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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철 Dec 16. 2022

혁신학교탐방

거제 둔덕중

좀처럼 모두 모이기가 어려운 교사 연구회인데 시간이 되는 분들이 모여서 통영 기행을 가기로 했다. 독서기행 겸 경남 통영을 갔다. 바쁜 일정이라 선생님들께서 수업이 끝나고 우리 학교에서 모여서 나의 차로 이동을 했다.


어제 미리 부식자재는 시장을 봐 둔 터라 시간을 따로 들일 필요가 없었다. 해가 어둑해서 출발을 해서 통영에 도착하면 7:30이 넘어선다. 예전에 찍어둔 구글 포토에 있는 지역별 검색으로 통영 중앙시장 횟집에 전화를 걸어뒀더 18시에 영업 종료라 하는 데 그래도 우리가 오는 시간까지 기다려 주신다고 했다.


연구회 전원이 못 가고 대신 옵저버로 통영에 정통한 국어 선생님괴 여행전문가를 모셨다. 국어 선생님은 오랫동안 혁신을 주도하셔서 장관상만 7개를 품고 계신 분이다. 같이 여행하면서 우리에게도 많은 인사이트를 주신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맛난 저녁도 멋진 곳에서 베풀어 주셨다.


회를 받아서 바로 숙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통영 야경을 찍는 명소로 갔다  가장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와 앵글을 탐색한 후 그 장고로 갔다. 그곳이 충무교라는 곳이다. 그 아래에서도 그 다리 위에서도 보는 풍경을 한참을 있다 보니 배 고프다는 원성이 여기저기 들린다. 배가 고플 때는 모든 음식들이 맛있다


통영 충무교의 야간 촬영의 묘미는 갈지(之) 자의 구불구불한 길이다. 왼쪽 편 아래로 가서 차를 주차시키고 다리 쪽으로 걸어오면 다리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다리 한가운데서 저 쪽을 바라보면 이러한 구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시장이 만찬이다. 대전을 떠나 통영으로 가면서 중앙시장 회 시장에 전화를 걸어뒀는데 다행히도 그 시간까지 기다려 주시면서 회를 가지런하게 맛있게 준비해주셨다. 매운탕거리도 준비해주셔 달라고 부탁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맑은 지리탕으로 맛있게 먹었다. 5인분 분량으로 6만 원이면 넉넉했다. 

다음 날 동이 터기 전에 일어날 수 있는 분들은 해돋이를 보러 가자고 했는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깨운다고 했다고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무작성 미륵산으로 출발을 했다. 미륵산 정상으로 가려면 미래사 절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미래사라는 절 앞에서 미륵산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찾지 못한 이유가 가로등 불빛도 없고 그렇다고 그 시간에 등산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미래사 앞에서 타에 타고 기다리기를 30분, 조금 날이 밝아 오면서 걸을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유튜브와 블로거를 참고하면서 비슷한 코스를 검색을 해보았다. 이쪽은 초행길이라 도저히 엄두도 나질 않았다. 통영을 왔는데 숙소로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미륵산 정상에 서면 다도해가 모두 눈앞에 들어오고 여기에 봉화대가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산꼭대기에서 이미 올라온 등산객 몇 분이 도시락을 드시고 계셨고, 어떤 한 분은 해가 뜨고 있는 데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를 간절히 하고 계셨다. 나도 기도를 하였다. 기도는 인류평화부터, 그다음 우리나라, 우리 학교, 그리고 우리 가족, 나중이 나이다. 늘 그러하다. 

우여곡절 끝에 미륵산 정상을 오를 수가 있었다. 461미터 정상에서 본 통영항은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히 됨을 알 수 있다. 다도해에 인접해 있는 섬들만 해도 570개가 된다고 한다. 산림청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이다. 이 미륵산 정상은 통영의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올라 올 수도 있다. 

하산을 하면서 내려오는 길이 무척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언젠가 대전지역 선생님들과 1박 2일 진로, 진학 연수가 있었는데 그때 묵었던 숙소가 이 근처의 언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통영 마리나 산책길도 유명한데 그 앞에는 이미 동백꽃이 불을 피웠다. 

하산을 하면서 김 선생님께 무와 다시마를 넣고 탕거리와 함께 푹 끓여 놓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른 선생님께는 밥을 해달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도착하자마자 탕을 간을 하고 계란으로 호박 부침도 하고 말이도 하여 아침을 그렇게 먹고 정리하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 나서면서 전화를 걸어 충무김밥집에 주문을 하고 그 가게를 지나치면서 충무김밥을 픽업해서 거제 둔덕중학교로 나섰다. 약속한 10시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했지만 변 선생님께서 이해해주시라 생각했다. 


토요일에 학교를 나오시는 것이 쉽지도 않을 실 텐데 흔쾌히 토요일에 학교 방문을 허용한 점과 우리가 출발하기 며칠 전에 불쑥 연락드려 방문을 허락을 요청한 것도 많은 결례이지만 그러한 형식을 충분히 이해해주실 것 같아 연락을 드렸는데 우리의 방문을 받아 주셨다. 또한 통영항에서 한산도를 들어가는 것보다는 둔덕 쪽에서 한산도를 들어가면 시간과 비용이 단축된다는 꿀팁도 알려주셨다. 


둔덕중 인스타그램참고자료

페이스북에서 변지원 선생님의 프로필을 20대의 젊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면 어떤 분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던 찰나였다. 전화로 도착을 알리고 교실에서 기다렸는데 웃으시면 우리를 맞이 해주셨다. 학교 토요일 학부모와 학생의 강습으로 무척이나 바쁘게 생활하고 계셨다. 


학부모님께서 디자인을 하시는데 이 가방을 디자인했다고 했다. 우리 학교에서도 많은 디자이 전문 선생님이 계시는데 이런 디자인은 왜 생각을 못했을까? 의문을 가져본다. 색상, 디자인, 로고 등의 섬세한 생각과 배치, 심지어 가방끈까지 이쁘다는 생각을 함께 간 선생님들께서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이 가방에 기념 타월을 한 장씩 넣어 주셨는데 그 타월도 아기자기한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는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학교 건물, 학교 내부, 교실, 책상과 의자, TV, PC, TABLET 등으로 보아도 여느 평범한 농어촌의 학교와 다름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활동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점점 생기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변지원 선생님과 페이스북 친구(페친)이었기에 학교의 활동 상황을 보면서 내심으로는 " 그냥 열심히 학교와 행사를 홍보를 하다보다"라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포스팅하는 내용이 올릴 때마다 행사내용과 결과물이 달랐다. "이건 뭐지?"라는 의문과 함께 시간이 나면 이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연락으로 이어져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대부분은 의문은 동영상으로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 이 학교는 학교 폭력이 한건도 없다. 상담실이 거의 휴게실 수준이다. 


둔덕중학교 초기 학교 전경(학교 홈페이지 자료 화면 캡처)

1971년의 학교의 뒤편을 보면 민둥산이다. 초가집 사이로 연기가 나는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고 당시에는 땔감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기 때문에 어느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한 집에 5-6명의 식구가 있던 시절이라 아래와 같이 시골이라도 학생들이 많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둔덕중학교도 한 학년에 1개의 반을 이루고 있었다. 초기의 폐교 및 통합의 위기로부터 이제는 도시에서 오히려 이 학교로 서로 오려고 이사를 오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으며, 온 마을이 학교를 살리는데 열심이다. 학교 앞의 식당, 카페, 그리고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을 포함해서 온 동네가 아주 단단히 혈연으로 이루어진 1차적 집단인 게마인샤프트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학생 모집이 하루 만에 마감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들에게 설명을 하시는 동안에도  변지원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학교에 대한 애착심과 열정이 품어져 나오고 있는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실제로 이 학교의 학생들이 그러한가 가 궁금했다. 학생들과 인터뷰하는 것을 득했고, 학생들에게도 인터뷰를 공개해도 된다는 동의를 얻어서 촬영을 해보았다. 실제로 학생들은 학교가 재미있고, 학교에 나와서 수업을 하는 것이 기다려지고 토요일 학교를 오면 너무 신난다고 한다. 만족도는 100% 이상이고 수업이 너무 재미있고 선생님들도 너무 잘 가르치신다고 한다. 진로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도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의 진로의 방향을 선택 해서 학생 본인이 직접 준비해온 진로를 택해서 다른 큰 도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기에 후회 없이 이 학교를 나온 것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 전경 홈페이지 화면 캡처

동백꽃이 아스발트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 떨어져 있는 한산도길. 

충무공의 신화적 사업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 때 특히나 노산 이은상의 충무공 연구가 이러한 사업의 결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군인 정치시대의 명분은 이순신에게 찾은 듯하다. 충무공 사당 앞에 그 사업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토요일 점심 간식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어 짧은 인터뷰를 했는데 예상 밖의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 바라는 바가 아무것도 없고 학교와 선생님이 너무 잘해주신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부분에 있어서 질문을 했는데 놀라웠던 점은 변지원 선생님께서는 학교 전체를 구석구석 다 파악하고 계셨다. 학교의 교육과정, 학부모와 교사의 소통, 마을공동체, 학교 협동조합, 학교 특색사업 등의 구체적인 내용과 사업의 전반에 대해서 꿰뚫고 계셨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변지원 선생님의 탁월한 능력과 안목 그리고 모교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열정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시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럽다. 자칫 선생님을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해서 가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더 앞섰다. 물론 선생님 개인적인 발전이나 큰 꿈을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곳에서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충분히 지니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 오셨던 우리 독서연구회 그룹 선생님들은 너무 좋은 학교를 견학하고 간다는 감상을 잊지 않으셨다. 이 학교를 황급히 나와 변지원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마을 앞에서 배를 타고 한산섬을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여 건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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