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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Feb 26. 2024

어머님, 거긴 남자화장실이에요

장을 보다가 화장실이 급하다면? 도서관으로 가세요

   주변 시장 방문객들이 우리 도서관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시장 손님들이 화장실에 대해 문의하면 상인들은 우리 도서관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근처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기에 화장실(특히 큰 일)을 쓰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변기와 관련된 사건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튼, 다양한 화장실 방문객의 목적은 모두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몇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 유형: 급하다 급해!! 무슨 화장실이든 그냥 가까운 데로 간다!


   주로 어머님(할머니)의 비중이 높은 유형으로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일단 직진부터 한다.  공교롭게도 도서관 출구와 가장 가까운 화장실은 남자화장실인데, 남자화장실이라고 벽에도, 문에도 크게 파란색 사인물을 붙여 두었지만 그런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 남자화장실은 1층이고 여자화장실은 1.5층이라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기에 무릎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은 한시라도 빨리 급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문을 벌컥 열었다 민망한 상황이 생긴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도서관 입구에서 일단 직진하는 어머님을 보게 되면 유심히 눈으로 뒤를 좇은 후 남자화장실 문을 열기 전 "어머님, 거긴 남자화장실이에요!"라고 말한다. 물론 말을 해도 그냥 무시하고 남자화장실로 들어가 버리는 분도 있지만 대개는 이 멘트까지 들었으면 두리번거리며 여자화장실을 찾는다. 그때서야 내가 조심스레 다가가서 화장실 위치를 알린 후 계단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어르신이 계단을 무사히 모두 올라가는 걸 본 후 내 자리로 돌아간다.



두 번째 유형: 화장실 가유~ 말하고 가는 사람


   이 유형은 단골손님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안녕하세요 같은 첫 만남의 인사 대신 화장실 좀 쓸게유~ 하며 화장실로 직행한다. 이미 화장실 위치를 알고 있기에 다른 안내가 필요 없다. 나도 이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지 않아도 되고, 이들은 방문 목적인 화장실을 바로 이용할 수 있어 서로에게 효율적인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 두리번거리며 눈치 보다 책을 꺼냈다 자리에 잠깐 앉았다 다시 눈을 굴리며 화장실로 갔다가 부리나케 나가는 사람


   이 유형은 많진 않지만 가끔 방문하는 젊은이들이나 바로 화장실을 가는 게 민망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화장실을 들어가기 전 까지는 도서관을 계속 어슬렁거리다 화장실에서 일을 해결한 후에는 바로 도망치듯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갈 때 마음이 다르다곤 하지만 나는 들어갈 때 더 급한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이들은 다른 사람의 눈이 신경 쓰이는지 나가는 걸음이 더 빠르다.



    이제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화장실을 이용하러 온 건지, 책을 보러 온 건지 대충 구분이 가능한 경지에 오른 것 같다. 내가 처음 이 도서관에 왔을 때는 정말 순수한 화장실 이용객의 비중이 높았지만 1년 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화장실 이용객뿐 아닌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체류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에 나름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제 계약만료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오늘도 이곳에서 쌓아갈 추억을 기대하며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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