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10년 차 분노로 시작한 재린이의 경제적 자유 달성 일지
아니 이 월급 주고 이렇게 부려먹는다고!
그날도 어느 날과 다름없는 그런 날이었다.
아침마다 직장에 가기 위해 탔던 직장 셔틀버스는 마치 일종의 인력사무소에 끌려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셔틀버스를 타고 내리자마자 각자 분주하게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죽음의 빡센 스케줄을 거치면서 자꾸만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말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본디 비교를 하면 안 되지만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된다. 나보다 월급도 훨씬 많이 받는 사람들이 항상 먼저 퇴근한다. 나는 급여도 쥐꼬리만큼 받고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어야 할까!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자꾸만 이런 일들이 켜켜이 쌓이기 시작하니 분노의 씨앗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분노의 씨앗은 차마 누군가에게 풀 수 없는 것이다 보니 쌓이고 쌓여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찾아온 고통은 식도염이었다. 직장인의 3대 질병 중 하나인 식도염! (두통, 식도염, 허리디스크)
그렇게 식도염이 찾아왔고 그나마 찾아온 주말마저 병원을 찾아 줄을 서고 약을 받기 급급했다.
그나마 셔야 하는 주말에 병원 방문과 함께 3~4만 원씩 깨지는 병원비를 지출해야 하는 슬픔을 마주해야 했다.
이건 아닌 듯싶었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직원이면 뭐 하나. 나만 이렇게 죽어나는데.
그래서 나와 항상 야근을 하며 회사에서 저녁을 먹다 보니 절친까지 된 내 동기와 이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서로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점점 회사를 다니다 보니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업, 마케팅 업무를 하며 실적을 잘 쌓았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이 늘어나자 나는 바로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우스운 게 어디 믿을 구석이 있다 보니 자소서가 더 잘 쓰였다. 심지어 나는 나름 대기업에서 소위 들어만 봐도 아는 유명한 금융사, 오픈마켓들과 여러 마케팅 업무까지 진행한 바 있다. 그런 내용을 자소서에 줄줄 써 내려갔다. 그렇게 대학시절에는 백날을 써도 통과하기 어려웠던 자소서가 이렇게 쉽게 통과되는 거였나? 싶을 정도로 바로 여러 기업에서 자소서 합격 소식을 받았다. 소중한 직장인 휴가를 아끼고 모아 모아 인적성과 면접을 보러 가는 데 사용했다. 인적성과 면접을 보러 간 곳 모두 붙었단다! (오예!)
면접도 술술 말이 뚫렸다. 면접 준비도 시간이 따로 없다 보니 퇴근 후에 잠깐 하거나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준비했다. '정 안되면 기존 회사로 돌아가면 되지' 이런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서다 보니 합격 소식이 연이어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입사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내가 다른 회사로 가게 됐다는 소식을 덤덤히 전하자 회사 사람들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고 놀란 눈치였다.
이래서 진짜 나가려는 사람은 말없이 조용히 준비해서 나가고, 나가겠다고 맨날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오래 회사를 다닌다는 말이 없는 말은 아니었나 보다.
인사팀에서 급하게 면담을 소집했다, '아니 그동안 힘들어할 때는 신경도 안 쓰더니 이제 와서?!'라는 마음에 조금은 고소한 마음도 들기도 했다. 상무님은 나를 본인 방에 불러들여 이유를 물어봤다.
'잉? 맨날 야근하고 12월 31일에서 새해 넘어가는 날에도 회사에서 자료를 만들었는데 이유를 물어본다고?!'
의아했지만 이미 마음이 완강해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내가 안 나갈 거라고 생각한 게 더 황당했다. 인사팀은 내가 있는 부서가 워낙 힘들다 보니 편한 부서로 보내줄 계획이었다고 했다. 궁금하니 드러나보자 싶었다. "거기가 어딘가요?"
곧이어 인사팀에서 뱉은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신규사업 TF팀>! 모두가 꺼려하는 곳이다. 신규사업이 얼마나 힘든지는 이미 회사에 소문이 퍼져 다 알고 있었다.
진짜 배신감이 들었다. 나는 우리 회사를(이제는 우리 회사가 아님) 좋아했다. 처음 합격했을 때도 설렜고, 교육을 받는 내내도 행복했다. 동료들도 좋았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일도 즐거웠다. 지나친 업무 쏠림 현상, 야근, 실적압박 등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와중에도 떠날 때까지 사실 함께 지낸 동료들이 눈에 밟혀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야근으로 고생한 나를 더 힘든 팀으로 보내려고 했다. 그때 나의 분노가 1차로 느껴졌고 후회 없이 그렇게 회사를 떠나갔다.
왜 내가 호구 같지?
그렇게 새로운 회사를 들어갔다. 새로운 회사에서 기존에 전혀 해보지 않은 업무를 맡게 됐다.
낯선 업무이지만 그래도 이전 회사보다는 업무 강도가 훨씬 나은 편이었다.
여기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렇게 잘 적응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이전 회사와의 경력까지 차곡차곡 쌓여가는 시쯤.
나는 이제 의문이 들었다. 어딜 가든 그래도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나름 일도 무난하게 잘하는 편이고,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런데 왜 항상 나는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할 때가 많고 왜 내 월급은 쥐꼬리만 한데 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은 일찍 퇴근하고 나만 남아있는가?
식도염은 당연하거니와 이제는 직장인 만성질병, 허리디스크까지 왔다.
눈도 침침해지는 느낌이다. 이 모든 만성질병에 대한 치료비는 월급에서 나간다.
그러다 보니 내 월급은 점점 텅장이 되는 느낌이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그렇게 2차 빡침이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어딜 가든 일이 많은 나를 보며 점점 내가 호구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끔 일이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는데, 진짜 먹고살기 힘들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일도 힘들고,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동료도 만나다 보니 그동안 사람이라도 좋아서
참았던 직장생활도 지치기 시작했다.
한날은 출근을 하려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들어가는 지하철에 뛰어들면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마저 들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