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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Jul 13. 2020

누구나 한 번쯤, 나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싶다

브랜드가 뭔지 1도 모르면서, 내 브랜드를 갖고 싶은 요상한 1인



'을'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장사 '쌍갑포차'

농사를 유지하기 위한 장사 '지리산소풍'


창업,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템이다. 어떤 아이템이냐에 따라 장사의 승패가 좌우된다. 그런데 나는 어떤 아이템이 돈이 될 것인가를 궁리하기보단, 나에게 장사가 왜 필요한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장사를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했다. 왜냐하면 장사가 1순위가 아니라, 나에게 1순위인 농사를 위한 장사였기 때문이다.


농사를 유지하기 위한 장사라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배혜수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쌍갑포차>의 장사 아이템은 단순히 보면 포차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단순한 포차가 아니라 포차 이모 월주의 카운슬링과 그 한을 풀어주는 서비스가 실제 아이템이다. 사주 카페나 상담 카페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따온 건가? 그렇지만 한을 풀어주는 서비스까지 갖춘 곳은 없으니 쌍갑포차의 장사 아이템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월주가 장사를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아이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10만명의 한을 풀어줘야 했다. 상대방의 한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술 한 잔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월주는 포차 장사를 한다.


나는 소규모라도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서 살고픈데,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장사가 병행돼야 했다. 농촌에 연고가 없고, 농사에 대한 기술 없이 농촌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반농반X'의 생활 방식을 권하곤 한다. 농사가 아닌 다른 X(X는 한 가지가 아닐 확률이 높다)들을 병행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수입도 마련하고, 다채로운 경험과 역할을 해 내며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특별한 능력이나 경력이 없는 내겐 이 X가 별로 없었다. 농촌에서 농사가 아닌 X가 더 다양해져야 하고, 특히 최소한의 돈벌이가 되는 X가 있어야 했다. 나는 X 중에 장사를 집어 넣었다.


농사짓고 사는 삶을 위한 장사.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부르긴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위해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하고 판매하는 방식이 구현되는 장사여야 했다. 구체적인 상품 개발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엉뚱한 것에 매몰되어 시간을 보냈다. 바로 '브랜드'였다.





나만의 브랜드를 욕망하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이템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나는 그런 아이템을 개발하진 않고, 브랜드에 매달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장사를 하고 싶은 적은 없지만, 나만의 브랜드에 대한 욕망은 있었던 것이다. 나만의 브랜드...!!!


브랜드와 관련된 각종 책이나 자료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상품이나 서비스가 없이 브랜드에 관심이 생겼고, 기업의 브랜드가 아니다 보니 내가 하고자 하는 브랜딩은 좀 달랐다. 그러다 차츰 내가 갖고 싶은 '나만의 브랜드'는 '나를 브랜딩 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를 브랜딩 한다는 것은,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사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매일의 반복되는 작고 사소한 과정들을 눈에 보이는 성과로 빚어나가는 일이다. 남들과 다른 '매력'의 눈뭉치를 조심스럽게 굴리는 일이다. 그 눈뭉치가 비탈을 만다 커지는 과정은 하늘에 맡길 일이고. 나는 오늘도 다만 내가 하는 일에서 재미와 몰입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박요철 브런치 <나를 브랜딩 한다는 것은> 중 / https://brunch.co.kr/@aiross/395






아이템 전에 브랜드 ㅋㅋ


"브랜드란, 제품의 생산자 혹은 판매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자들의 것과 차별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독특한 이름이나 상징물의 결합체다. 현대 들어 브랜드는 단지 다른 제품과 구별할 뿐만 아니라 제품의 성격과 특징을 쉽게 전달하고 품질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려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문화적 중요성을 가지는 상징체계가 되었다."  (정경일, 2014, 브랜드 네이밍 중)


브랜드가 곧 상품이고, 서비스인데 구체적인 상품이나 서비스 없이 브랜드를 꿈꾸다니! 워낙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엉뚱한 작업. 난 그저 내가 좋아하고 하고픈 것들을 정리해갔다. 사실, 잘하고 좋아하는 아이템일 때 장사도 재미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고 하고픈 것들을 살펴보는 작업이 아이템 발굴과 전혀 관계없지 않았다.


#1. 농사
농사를 기반으로 하는 삶을 꿈꾼다.
농사를 통해 내 생활에 자급자족하는 부분을 늘려가기 위해서이고,
자연 가까이 살며 가능한 실천들을 통해 조금이라도 지구에 피해가 되는 부분을 줄이기 위해서이고,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 살면서 경험하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의심 많은 내가 의심 없이 먹기 위한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다 보니
한두 가지 품목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일반적인 농사가 아니라,
시기별로 다양한 작물을 조금씩 키우는 농사를 짓는다.


#2. 지리산
언젠가 소풍 왔던 지리산에 반해서 나는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다.
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여전히 신비로운 지리산.
어떤 이라도 품어줄 것 같은 지리산.

지리산에 소풍 왔을 때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소풍'이라 표현했던 시가 떠올랐다.
삶 자체가 소풍이라면,
내 소풍은 최대한 자연 가까이에서, 지리산 같은 산 가까이에서 즐기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3. 소풍
소풍(逍風):
소풍은 즐겁다. 멋진 풍경도 있고 맛난 먹거리도 있고, 보물찾기 게임도 있다.
일상에서 소풍 같은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리산으로의 소풍은 특별하다.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제철 먹거리들은 보물과 같다.
소풍 온 사람들이 지리산의 보물들을 찾아가고,
소풍 오지 못한 사람들도 지리산에 소풍 온 듯 느끼게 하고프다.

소풍(小豊):
큰 풍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풍년(小豊)도 있다.
작은 땅에서 다양한 농산물을 키우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품종을 적은 양 생산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도 있다.
화학농약이나 비료, 제초제 없이 농사짓고,
가능한 한 환경에 해를 적게 주는 방식의 농사는 규모가 작을 때 구현될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작물들을 돌려짓기 함으로써 땅의 황폐화를 막고,
농약을 치지 않음으로써 여러 가지 생물체들이 공존하는 땅을 만들 수 있다.
크기가 작고, 생산되는 양은 적지만,
해와 비와 바람에 의해 자란 흙의 맛을 품은 채소들을 통해 풍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그 작은 풍년을 함께 나누고프다.



추억과 상상과 의지와 욕심과... 등등이 수없는 낙서와 메모로 토해 나왔다. 마침내 <지리산소풍>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이 이름이 곧 브랜드라고 정했다. "지리산에 소풍 온(소풍 가고픈) 사람들에게 나의 농사 작업물에 기반한 지리산의 보물 같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 하는 것이 지리산소풍이라는 이름이 앞으로 하고픈 일이라고 목표도 정했다.  이 목표에 걸맞는 모든 것이 아이템이 될테니, 이제 아이템 발굴은 끊임없는 지리산소풍의 일감이 된다.





내가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 나의 브랜드, 지리산소풍


브랜드 이름을 정한 뒤, 나는 구체적으로 브랜드 정체성(Brand Identity: BI) 정립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이런 일은 해 본 적도 없고,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검색에 들어갔다. 단순 디자인 회사가 아니라, BI 개발 작업을 해 본 경험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처음엔 BI 작업 같은 건 대기업만 한다고 생각해서 엄두를 내질 못했다.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일 듯했다. 그런데 조사를 하다 보니 요즘은 BI 개발의 필요성을 인지한 소상공인이나 개인이 많아졌고, 프로젝트의 규모나 애플리케이션의 종류, 기간에 따라서 그 비용은 천차만별임을 알았다.  


BI 개발 작업을 하면서 알았다. BI 개발은 단순한 디자인 작업이 아니라, 브랜드를 만들려는 사람의 정체성과 철학이 핵심이 된다는 것을. 나의 지리산소풍은 곧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긴 브랜드가 된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은 지금까지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생각해 보는 작업이었다. 자고로 브랜드란 유명해질수록 좋고, 유명해지라고 만드는 것인데... 너무 내가 투영된 결과물이라 그런가? 나는 내 브랜드가 유명해지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ㅋㅋㅋ 그저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하고픈 일들을 만들어 나갈 때 이 브랜드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단추가 되면 좋겠다.





먹거리와 이야기를 짓는 브랜드, 지리산소풍의 탄생기!

밀리의 서재에서 <작고 특별한 공방을 열었습니다>로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 보세요  :)

https://www.millie.co.kr/h4/event/brunchbook-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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