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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데이미 Dec 15. 2020

질서와 정연

 어질러진 환경에 취약한 나는 의자 위에 걸쳐둔 옷이나 책상 위에 흩어진 종이처럼 힘없이 널브러진 사물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심약한 인간이다. 그깟 거 치우면 그만이지 않나 싶지만 집은 생활의 동선에 따라 흐트러지기 쉬운 공간이고, 몸을 움직여 얻은 마음의 평화는 채 반나절이 안돼 끝나버린다. 치우면 몸이 힘들고 안 치우면 정신이 힘든 청소의 딜레마. 


 누구와 살든 청소담당은 언제나 나일 거라는 예감이 들고, 내 성격의 어떤 결함이라고도 보이는 강박 때문에 고생을 자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남들과 분배하려는 생각은 애초에 때려치웠다. 그러나 한 번씩. 체력이 고갈되면서 순간적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자각이 확 하고 들 때면 물건을 원위치시키느라 쓰인 내 인생의 일부가 아깝고 조금은 억울해지고 만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같은 수고를 반복하는데 그게 발전이나 성장의 형태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허무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 청소기가 닿는 곳마다 한결 매끄러워지는 바닥의 짜릿한 촉감에 흥분해버리면 잠시 잠깐 밀려오는 허무쯤이야 깔끔하게 쓸어버릴 수 있다.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일단 집 청소 하나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고 있다는 단순한 만족감이 밥 잘 먹은 자존감처럼 든든하게 차오른다. "소설 쓰기처럼 결과가 예측이 안 되는 일을 할 때는 요리처럼 결과가 즉각적으로 보이는 일을 한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제자리 맴돌기에 불과해 보이는 청소를 마친 뒤면 러닝머신에서 내려온 듯한 상쾌한 보람을 느끼며 매일 제자리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며 더럽지는 않게 살고 있지만. 집안 정리의 수준이 성에 안 찰 때가 종종 있다. 기준을 높게 잡아봤자 힘든 건 나니까. 하루 일정을 소화하기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치워놓고, 적당한 잡동사니가 나만의 기준으로 배열된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생활의 흔적이 배인 살림집의 정리에는 깔끔함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 냄새나는 집도 정겹고 좋지만 어떨 땐 사람 냄새 안 나는 완전무결의 청결함과 흐트러짐 하나 없는 정렬을 보고 싶어 진다. 예를 들면 이제 막 인테리어 단장을 마친 집 사진 같은 거. 아니면 새로 오픈해서 공사현장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다소 삭막한 카페나 옷가게 같은 데도 좋다.  옷가게 입구 중앙 즈음에 반듯한 네모 모양으로 차곡차곡 접힌 남방 및 니트 코너, 호텔 욕실에 도르르 말린 수건, 편의점 냉장고에 줄지어 선 음료수 등.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 썼을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상태를 볼 때면 정리에 대한 로망이 남의 공간에서나마 충족되고는 한다. 

 

 질서 정연한 상태는 인간적인 것과 거리가 먼 완벽주의가 아니라
무엇보다 인간적인, 인간의 품이 많이 들어간 노고의 현장이다. 
내가 바라보는 이곳에 누군가의 마음이 노동의 형태로 바뀌어 놓여 있다는 것.
나에게는 그게 늘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한 사람의 주도하에 만들어질 수도 있는 질서와는 또 다르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질서에는 또 다른 류의 인간미가 깃들어 있다. 버스 정류장에 일렬로 길게 늘어선 줄이나 횡단보도를 침범하지 않고 자기 선을 지키는 차들, 우측통행을 지키는 사람들. 한번 스쳐 지나가고 말 사람에게 별 감정 없는 규칙 준수로나마 무언의 배려를 건넨다는 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뜻한다. 그 기본을 다수의 사람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키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길을 걷고 신호등을 건너고 전철 타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해서 칭찬할 일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내는 동작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나에게는 그게 손흥민의 공격 슛이나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악셀을 수많은 군중들이 나눠 연습한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우리의 노력을 모두 합치면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선수들이 보면 화내시려나)

 

  평소의 우리는 아주 작은 습관 하나라도 좋게 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결심과 노력을 하고 끝끝내 실패하던가.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공공의 질서를 위해 들인 습관은 왜 그렇게 흔하게 무시되고 마는지. 아직 모두가 서로를 위한 습관에 길이 든 건 아니고(때론 나도 그렇고) 종종 기분 나쁜 일도 벌어지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지키려고 애쓰는 중이라는 게 헬조선을 헬조선으로 남아있지 않게 한다. 어쩌다 소동이 일어나면 그게 뉴스에 실릴 정도로 뉴스에 실리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식이 무언의 기준이 된 사회인 것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종종 길바닥에 흔한 돌멩이 취급을 당하지만 실은 너무 밝은 땅에 내리는 바람에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별 같은 구석이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지키면서 출퇴근하고 거리를 거닐고 운전을 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공공의 별이 될 수 있다.






닭꼬치가 먹고 싶다기보다는 일렬로 말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눈길을 끌어서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사진 출처 - www.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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