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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Mar 09. 2024

민망한 우연을 마주하는 마음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시면 부끄러워요


   어린 시절 엄마와 동네 목욕탕에 갔을 때, 가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와 그의 어머니를 함께 마주칠 때가 있었다. 나를 가릴 수 있는 게 없는 그 장소에서는 어떤 만남도 모두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그 조그만 아기가 벌써 이렇게 컸냐면서 아래위로 훑어볼 때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 넘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중학생 때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에는 목욕탕에 갈 일이 없었지만, 여전히 목욕탕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면 불편하고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여기는 작은 동네라 도서관 이용자들을 출퇴근길 또는 식사를 하러 나갔을 때 만나는 일이 종종 있다. 우리 집 근처가 아닌 도서관과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건 흔하다. 도서관이 아닌 밖에서 만나는 모든 우연이 다 민망하지만 가장 난처했던 순간은 지역의 축제에서였다.



   나는 도서관이 있는 곳과는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살지만 같은 지역이라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날은 지역 콘텐츠 홍보를 위해 축제 부스를 차려놓고 콘텐츠를 소개하며 돌림판, 뽑기 등등 여러 즐길거리를 갖춰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었다. 축제를 방문한 여러 젊은이들 사이로 한 아주머니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사라졌다. 잠시 부스 방문객들을 응대하느라 그 얼굴을 잊었는데 사람들이 가고 한숨 돌릴 때쯤 되니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를 계속 주시하는 눈길이 느껴졌다. 정말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 주인공이 우리 도서관에 자주 오는 이용객 중 한 명이었다는 걸 고개를 돌려 확인했지만 그쪽도 내가 그 도서관 직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나를 계속 쳐다본 것 같다. 근데 그 눈빛이 너무 부담스럽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피하고 싶었다. 반팔을 입고 있었지만 으스스한 기분에 절로 닭살이 오소소 돋는 느낌이었다.




   나는 도서관 안에서는 도서관 직원이지만 밖으로 나가면 그냥 시민12345 역할을 맡은 한 명의 엑스트라 배우다. 특별할 것도 없고, 주어진 대사 하나 없다. 그저 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거나 배경이 될 뿐이다. 동네가 워낙 좁은지라 출퇴근길에 익숙한 얼굴들을 종종 만나곤 하지만 인사는 하지 않는다. 내가 회사에 있을 때만 고객이지, 밖에 나오면 그들도 그냥 시민123456일 뿐이다. 나는 나의 무대에서 정해진 이름과 역할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 도서관의 주 고객인 어르신들은 밖에서도 만나면 반가운지 아는 체를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모르는 척했다간 무안해질테니 나도 같이 인사한다. 이런 상황은 당황스럽진 않지만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나는 나의 배역을 가지고 무대에 오른 배우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업로드하는 사람, 그게 지금 이 시간의 내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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