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생명에게도 조금의 온기가 닿기를 바라며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로 또 엄마가 된 이후로 나는 조금 더 마음이 여린 사람이 되었다. 생명을 품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되서인지 길고양이를 만나도 괜히 가방을 뒤적거리며 츄르가 있는지를 살피게 된 것이다. 서울에 살았을 땐 그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버텨내느라 고작 두어 달에 한 번, 유기견 센터로 봉사활동을 가는 게 전부였다면 고향에 돌아오고 난 뒤로는 산 속이나 인적이 드문 시골에 버려져 배고픔을 안고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는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포인핸드’라는 어플을 알게 된 이후로는 안타깝게 주인의 손을 놓친 그래서 공고 기간이 끝나면 별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슬퍼한다.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슬퍼하는 일뿐이어도 슬픔을 멈출 수가 없어서 일주일 중 한 번은 꼭 새로이 올라온 동물들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눈시울을 붉히고 있을 어떤 이가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에서다.
꽤 오랫동안 포인핸드를 보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서울지역의 포인핸드에서는 작고 예쁜 외모의 품종견들이 주를 이루지만 시골에서는 한참을 떠돌아다녀서 모습이 엉망이거나, 덩치가 꽤 있는 믹스견들이 대게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시골의 인식이란 게 ‘반려견’보다는 ‘동물’에 가까워서 마당의 짧은 줄에 묶여 살거나 풀어놓고 사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 그런 친구들이 행여 집을 찾아오지 못하거나 임신을 하게 되는 일도 다반사에 요즘은 인적이 드문 산이나 밭에 동물을 버리고 가는 일도 종종 있다. 산속을 떠돌다 다시 새끼를 낳고 또 그 새끼들이 야생화되는 일들이 흔치 않게 일어나는데 1-2주에 한 번은 갓 태어난 새끼강아지들이 포인핸드에 올라온다. 그리고 전염병에 취약한 새끼 강아지들은 많은 경우는 별이 되어버린다. 무척이나 애석한 일이다. 어미개는 그 생명을 품고 또 산통을 겪으면서 얼마나 두렵고 또 힘들었을는지. 그 고통을 생각하면 부디 새끼 강아지들이 좋은 가족을 만나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얼마 전까지는 운전이 미숙한 내가 유기된 동물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시야가 좁아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닐 때 간혹 마주한 아이들은 동네를 자유롭게 다니는 친구들이라 어르신들이 풀어놓고 키우는 강아지겠거니 생각하며 (보통은 그러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쳤을 뿐이었다. 한 강아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반년 전쯤, 포인핸드에서 유기견이 자주 발견되는 장소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지날 때는 유심히 길을 살피며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불구불한 산길의 왕복 1차선 도로 곁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검은색 강아지를 발견했다. 차를 세우기에 애매한 곳이라 차마 멈춰 서지 못하고 지나친 기억이 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 길을 우연히 지나다가 정류장 옆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검은 강아지를 다시 지나치게 되었다. 인적도 드문 버스 정류장. 딱 한 대의 노선만 허락된 그 길에는 오가는 차는 무수히 많았지만 강아지를 데려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녀석과 나의 인연이 된 것은 세 번째 만남에서부터였다. 약속을 위해 구불구불한 산길을 우연히 지나면서 눈길을 던진 그곳에는 까만색 형체가 정류장 옆 풀밭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 차를 돌려 녀석이 괜찮은지 확인을 하러 돌아갔다. 혹시 차에 치여 죽은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레 차를 세웠을 때 고개를 살며시 들어준 녀석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녀석을 처음 지나쳤던 것이 몇 달 전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인적도 없는 정류장에서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를 주인을 기다렸을 시간이 애석하게만 느껴졌다. 마음씨 좋은 누군가가 그간 녀석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이따금 채워주셨는지 딸기를 담는 빨간 소쿠리 3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차 구석구석을 뒤져보니 강아지 간식과 2리터 생수병이 다행스럽게도 발견되었고 나는 누군가가 놓아두고 간 빨간 소쿠리를 물로 헹궈 깨끗한 물을 채워주었다. 잠시 나를 경계하던 녀석은 바스락거리는 간식 봉지 소리가 들리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간식을 먹는 동안 나는 녀석의 상태를 눈으로 훑었다. 한쪽 눈이 문제가 있어 보이는 데다 차에 치였는지 다리도 불편해 보였다. 어쩌면 녀석은 불편한 다리로 멀리 갈 수 없어서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몇 개월의 시간을 홀로 버틴 것일지도 몰랐다. 그 주변은 이렇다 할 인가도 없는 곳이었기에 누군가의 집에서 나왔다기에는 유기의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나마 그 몸을 뉘일만한 곳이라곤 모기가 많은 풀숲뿐이어서 녀석이 하루종일 엎드려있었던 자리는 둥그렇게 풀이 누워있었다. 인간에게는 몇 개월의 시간 그리고 그 강아지에게는 몇 년의 시간 동안 위로가 되어준 공간이었을 것이다. 바로 옆엔 차들이 인정없이 달리고 있었고 강아지 한 마리가 그곳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동네를 지나는 사람들 몇몇과 밥을 챙겨주는 사람뿐이었다. 그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백미러를 돌아봤을 때 녀석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멀어져 가는 차의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풀벌레와 싸우며 풀밭에 웅크리고 있을 강아지 생각을 했다. 동물도 인간도 어디서 태어나고 자라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고 또 애처롭기도 해서 그날 밤은 꼭 맥주 한 캔이라도 마셔야 슬픔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녀석을 떠올리며 오늘은 강아지 사료와 간식을 챙겨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집에서부터 20분 거리에 있는 그 인적 드문 정류장이 멀리서 보였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어김없이 동그랗게 누운 풀숲 위로 웅크린 강아지의 모습이 보였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녀석을 부르자 내가 밥을 주는 사람이란 걸 아는지 녀석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꼬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대야에 담겨있는 개미와 벌레들을 헹궈내고 깨끗한 물을 담는다. 다른 그릇에는 집에서 챙겨간 사료를 부어주었다. 손에 쥐고 있던 간식 한 봉지를 모두 비워내자 녀석은 그제야 내가 챙겨준 사료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치아 상태를 보니 나이도 꽤 어려 보이는 녀석이다. 무슨 연유로 주인은 이곳에 녀석을 버려두고 간 것 인지.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더 좋은 선택지들이 있었을 텐데. 진드기 약을 발라주어야 할 것 같기도 해서 오늘은 녀석의 귓속과 몸을 살펴보았다. 홀로 아이와 강아지 한 마리를 돌보면서 여유라곤 없는 내가 미처 거둘 수도 없고 또 아픈 강아지를 선뜻 입양해 줄 만한 이도 없을 터라 마음이 답답하기만 했다. 출국 일정이 점차 다가오고 있어서 마음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차에 올랐다. 내가 차에 오르면 녀석은 늘 그렇듯이 둥그렇게 누운 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슬픔이 조금 내려앉은 눈으로 내 차를 바라본다. 잠시 멈춰 서서 백미러로 녀석을 바라보며 무거운 마음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나에게는 돌보아야 할 아이와 강아지 한 마리가 남은 하루를 아낌없이 달라고 채근하기 시작한다. 슬플 겨를도 없는 나의 일상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인적 없는 정류장에 들러 녀석과 마음을 쌓아갔다. 어떤 날에는 나보다 먼저 밥 주는 분이 다녀가셔서 깨끗한 일회용 그릇에 사료와 물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런 날엔 다른 그릇에도 넉넉하게 먹을 사료를 담아주었고 깨끗한 물도 한 그릇 더 만들어주었다. 이제 내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는지 차를 대면 이미 꼬리를 흔들며 운전석 가까이 와있는 영특한 녀석이다. 온전한 검은색이 아니라 설핏 진도의 색이 비치는 걸 보니 녀석의 엄마와 아빠는 어떤 모습이었을지가 대략 알아차려졌다. 하루에 이십 분 남짓,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짧은 시간 중 허락되는 시간, 그마저도 왔다 갔다 이동하는 것까지 더한다면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지만 강아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기에 그곳에서 깊은 밤을 지냈을 녀석을 떠올리면 부지런함이 앞선다. 월요일, 아이의 등원을 시키고 집에 있는 강아지 산책을 다녀온 뒤 사료와 간식 그리고 선반에 넣어둔 강아지 삑삑이 장난감 하나를 챙겨서 길을 나섰다. 오늘은 녀석과 더 오래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책 한 권과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 한잔도 야무지게 챙겼고 말이다. 물 한 방울 없이 비워진 그릇을 다시 헹궈내고 물을 채우고 사료를 가득 채워주었다. 오늘은 새로운 간식을 가져왔노라며 조금씩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눈을 바라본다. 차에 넣어둔 삑삑이 장난감을 꺼내어 주자 생전 처음 보는 것인 듯 이리저리 냄새를 맡고 코로 밀어보는 모습이 꽤나 천진난만하게 느껴졌다. 차 문을 활짝 열어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책을 읽고 내 곁에 앉은 녀석을 바라보다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여유를 즐기는데 갑자기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다.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차가 멈춰 설 곳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는 ‘유기동물센터’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언젠가 저 차가 이곳을 지나면 녀석을 데리고 가지 않을까, 정말 여러 번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차에서 내린 아저씨는 트렁크를 열어 커다란 그물채를 꺼내 강아지에게 다가가기 시작하셨다. 녀석도 이내 위험을 감지하고 으르렁 거리다 아픈 다리로 풀숲으로 도망쳤는데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그물채에 걸려 나오고 말았다. 큰 소리로 울부짖는 녀석과 그걸 보며 어쩌지 못하는 마음.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자리에 얼음처럼 멈춰 서서 울고 있는 나에게 아저씨는 ‘몇 번을 왔는데 오늘에야 드디어 잡았다, 한 마리당 2만 원 밖에 못 받는데 기름값도 안된다’며 한탄을 하신다. 물론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너무도 서럽게, 말도 채 하지 못하고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강아지 밥을 챙겨줘서 고맙다며 강아지와 인사할 시간을 주셨다. 켄넬에 갇혀 잔뜩 웅크리고 있는 녀석을 보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과연 이 고단한 길 생활을 청산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내 결과가 예상되는 너의 미래를 이렇게 덤덤하게 바라만 봐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길을 떠나는 아저씨에게 강아지에게 삑삑이 장난감을 함께 넣어주실 수 있는지 부탁했다. 그렇게 차가 멀어져 갔고 나는 익숙해진 그 정류장에 멈춰서 하염없이 울다 부푼 눈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고생했노라며, 그것이 너의 최선이었다고 말하지만 이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든 털어내 보고자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책상에 앉아 마음을 적어 내려가본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10일의 공고기간 동안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의 상황이 먹먹하기만 한데 손 끝에는 나에게 고마움을 전하던 녀석의 온기가 남아있어서 오래도록 마음이 아플 것만 같다.
내 손을 오랫동안 핥아주던 그 마음, 그게 네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