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인생 아는 척하는 에세이 #1
문득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다
평상시와 똑같이 점심을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날씨도 따뜻해졌겠다, 배도 부르겠다,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 근처를 걷던 중 젊은 학생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찰나의 순간, 잊고 있던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고등학교 때 함께 했던 친구들. 그때는 분명 친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서서히 멀어지면서 다른 이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대학교 때도 간혹 만나기도 했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연락이 끊겼다.
카카오톡에는 그들의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굳이 연락할 일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들어간 인스타그램에서 그들의 삶이 업로드되어 있으면 지나가면서 보는 수준이지, 일부러 찾아서 연락하지는 않게 된 친구들이었다.
'그때는 참 친했었는데...'
이상하게 과거의 인연들과는 관계가 미화돼서 즐거웠던 순간, 재밌었던 순간 그리고 미안했던 순간만 떠오른다. 함께 공부했던 기억, 점심시간에 웃으면서 서로 장난쳤던 추억, 친구가 공부로 힘들어했는데 옆에서 조금 더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순간들.
모두에게는 그런 관계들이 꼭 하나씩은 있다.
그때 참 좋았지, 시절인연
괜히 감성에 젖었는지, 식사도 했겠다, 날씨도 따뜻했겠다, 나른하고 심심했었는지 그날 이상하게 용기를 내서 대학까지는 접점이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건넸다.
"안녕, 오랜만이야! 예전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잘 지내지."
이 무슨 전 남자 친구 같은 대사인가! 써놓고도 다소 민망했지만 그래도 친했으니 어떤 대답이 올까 설렘과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 요새는 어디에 있어~?"
친구도 반기면서 연락을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생각보다 서로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어서였는지 대화는 몇 마디를 넘기지는 못했다.
"우리 다음에 꼭 한 번 보자!"
"그래, 연락해~!"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 됐다. 언젠가는 볼 것 같지만 당장은 시간을 내서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친구에게 '다음 달 언제 되는데, 언제 볼래?' 이렇게 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다음은 향후 2~3년 내에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대화는 상당히 긍정적인 경우였다. 연락했다가 그 친구의 어색함과 상대적으로 귀찮다는 느낌에 '앞으로는 그냥 연락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이제는 연락하기에는 너무 멀어져서 나 스스로도 연락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느낀 경우도 있었다.
거리가 멀어져 예전만큼 자주는 못 보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꼭 보는 고등학교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그 친구가 한 말이 기억난다.
"고등학교 때 밥도 거의 매일 같이 먹고, 놀러도 자주 다녔는데 최근에 연락했더니 굳이 만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가 느껴졌거든. 참 친했는데 속상하더라고. 속상해서 다른 친구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시절인연>이라고 그때 함께 했으면 된 거니 놓아주라고 하더라고."
<시절인연> 특정 시간과 상황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을 의미한다.
당시 그 말에 옳다구나! 맞장구를 쳤다.
"맞아, 특정 시기마다 함께 하는 인연이 있는 것 같아. 그때 함께 했으면 그 시절만으로도 의미 있는 거지."
그렇게 말했던 나였다. 그렀던 내가 갑자기 홀로 감성에 젖고, 추억에 빠져 순간 시절인연에 집착했던 것 같다. 참 남의 일은 편하게 말하면서 내 일이 됐을 때는 감정에 취해 <시절인연>이었던 것을 몰랐구나! 싶었다.
불교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시절인연>으로 만났던 친구들은 그 시기 나와 함께 했던 인연이었고, 그 인연의 끈이 서서히 사라진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마음 아파할 이유는 없다.
인생 각 시기에는 시기에 맞는 시절인연이 오고 간다.
인연이란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것이기에 붙잡고 싶다고 억지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시절, 함께 했고 즐거웠던 그런 인연이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길을 걷다가, 혹은 어떤 여행지에서 함께 했던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땐 참 좋았었지.'라며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으로 시절인연들을 자연스럽게 보내주자.
내가 그러하듯, 그들도 우리를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보내주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