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순간을 만끽하자
"@#$%$^%^&"
"네?"
"@#$%#$# 내가 가수 OOO 팬인데 #$%!@^"
처음 보는 어르신이 도서관을 두리번거리다 데스크로 와서 말을 걸었다. 한국어로 말하는 것 같은데 처음 들어보는 억양에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10분 동안 사오정이 된 듯했으나 자세히 들어보니 모 트로트 가수의 포토북과 CD를 우리 도서관에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러 오신 거였다. 연예인의 포토북은 기증받을 수 없다고 안내드리고, 폐기해도 괜찮다면 가져오셔도 된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그 말이 못마땅한 듯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단호한 거절에도 지치지 않고, 여기에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놔둬도 되는지 물었고, 그것 또한 안 된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도서관에서 배포하는 순간, 사람들의 인식 속엔 '이 물건은 내가 낸 세금으로 구매한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걸 어디 기증하면 되냐고 재차 묻는 바람에 그건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가끔 정중히 안 된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기증을 하겠다고 하는 분들을 만나면, 정말 기증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힘 들이지 않고 무료로 처분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르신이 사랑하는 그 트로트 가수를 모두가 사랑한다면, 그 가수의 앨범과 포토북이 모두에게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원치 않는 선물을 억지로 주는 건 받는 사람에게도 벌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수년 전 한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갑자기 뜬금없는 공지가 내려왔다. 사내에 모 가수의 앨범을 배포하니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경영 부서에 얘기하라는 안내였다. 그 가수의 앨범은 USB 형태로 발매되었고, 빨간 스티커에 흰 글씨로 '19세 미만 청취 불가'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평소 그 가수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 가져가지도, 어떤 의사를 내비치지도 않았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 중 그 가수의 팬인 사람이 앨범을 대량 구매했고, 나중에 이 앨범을 사회에 기증하려고 했으나 기증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버리긴 아까워 결국 사내에 배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나와 직원들의 얼굴엔 떨떠름한 표정이 가득했다. 회사에서는 그 앨범을 다 배포해서 소진했는지, 아니면 결국 폐기했는지, 그 직원에게 다시 돌려줬는지는 알 방도가 없다. 앨범을 많이 구매했지만 팬 사인회에 당첨이 되지 않았던 걸까? 앨범을 구매할 시점엔 그에게 선물이었지만, 배포하는 시점에서 수북히 쌓인 앨범은 그 직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아무리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 소중함을 느끼는 내 마음이 처음과 같지 않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그 소중한 것들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장면을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다. 마음이 흘러가는 과정은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다. 밀려난 자리는 금세 또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 나의 '소중함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내 마음에서 잘 정리하고, 내 세계로 다가온 새로움을 온 마음을 펼쳐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다시 채워진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