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심리학적에 대한 접근,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
어젯밤에 개봉 전부터 너무 기대했던 '나이트메어 앨리'를 보고왔다. 평소 보고 싶던 영화라도 일정에 치이다 보면 영화관에서 내려가기 직전에 급하게 보거나,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개봉한 주 주말에 보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글쓰는 일로 돈을 벌다보니 항상 생산적인 글쓰기만 하고 싶은 욕망이 들지만, 이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무보수의 글쓰기를 하고 싶어졌다. 나에게는 그만큼 매력적인 영화였다.
나이트메어 앨리를 보면 탄탄한 스토리와 영상미, 흠잡을 곳 없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찝찝하거나 무언가 해결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이만큼 떡밥을 적당히 주고 준 만큼 수거해가는 영화도 드문데도 그런 느낌이 든 이유는, 영화에서 주된 소재로 쓰이는 시계의 의미나 중간에 사용되는 프로이트 심리학 용어 등이 해결되지 않아서 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관람자의 해석에 일정 부분 맡겨놓는 영화를 좋아한다. 단순히 '주인공이 살았을까, 죽었을까'가 아닌, 영화 중간중간의 상징적 장치에 대한 해석을 관람객에게 맡겨 놓는 영화.
전체적인 줄거리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방랑하던 남자가 카니발에서 일을 시작하며 독심술을 배우고, 그 독심 술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성공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파멸의 길을 걷게 되는 이야기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자는 카니발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때 살아있는 닭의 목을 꺾고 피를 마시는 기인(geek)을 보게 된다. 서커스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 기인을 구해오냐고 묻자, 그 사람은 대답한다. "알콜 중독자처럼 보이는 노숙자에게 '기인'이 하는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거야, 처음엔 잠시 임시직을 맡아주는 것은 어떻냐고 묻지. 따듯한 잠자리와 음식, 술을 제공하는 댓가로. 그리고 그 사람에게 주는 술에 아편을 한방울씩 섞는거야. 그럼 그 사람은 아주 평안하고 행복한 느낌을 매일 느끼곤 하지. 그러던 어느 날, 임시직일 뿐이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주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미치려고 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그렇게 '기인'의 일을 할 사람을 구하는 거야." 이 말을 들은 남자(브래들리 쿠퍼)는 인상을 찌푸린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관련없는 일이라는 듯이, 그러나 자신이 한 연속된 선택의 결과로 마침내 자신이 '기인'이 될 것을 선택하고 만다.
영화의 숨은 의미를 찾는 재미
"영화 밖의 내용을 끌어다가 영화에 대응시키는 것은 아니냐, 영화는 영화로 봐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영화 속에서 충분한 메세지를 주었다. 영화에 집중하느라 케이트 블란쳇의 입에서 나온 심리학 용어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소중한 주말 이틀 동안 영화를 볼 수는 없다. 다음주에 한번 더 볼 용의는 있지만) 분명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아니면, 엘렉트라 콤플렉스였다.
독심술의 기초는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 그 사람의 신발이나 걸음걸이, 소지품, 태도를 통해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다시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 당연한 내용을 흘린다. 예컨대 나같은 이십대 후반의 여성에게는, 옷차림이 남루하고 고민이 많아 보이면 '일을 구하고 있는데 어렵구나' 또는 '집에서 나와서 혼자 살고 있구나' 라고 말을 걸기 시작하고 옷차림이 깔끔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면, '하는 일이 요새 잘 풀리나 보네? 그런데 무슨 고민이 있구나'라고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대답에 따라 상대방은 나에 대해 더 파악하고, 그 사실을 기반으로 다시 추측한 내용을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상대방이 내 과거나 현재 모습을 알아맞추었다는 믿음으로, 그 사람이 나의 미래도 예측할 수 있거나 망자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게된다. 극 중의 주인공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상대방의 과거나 미래를 읽는 척하며 돈을 번다. 그리고, 그 독심술의 기저에 깔려있던 것이 프로이트 심리학이었다. 대부분의 남성은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을, 그리고 여성은 어머니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심리적 기재인데, 말이 적대감이지 사람마다 발현되는 모습은 다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근기 (2세-6세 6개월) 동안 나타났다가 해소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남근기 동안 남아는 어머니와 성적으로 결합하려고 애쓰며, 아버지가 죽거나 사라지기를 바란다. 또한 근친상간과 부모 살해에 대한 소망을 가지며, 이로 인해 보복 당할 것을 무서워한다. 특히 남아는 거세 될 것을 무서워한다. 거세 불안의 결과 남아는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아버지에 대한 적의를 억압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약화시킨다. 남아가 어머니를 포기할 때, 그는 잃어버린 대상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게된다. 즉, 자신을 어머니와 동일시하게 되거나 또는 아버지와의 동일시하게 된다. 여성향이 강한 남성은 자신을 어머니와 동일시하며, 남성향이 강한 남성은 아버지와 동일시하게 된다.
반대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여아에 해당하는 심리적 상태이다. 여아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근친의 욕망, 어머니에게 느끼는 살해의 욕망, 자신의 자궁과 성기가 공격당할 것이라는 불안 등. 하지만 여아는 눈에 띄는 외부적 성기가 없기에 거세 당했다고 생각한다. 여아는 이러한 상태에 대해 어머니를 비난하게 되고, 따라서 어머니에 대한 집중은 약화된다. 게다가 어머니는 다른 면에서 소녀를 실망시킨다. 여아는 어머니가 충분한 사랑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어머니의 사랑을 형제자매와 나누어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대한 선망이 약화됨에 따라 소녀는 아버지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여아의 사랑은, 아버지가 여아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망과 섞인다. 이것은 '남근 선망'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기 동안 이 콤플렉스는 거의 의식되지 않지만, 콤플렉스가 해결된 정도에 따라 행동, 태도, 대상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이 콤플렉스로 인한 선택의 차이가 있다. 즉, 유아기 동안에 부모와의 갈등을 겪고 (특히 동성의 부모)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은 자는 성인기에도 사고 또는 행동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서 주로 자신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성과 연애를 주로 하거나, 남성의 부와 능력에 의존 또는 집착하는 연애를 하는 경우, 상담사 또는 심리학자들이 유아기때 가정의 불화나 아버지의 부재를 묻는 것이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의 콤플렉스로 인한 선택들과 괴로움이 엿보인다. 그리고 남자의 선택들은 관람객들에게 의문을 자아낸다. 정말 아버지를 죽인걸까, 피트(자신에게 독심술을 알려준 아버지와 같은 사람)를 죽인걸까, 남자는 정말 기인과 아버지를 동일시하고 있었으며, 마지막엔 기인(아버지)과 동일시되는 선택을 한 걸까. 한편 피트가 처음 남자에게 독심술을 알려줄 때, 남자가 관중들에게 독심술을 할 때, 그리고 남자가 케이트 블란쳇에게 독심술을 하고 케이트 블란쳇이 남자의 심리를 읽을때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불안함을 언급한다. 이 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연상시키게 하는 장치들이었다.
극중 음향 효과로 시계소리가 강조된다던가, 남자의 시계를 통해 처음 독심술을 배우게 된다던가, 마지막에 남자는 자신의 시계를 끝까지 가지고 있다가 시계를 술과 바꾸는 장면을 보면서 그러니까 저 시계의 의미가 무엇이지? 라고 생각했었다.
단순히 시계 소리와 결국 아버지(기인)과 동일시 된다는 관점에서 니체의 영원회귀가 생각나서 찾아보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은 비약인 것 같고. 영화에서 주어진 힌트 안에서만 보자면 이것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일환으로 보였다.
아버지가 싫어서 술을 절대 안먹게 되었고, 아버지를 죽일만큼 싫어했던 남자는 아버지의 소지품이었던 시계를 끝까지 간직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시계의 의미는 간단하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만큼 미워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애착이 그토록 강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을 할 때 절대, 무조건 등의 완경한 말을 쓰는 것은 타인에게 나를 알리고 싶다는 무의식적 기재라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외 담고 싶은 내용이 정말 많지만, 아쉽게도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이 영화 해석 및 리뷰는 여기까지만. 비록 친절하고 자세한 해석은 아니지만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정도 해석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그 외의 부분들은 자신의 해석에 맡겨두길! 타인의 생각을 읽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나만의 결론을 내리는 편이 훨씬 재밌으니까.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읽은 프로이트 서적. 1989년에 엄마가 우동 먹고 길거리에서 산 책이다. 우리 엄마 18살에 읽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