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새 학년, 반 편성 과정을 소개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여름 방학(12월 20일부터 시작)이 바짝 다가왔다.
지난 주에 교사들의 새 학년 담임 배치는 학부모들에게 예고되었고, 방학식 날에 아이들의 반 배정만 공지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 프렙(초등 1학년 전 과정으로 초등학교에 편입되어 있음)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6개월 전부터 매달 한 번씩 학교에 와서 적응 기간을 거쳤고, 재학생들도 이미 내년에 공부하게 될 교실에 가서 새 학년 적응 기간을 마쳤다.
호주의 새 학년 반 편성은 매년 10월 중순 경, 교장이 보내오는 메일로 시작된다.
메일의 내용은 반 편성 시 학교에서 고려하는 사항들과 절차 등을 안내한 후, 우선적으로 특별한 도움이나 배려가 필요한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요청사항을 받는다. 보통 2주간의 기간을 주고 학부모가 직접 교장에게 전자메일을 보내거나 면담을 요청할 수 있으며 모든 내용은 비밀이 보장된다.
초등 교실은 학교에 따라 교사의 구성 방식이나 학급 구성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예로, 소강당에 두 학급이 공간을 나눠서 공존하기도 하고, 신입 교사가 오면 경력 많은 교사와 두 반을 통합해서 팀 티칭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한 학급을 두 담임이 요일 별로 나눠서 맡기도 하고, 한 학급만 두 학년 통합(5,6학년이 한 학급으로 구성)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학급은 동일학년으로만 구성되기도 한다. 교사의 인력 수급과 학교의 사정에 따라 해마다 조금씩 변하는데, 한국 교실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다양한 시도들이 작은 학교 중심으로 일어난다.
학급의 짜임새가 다양한 만큼 아이들의 개별 맞춤에 대한 요구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발달이 무난하고 사회성도 좋고 학교의 교육과정을 잘 따라가는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경험의 기회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일년 동안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 바로 ‘새 학년 반 편성’이다.
예로, 청각이 예민하거나 산만한 학생을 두 학급 통합 교실에 넣으면 아이는 일년간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시달리거나 집중을 더 방해 받으니, 인원이 적은 반에 배치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새 학기에 친구 맺기로 학교 생활이 어려운 학생이라면 친한 친구 한 두 명을 같은 학급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런 절차가 있다고 해서 무리하다거나 이기적인 요구를 할 수도 없고 대부분 상식적인 선에서 요청을 한다. 어차피 최종 결정권자는 교장이고, 학부모의 요구사항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한도에서 편의를 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장에게 전자메일을 보내면 다음날 메일이 접수되었다는 답장을 받는다.
나는 매년 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교장 찬스’ 정기 사용자다.
아들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 학급 편성에서 교장에게 부탁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물론 학교의 이런 노력들이 학교에 대한 불만제로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예산이 필요하지도 않고 교사들에게 별도의 대단한 자질을 요구하지 않는 ‘경청의 시간’이 갖는 장점은 실로 대단하다.
우선, 학교가 학부모를 교육활동의 동반자로 대우하니 신뢰감을 갖게 하고, 특히 학교로부터 고립되기 쉬운 적응이 어려운 아이를 둔 학부모들에게도 소속감과 환대를 느끼게 해준다.
더군다나 이런 기회가 ‘장애 진단을 받은 경우’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학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교에 오랫동안 근무해 본 교육자라면, 진단은 받지 않았으나 학교로부터의 배려가 절실한 학생들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고,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쭉 존재 할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접근은 ‘사회적 배려나 친절’은 ‘장애아동들’ 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타인을 대하는 기본 자세로 공유하고 인식해야 할 가치임을 은연중에 확산시킨다.
교육기관이 ‘일대일 맞춤식 교육’과 ‘아동에 대한 배려’를 장애아동에게만 좁은 의미로 한정하면 자칫 장애아동을 ‘시혜적 혜택을 받는 존재’ 란 울타리에 가두고,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쉽다. 더불어 그런 교육환경에서는 ‘경계에 선 다양한 아이들’을 품어 낼 토양을 키워내지 못해 사각지대로 내몰고, 각자 타고난 다양한 재능의 학생들을 오롯이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곳의 사소해 보이나 의미 있는 접근이 고맙다.
연말이 다가오자, 한국에 사는 지인들의 고민이 날라온다. 학교 생활을 힘들어 하는 초등 자녀의 새 학년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담임 교사나 교장 선생님께 상의해 보라고 권유하자,
“아직 한국의 교육은 멜버른처럼 친절하지도 섬세하지 않아. 너도 교사였으니 잘 알잖아.”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