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 Mar 29. 2022

브로콜리

야X채소이야기#01.



분류(과명) : 십자화과 *양배추, 콜리플라워, 케일, 콜라비와 같은 종
원산지 : 지중해 연안
이용부위 : 화채류(꽃봉우리)


생각 #01. 월동 브로콜리

처음 내 밭을 가지게 되었던 봄, 이것 저것 다 심어 보고 싶었던 나는 야심 차게 양배추와 브로콜리 모종을 심었었다. 그 결과, 몇 개 심지도 않은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자라는 내내 젓가락을 들고 매일 두 번씩 애벌레를 잡아야 했다.


나름 농사를 짓겠다고 서울을 떠나 농촌으로 왔을 때 원칙이 몇 가지 있었다. 농사란 것이 어쨌든 땅의 힘을 빌려오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농사'를 짓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1)비닐멀칭 하지 않는다

2)제초제 사용하지 않는다

3)병해충 방제를 위해 화학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4)화학비료, 퇴비를 사용하지 않는다

5)경운하지 않는다


그때만 해도 50평 밖에 되질 않았고, 오로지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였기에 이 원칙을 모두 다 지켰다. 지금은 농사로 먹고 살 돈을 벌어야 하기에, 농사짓는 평수가 늘어나 '비닐멀칭 하지 않는다'는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이제 좀 보급되기 시작한 생분해 비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원칙들을 모두 철저하게 지키던 첫 해였기에 양배추와 브로콜리 모종이 심긴 며칠 후부터 배추흰나비 애벌레들의 무차별 공격을 당하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었다. 농약도 쓰질 못하고, 다른 방법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냥 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초록 애벌레가 보이면 젓가락이나 손가락으로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배추와 브로콜리의 수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 후 알아본 봐에 의하면 봄에 심는 양배추와 브로콜리는 배추흰나비 애벌레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고, 나같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사로는 결과가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젠  애벌레들의 공격이 현저히 떨어지는 초가을에 심는다. 요령이 생겨 혹시나 모를 벌레 침입을 피하기 위해, 모종을 심고 나선 활대에 망을 씌워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보호해 주기도 한다. 심은 해 겨울 전 모두 다 수확하거나 뿌리를 뽑아 밭을 정리하지 않는다. 쓸쓸한 겨울 밭에 남겨둔다. 이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월동 작물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초봄, 밭에 먹을 채소가 거의 없는 시기에도 수확할 것이 있다. 월동 브로콜리는 특히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있다. 월동 브로콜리는 일반적인 브로콜리와 달리 색깔이 다양하다. 브로콜리 봉우리는 겨울을 난 부분(붉은빛이 돈다)과 봄에 자란 부분의 색에 차이가 있다.


농약을 쓰지 않고, 벌레를 이길  없다. 그러나 피할  있다월동 브로콜리 농사는  인생 지침 중 하나가 됐다.





#생각 02. 브로콜리 너마저(broccoli, you too?)

브로콜리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이 밴드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다. 인디음악을 듣고 그 공연을 보러 다니며  살았던 세월이 지금껏 농사지은 횟수보다 (아직은) 훨씬 긴 인생이다. 그래서 막연히 양배추, 콜라비, 케일 같은 채소들 보단 (같은 부류 중) 브로콜리를 단연 애착할 수밖에 없다.


2008년 12월에 발매된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로 알게 된 이 밴드가 2010년 10월에 정규 2집 <졸업>을 내자 나는 그냥 평생 이들의 팬이 되기로 했던 것 같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 나는 어느 시골 밭에 있지만, 내가 추억하는 넌 어디에 있든 행복하길. 널 잊지 않을게. 브로콜리 구이를 안주 삼아 맥주 마시는 이 밤, 오랜만에 그들의 노래를 들어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