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쉐어홈 사람들
“노노노노! 노 워크!”
카일이 손을 저으며 강력하게 본인의 입장을 표현한다. 카일은 언어로 아주 단순한 기본적인 의사 소통만 가능해서 얼굴 표정과 팔로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높인다. 기능을 거의 잃은 오른팔은 항상 기역 자로 굽어 있어서 왼팔 위주로 생활을 하는데, 손가락들은 일반 성인 손가락 굵기의 반이거나 짧거나 엄지 손가락은 손을 흔들면 종이장 흔들리듯 앞뒤로 마구 흔들린다. 손가락을 지탱하는 마디가 없는 듯하다. ‘노’라면서 카일이 손을 흔드는데 헤일리의 눈에는 마구 흔들리는 엄지 손가락이 돋보인다.
“저기 초록색 건물 보이죠? 저게 치과에요. 제가 도와 드릴 테니 조금만 힘을 내봐요. 진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노노노노! 토일렛”
카일은 이제 한술 더 뜬다. 얼굴을 찡그리며 왼팔을 움직여 엉덩이에 가져다 대면서 똥이 마렵다고 한다.
“네? 똥이 마렵다고요? 그럼 빨리 걸으셔야 해요. 저도 이 치과 처음이라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헤일리는 입이 바짝 바짝 타 들어간다. 헤일리의 낭패 당한 기분을 아는지,아니면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지, 아니면 이해는 하나 본인의 욕구가 더 강한 건지 카일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버틴다. 아예 왼팔로 헤일리의 오른팔을 꽉 잡고 늘어져서 헤일리의 몸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며 오른팔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만약 바지에 똥을 누면 어떻게 되는 거지?’
헤일리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까마득해 진다. 맨손으로 똥을 치워야 하는 건가? 그대로 택시를 부르면 똥 냄새 난다고 택시 기사가 안 태워 줄 거 같은데, 세차비를 지불한다고 하면 태워줄까? 하필 치과와 쉐어홈은 택시로 50여분 걸린다. 숨이 가빠지고,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한다. 헤일리의 장애인 지원사 직업상 가장 드라마틱한, 영원히 잊지 못할, 어쩌면 트라우마가 될 순간이 벌어질 것인가?
헤일리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쉐어홈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카일의 캐릭터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내 중심가 한복판에 있는 치과 진료 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자체가 이미 문제였다. 헤일리도 할 말은 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치과인 줄 알았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멜버른의 시내 중심가 한복판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의 치과 특진의들이 모인 공립치과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무런 준비없이 가볍게 나선 발걸음이었고, 치과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현실 자각이 왔다. 불안이 높은 카일은 이미 번잡하고 시끄러운 거리, 수많은 사람들과 차들에 압도당해서 불안이 이미 적정선을 넘었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맞는” 말, “이성적인” 말, ‘현실적인’ 말을 해도 모두가 튀어나간다. 귀 자체가 막힌 느낌이 든다.
카일은 힘들다며 아예 길가의 벤치에 주저 앉아 버렸다. 헤일리는 동료 지원사 파올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세상에, 불쌍한 헤일리. 네가 카일을 데리고 치과에 갔다고? 카일의 치과 진료 지원은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신입인 네가 갔어?”
“나 대로 한복판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야. 여분의 속옷이랑 옷이랑 장갑도 없는데 바지에 똥 누면 나 어쩜 좋아?”
“헤일리, 카일은 그냥 벤치에 앉아 있으라 하고, 빨리 치과에 달려가서 휠체어 빌려서 카일을 휠체어에 태우고 화장실로 이동해.”
헤일리는 미친 듯이 달렸다. 일상적으로 에너지 레벨이 아주 낮은 헤일리는 이미 기력이 소진해서 허리가 반은 굽은 채로 달렸다. 휠체어에 앉은 카일을 밀며 또 다시 달린다. 식은 땀을 쭉쭉 빼는 헤일리, 제때에 볼 일을 마치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앉은 카일, 카일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해맑은 인사를 건넨다. 마치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헬로우! 헬로우! 난 카일이야.”
치과 진료는 십분도 안 걸렸다. 자상하고 친절하고 인내심 많은 전문의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카일은 채 일분도 안 되어서 입을 닫고 일어나려 했다. 대충 몇 번 시도한 의사는 아주 잘했다면서 다음에 또 만나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헤일리, 난 멋진 사람이지?”
“(영혼 없는 목소리로) 네. 그렇지요.”
“카푸치노?.”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며) 네. 집에 가면요.”
“초콜렛 비스킷?”
“(들릴 듯 말듯) 원하시는 대로요.”
“오늘 저녁 뭐야?”
“(모르지만) 피자요.”
“(또 다시) 카푸치노?”
“네.”
“(또 다시) 비스킷?”
“네.”
카일과 헤일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택시 기사가 묻는다.
“넌 이런 질문에 하루에 몇 번을 대답해야 해?”
“안 세어 봐서 몰라. 끊임없이 해.”
“난 도저히 이런 일은 못할 거 같아.”
“집에서는 좀 덜해. 불안하면 더 심해지고.”
십분 진료를 위해 헤일리가 오늘 십년 치 스트레스를 다 받은 사실은 유사한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알 게다. 헤일리는 직감한다. 내일부터 며칠 간 몸살이 날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다시는 카일의 치과 진료 지원은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