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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pr 03. 2024

주부이지만 육아만 하기엔 인생이 너무 소중해서요

독박애개육아를 하는 엄마의 일주일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엄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0개월이 되던 날부터 어린이집 등원을 했던 작은 아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응을 잘해주었고 어떤 주말은 에너지 넘치는 아들을 따라다니다 잔뜩 지쳐서 월요일을 기다리게 되기도 한다. 어린이집 등원은 경비실 앞에서 매일 아침 9시 5분을 조금 넘긴 시간에, 하원은 오후 세시 반에서 4시 사이에 이뤄진다.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서 자주 다른 엄마들을 마주치지만 어린이집 엄마들과 따로 커피를 마신다던지, 수다 시간을 가진 경험은 거의 없다. 아이가 어린이집 차량을 타고 떠나고 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이유에서다.



 나의 일주일은 이제 나름의 패턴이 정해졌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내려 머리가 가장 맑은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을 한다. 글을 쓰거나, 요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바로 요즘의 일상. 그리고 7시를 조금 넘기면 안 방에서 기지개를 켜는 아이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림책을 들고 나온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하며 하루 일정을 간략히 나누고 등원준비를 하면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새 흘러가 버린다. (그래도 32개월 차가 된 아들은 언어 구사력이 꽤 괜찮아서 대화 상대로 아주 그만이다.) 그렇게 아침의 세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흐르고 만다.



 아이가 어린이집 차량을 타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와 나와의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존재를 위해 다시 운동화를 신는다. '산책'과 '간식'이라는 단어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 갈색의 털복숭이 친구는 아침 9시와 10시 사이만 되면 나의 모든 행동거지를 까만 눈동자로 쉼 없이 쫓는다. 그리고 '산책'이라는 단어가 들려오면 부리나케 달려 신발장에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이따금 산책을 할 때면 "강아지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 키워. 매일 산책도 해줘야 하고.."라는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될 때가 있다. 감히 말하건대 그 정도의 책임감이 없다면 섣불리 반려생활을 시작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1일 1 산책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

 여하튼, 나는 애초에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그래프에서는 부지런함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이러한 삶을 큰 불평 없이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 대한 보람은 행복이 묻어나는 강아지의 뒷모습에서 느낄 때가 많다. 반려생활의 숙련도가 어느 정도 쌓인 이들이라면 반려동물의 뒷모습에서도 기분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작고 가볍게 하지만 기분 좋음이 묻어나는 엉덩이의 흔들거림은 나만이 알 수 있는 소중한 장면이다. 물론 우리 집 강아지는 전속력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에서 이미 그 기분 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 바이고 말이다.  



 일주일을 놓고 보면 월요일이 가장 (마음이) 한가롭다. 주말 내내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고 나면 월요일은 주말 동안 치우지 못한 집을 치우고 가득 쌓인 빨래를 하고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몸을 잠시나마 쉬게 해주는 시간이랄까. 물론 단 하루도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는 아침 루틴을 끝내고 나면 아이패드와 책 한 권을 챙겨 카페로 향한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을 땐 카페 주인과의 관계가 그리 가깝지 않은 곳을 찾아간다. 가벼운 인사와 안부 주고받음 정도가 있는 곳. 딱 그 정도의 인사를 하는 카페도 다닌 지 1년째가 되어가니까 주차장에 들어서면 사장님이 나를 알아차리시는 정도가 되었다.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그 정도의 관계면 충분하다.



 화요일과 목요일, 적어도 둘 중 하루는 클라이밍을 간다. 요가를 하고 있지만 클라이밍은 또 다른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이기에 남편이 보기엔 수많은 취미 활동 중 하나처럼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엄연히 다른 활동들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성취감을 클라이밍을 하며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랄까. 물론 손가락 마디가 굵어져서 더 이상 결혼반지를 낄 수 없고 손등은 홀드에 데인 흉터 서너 개가 영광스럽게 남았지만 여전히 나는 암벽에 오르고 있다





매주 수요일 그림책 모임


 그리고 수요일은 마침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모임이 있다. 도서관 평생학습원에서 시작된 이 모임은 그림책을 만드는 목표를 가지고 모인 엄마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3개월은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출판하는 과정을 함께 했고 각자 책을 출판한 후에는 조금 더 심도 있는 그림책 읽기를 위해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모임을 하고 있다.     

 모임의 진행은 그림책지도사 2, 3급 과정을 마치신 선생님들이 다양한 그림책들을 통해 표현 기법들을 소개해주시거나 한번쯤 읽어볼 만한 그림책들을 함께 읽고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나누며 이뤄진다. 나이는 30대에서 60대까지 서로 다르지만 각자가 경험해 온 삶의 경험들을 그림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꺼내어놓으며 삶의 지혜를 나누는 고마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림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으면 좋을지를 얻어가고, 장성한 자녀가 있는 선생님들은 젊은 엄마들에게 배움을 나눠주시는 역할을 주로 하고 계신다. 이 모임을 통해 나는 세상에 있는 그림책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고 그림책은 단지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님을, 그림책을 읽는 방법과 더 나아가 책을 읽고 아이과 함께 그림책 이후의 시간을 보내는 법까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만난 관계이기에 누군가를 비난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책들을 권하고 함께 읽기에도 두 시간은 충분히 바쁘다. 좋은 책을 알려주고 함께 읽고 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타인이 가진 생각에 놀라고 감탄하느라 그 두 시간이 어떤 날에는 지나치게 빨리 흘러버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들 나에게 너무 바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냐며 종종 걱정스러운 말을 건네지만 이 모임에서는 나보다 더 바쁜 엄마들이 많다. 그림책 모임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가거나 오후 수업 준비 혹은 장구, 서예와 같은 또 다른 배움을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기시는 모습에서 크고 작은 자극을 받으며 엄마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용기를 얻는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고 토닥거리며 자신이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매주 수요일이 늘 기다려지는 이유다.








 한국에 돌아와 홀로 육아를 했던 지난 1년 중 절반은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수동적으로 우울에 젖어 흘려보낸 시간이었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언제 떠날지를 고민하는 동안 미워할 대상을 찾아 그 미움을 끊임없이 마음에서 키워나갔다. 무기력하게 집에 앉아 sns에서 비춰지는 남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 내려갔던 시간들, 돌아보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모습이기만 하다. 그때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요즘의 나는 매일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은 요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될 소양을 공부하기 위해 아이를 잠시 친정에 맡겨두고 요가 수련을 가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일주일 동안 채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혹은 아이의 장난감과 그림책을 빌리기 위해 육아종합지원센터와 도서관을 부지런히 다녀오는 일과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눈 떠 있는 시간들을 쉴 틈 없이 보내고 나면 부정적인 것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일 밤,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며 스르륵 잠이 든다.


 요즘은 문득 이런 시간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베트남으로 떠나고 나면 이러한 모임들을 그리워하며 지내게 될 내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유에서다. 어떤 날은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의 하원 시간이 코 앞이라 다시 헐레벌떡 아이를 받으러 내려가기도 하지만 아이를 마중 나가는 그 마음 또한 너무도 반갑고 또 따뜻하다. 엄마의 시간을 부지런히 보내고 온 터라 하원을 하고 돌아오는 아이가 유난히 기다려진다. 빌려온 책과 장난감들을 기쁜 얼굴로 마주하는 아이를 보며 바쁨에 대한 의미를 찾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또 걸어가고 있는 길이 맞다는 작은 확신을 가진다. 내가 바쁘게, 조금씩 쌓아 올린 시간들이 희미하지만 작은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으며 남편이 있는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 바쁜 시간들을 더 감사하며 보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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