가기만 해도 다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던 모습이었는데 막상 남편이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였는지 아이는 하루에도 서너 번 “아빠는 어디 갔지?”라는 물음을 던진다.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고, 샛별이 자동차 사주려고 돈 벌러 갔다고 대답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기에는 아이의 세상은 아직 너무나도 작다. 운다고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둘이서 살아가는데 익숙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질문을 던질 뿐 아이는 울지 않았다. 대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원장님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제야 콧등을 무심히 훔쳤을 뿐이다.



 떠나는 이는 가야 할 길이 멀어 슬퍼할 겨를도 없이 떠났지만 남아있는 이는 떠난 이의 흔적을 정리하며 마음이 더 깊어진다. 지난 2월, 아이와 예방접종을 위해 한국에 잠시 돌아왔다가 베트남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갑작스럽게 선언했을 때 호찌민에 홀로 남은 남편은 그날 이후로 아이 방의 문을 꼭 닫아두었다고 했다. 소중한 것을 아껴먹듯 그리움이 밀려올 때면 아이가 머물던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 아이의 애착 이불에 누워 잔잔히 스며들어있는 아기 냄새를 맡곤 했다고. 그게 그가 그리움을 달래는 방법이었구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민들레 홀씨를 닮았다. 건드리면 툭하고 눈물이 터지듯 그리움이 아스라이 흩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렇게 오래오래 날아 그리운 이에게 홀씨가 닿을 수 있다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하나씩 치우며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음에 만났을 땐 조금 더 우리가 나은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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