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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May 04. 2017

2017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오다

Jeonju IFF에서의 3박4일(4/28-5/1)

- 1일 차(4/28)


비행기가 1시간 30분이나 지연되었다. 하는 수 없이 <마조리 프라임> 영화를 취소했다. 기억-사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예매한 영화였는데 본의 아니게 기존의 가치관을 유지하게 되었다. 광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광주에 사는 은주가 보고 싶어졌다. 우리가 만날 수 있을지는 월요일 당일에 결정된다. 1월 말에 구입한 우산을 3개월 만에 전해받을 수 있을지 역시도 그 날 결정된다. 광주는 두 달 전에 왔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띠었다. 왜 비싸도 성수기에 여행을 가야 하며, 해당 지역에 대해 느끼는 관광객의 감정이 시기에 따라 충분히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완연한 봄이 된 광주는 더이상 낡고 황량한 잿빛이 도는 곳이 아니었다.


전주는 가기 힘든 곳이다(집→제주공항→광주공항→광주종합버스터미널→전주고속버스터미널→전주영화의거리). 게스트하우스의 같은 방에 묵게 된 인연들은 기자(39), 대화를 통해 공무원으로 추정(29), 대학생(21)이었다. 나는 대학생 선영이와 바로 친해져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건 잘한다)과 혼자 밥먹는 것(이건 못한다)을 면할 수가 있었다. 마치 애초에 처음부터 친구와 함께 온 기분이었다. 선영이와 영화 시간표를 대조해봤으나 겹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선영이는 자신은 대중적인 취향인데 반해 나는 마이너 취향이라고 했다. 나는 출연 배우, 영화의 국적, GV, 인기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줄거리만 보고 소신껏 영화들을 선정했다. 때문에 나는 나와 같은 영화를 볼 사람들에 대해 진작부터 설렘을 갖고 있었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갖는 정체 모를 사람들에 대해 마구 샘솟는 애정은 여행 속 낭만의 한 부분이었다.


세로 자막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계단 내려가기>는 성공적이었고, <혁명을 하려던 삶의 절반은 무덤에 묻혀버렸다>는 괜찮았다. 둘 다 내가 생각했던 영화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절대 별로이진 않았다. 밤에 배가 고파서 쌩얼의 선영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수많은 상점이 시커먼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문을 연 식당은 교촌치킨 or 유럽식당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선영이가 먹고 싶었던 치킨은 안타깝게도 12시까지 영업이었기에 우리는 하는 수 없이(나는 분명 배려했다) 프랑스 음식을 파는 유럽식당으로 갔다(이미 행복했다). 그곳에 있었던 순간은 정말 하루 최고의 순간이었다. 나는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 때만 입 밖에 나오는 "행복하다"는 말을 했고, 흡사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와 유사했다! 미드나잇이 되자 내 앞에 동경하는 세계가 펼쳐졌다. 프랑스에서 13년을 산 멋진 언니가 먼저 연락처를 주었고 정말이지 분위기에 취했다. 하지만 나의 몸빼바지는 내가 사는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현실을 뜨문뜨문 암시해주고 있었다.


- 2일 차(4/29)


병신미라는 것이 폭발했다. 같은 방을 쓰는 멤버들과 다 함께 왱이집에 가서 아침을 먹은 뒤, 숙소에 돌아와서 기자분과 공무원분을 떠나보내느라 영화 상영 10분 전에 뛰쳐나갔다. 문제는 아직 티켓 발권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한심한(CGV에서도 발권해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나는 메가박스까지 뛰어가서 표를 받고 CGV로 향했다. <월드시네마스케이프:마스터즈 단편2>는 하필 무성영화여서 좌석에 앉은 나는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또한 단편 세 편 중 한 편만 골라 보는 줄 알았는데 세 편 연속으로 보는 것이라는 걸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때문에 시간 조정에 실패한 나는 <토크클래스2>를 가야해서 마지막 단편을 보다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토크클래스도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예매했고 갔는데 나 빼고는 다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은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가 큰 영화였다. 그러나 나는 불꽃놀이에 홀려서 다른 길로 새는 바람에 1분을 늦어서 예매한 좌석에 앉지 못했다. 영화를 보다가 나는 옆에 있는 지프지기에게 여기가 8관이 맞냐고 물었고, 그 말은 상영관에 잘못 들어와서 다른 영화를 보게 된 것만큼이나 내가 생각한 것과는 영화가 너무도 다르다는 의미였다. 실망을 뒤로하고 선영이와 관객파티에 갔다. 라이프앤타임이라는 밴드가 와서 공연을 했는데 나는 그 밴드를 몰랐지만 아무렴 상관 없었다. 역시 나는 클럽보다는 공연장이라며 그리고 공연하면 밴드가 진리라며 아주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선영이가 아니었더라면 관객파티가 있는지도 모르고 숙소에서 토요일 밤을 흘려보낼 뻔했다.


공연이 끝나고 <미드나잇시네마2>를 보러 갔다. 영화+맥주+새벽의 조합에 흥분해서 티켓을 발권받아야하는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매 영화마다 상영 직전에 긴급해지는 걸 보면 내 자아 안에는 스릴을 즐기는 녀석이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첫 번째로 본 <안티 포르노>는 최고였다. 일본 영화를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지금껏 본 일본 영화 중에서 단연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세를 몰아 왠지 <뱀파이어 소년>도 나를 만족시킬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영화를 보는 동안 상영관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수십 차례 들었다. 내가 소신껏 골랐다는 영화들은 전부 자극적이고 어두운 음지의 세계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 것들만 계속해서 보다보니 마침내 <뱀파이어 소년>까지 봤을 때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진 것을 느꼈다. 나는 심신의 안정을 위하여 차마 <죽음의 게임>까지 볼 수가 없었다.


- 3일 차(4/3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의 도입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니체는 영원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평소 마시지도 않던 커피를 어제 마시는 바람에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잔 나는 돌연 관계에 대해 혼란스러워졌다. 기자분과 공무원분이 나간 자리는 네덜란드인 두 명이 채웠고, 오늘은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다. 사람이 떠나간 자리는 외로울 새도 없이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다. 매일 다양한 낯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게스트하우스의 큰 장점이나, 나는 원체 넓고 옅은 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터라 허망함이 몰려왔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을 다음번에도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사막, 바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과연 내가 원한 영화가 이게 맞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 기억엔 영화가 끝나고 박수가 나오지 않은 유일한 영화였다. 마이너 취향인 내가 고른 영화 중에 그나마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잡아 끈 영화가 <녹투라마+사라 윈체스터,오페라의 유령>이지 않을까 싶다. 상영관이 가장 컸으며 잔인한 장면은 여전히 나왔고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작품이 실망스러웠다. 선영이도 떠나고 혼자 남은 방에는 새로운 두 명이 들어왔다. 그 분들에게는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그 무엇도 물어보지 않았다. 돌연 아침부터 밀려온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항하고자 하는 오기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혼자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왔지만, 막상 누가 옆에 있다가 없는 게 나를 이렇게 심란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한편으로 누군가를 계속 기다리며, 친구와 잠들기전까지 통화를 했다.


- 4일 차(5/1)


처음보는 얼굴이 그새 또 한 명 늘었다.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단박에 지프지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프지기랑 친해지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 있었는데 한 방을 쓰게 되어 기뻤다. 자고 일어나니 우울함은 사라지고 그녀와 대화를 하며 활기를 되찾았다. 이번에 협찬 받은 간식이 너무 맛이 없다는 둥 영화제 뒷편의 얘기를 듣고 질문하며 나는 그녀와 헤어지기 아쉬워서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함께 있으니 같은 지프지기인 줄 알고 식당에서 계산할 때는 할인도 받았다. 별 것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재밌었다. 마지막 영화인 <행복한 날이 곧 올 거야>를 보러 갔고, 이 영화가 끝났을 때 우리는 우연히 다시 마주쳤다.


오전에 영화보는 것은 힘들다. 마지막 영화이니만큼 졸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찌 밥을 먹고 가만히 앉아서 큰 액션없는 영화를 보는데 졸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건강한 신체의 어떤 당연한 작용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번 영화도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졸아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졸지 않았어도 이해를 못했을 것 같았다. 바로 광주로 넘어가기가 아쉬워서 <100 films, 100 posters> 전시회를 보러갔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나로써 그곳은 큰 위험이 되었다.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손에 포스터 하나씩은 꼭 구입하고 나갔다. 주변 사람들에게 엽서를 써서 나눠주고 영화를 알리고 싶다는 욕망과 과연 내가 엽서집을 다 쓸만큼 많은 이에게 막상 엽서를 쓸 것인가의 충돌. 나는 사지 않았고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지프지기 이벤트팀을 제외하고 나보다 패션이 독특한 사람은 딱 한 명 본 것 같다. 금발에 퓨전한복을 입은 분은 넓은 상영관 안에서도 머리 색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지프지기들을 보니 영화제 스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돈과 경험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나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지 않는다). 영화제는 단기간에 많은 영화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축제이다. 비록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고생했지만, 250만원으로 <델타 보이즈>라는 영화를 만들어서 한국경쟁 대상을 받은 고봉수 감독처럼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촬영하면서 틀을 잡아갔다던 <계단 내려가기>의 휴 깁슨 감독처럼 무작정 부딪혀서 얻는 것들이 좋았다. 올해는 뭐든 더 많이 부딪혀서 배우고 싶다.


번외) 은주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이쯤되면 우산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은주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있었다면 사지 않았을 우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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