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때 남편과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수족을 못쓰셔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고...
갑자기 목구멍이 탁 하고 막히더니 입맛이 없어졌다.
곧 병원으로 가겠노라고 하고 친언니에게 연락을 하니 언니가 병원으로 대신 갈 것이고, 남편이 언니대신 우리 아이들을 보고, 나는 예정대로 근무를 하러 갈수 있는 상황으로 정리가 되었다.(항상 우리 집 아이들을 보느라 교대근무를 하는 이모, 할머니 군단이다)
다행히 남편이 방학이라 아이들을 보게 되었고, 아이들을 봐주는 언니는 병원으로 갈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수족은 마비이지만 정신은 괜찮고 말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아빠와 요즘 살짝의 냉전 중이라 막막함과 동시에 분노도 잠시 느껴졌다. "그러게 왜 매일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드시는 거야?" 하고 말이다.
퇴근을 하고 병원으로 갔다. 요즘 냉전 중인 아빠는 나에게 바쁜데 왜 왔냐고 하시며 아침에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고 하고, 정신은 완전히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왼쪽 편마비에 뇌경색이고 시술이나, 수술은 안 해도 될 정도라 입원하고 약물과 재활치료를 병행하면 된다고 한다. 아는 게 병이라고 우뇌에 손상이 있었겠다~하며 다행히 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고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삼킬 때는 고개를 숙이고 드시라고 말하고 "정신을 무장하고 얼른 쾌차하시라고!" 말씀을 전해드리고 왔다.
아빠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대화가 잘 통해서 무엇을 하면 아빠가 좋아하실지 마음에 들어 하실 지를 잘 알아서 무료하실 것 같아 노트북을 병실에 갖다 드리고 왔는데, 이렇게 아빠와 친하던 내가 왜 아빠와 이렇게 사이가 멀어졌을까? 내심 아쉬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일전에 부모코칭교육을 받았을 때 부모가 자녀에게 여러 가지 유산을 넘겨주는데 절대로 넘겨주지 말아야 할 유산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신의 배우자의 흉을 자식에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털어놓는 배우자의 욕은 결국 자녀에게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가스라이팅이며 상대배우자를 혐오하게 만드는 일종의 편 가르기라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가 아빠의 흉을 많이 보았고 세뇌하듯이 "딸은 엄마 편이야"라는 말을 엄마, 아빠에게로부터 동시적으로 듣다 보니 어느새 나는 엄마 편이 되었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를 미워하게 되었다. 아빠 무릎에서 놀던 나는 십대가 되어 아빠와 멀어졌다. 서글펐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해질 수 없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하게 된 것 같다.
오늘 엄마의 전화를 받았을 때 아빠가 크게 다치거나, 뇌졸중으로 말을 못 하시거나 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는 찰나의 상상을 했다가 아빠가 의식도 멀쩡하시고 대화도 잘 나눌 수 있어서 그리고 시술이나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참으로 하늘에 감사했다. 아빠가 이번에 생활습관도 바꾸시고 음식도 잘 챙겨드시면서몸이 회복되어 살아있는 이 귀한 시간들을 더 소중하고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흔에 딸을 낳았고, 아빠도 마흔에 딸을 낳았는데 그게 바로 나다. 늦은 나이에 낳은 자녀가 얼마나 이쁜지 나는 안다. 그 이쁜 딸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 드리고, 나 또한 40년 뒤에 내 몸이 아플 수도 있으니 건강관리도 잘하고 내 자녀들과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들을, 후회 없는 시간들을 보내야겠다.
"아니, 우리 아빠가 뇌경색이라니!!" 오늘도 하늘이 무너질듯한 일이 생길뻔했지만 너무나도 감사하게 무탈하게 오늘밤 잠을 청할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