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이가 놀러 왔다. 강릉에서 용인까지 와주어서 '강원도와 경기도' 톡방까지 만들어서 다 같이 친구들이 만나기를 계획했다. 목요일 태현이가 도착해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다가 태현이는 작업방에서 우리는 안방에서 잠들었다. 자다가 이제가 엥하고 울길래 보니 몸이 뜨거웠다.
10일 전 (이때가 이제가 120일 막 넘겼었다) 코로나 때도 그랬다. 하루이틀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더니 괜찮아졌었다. 그 뒤로 잘 못 먹고 그랬는데 또 열이 난 거다. 저번에는 당황해서 아이를 깨워가며 물수건질을 했는데 이번에는 노련하다. 약 먹이고 품에서 재우면서 물수건질을 해줬다. 한 시간이 지났나. 37.4도로 떨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가 숨이 파스스스 부서지면서 몸이 떨린다. 가만히 안아주다가 제리를 깨웠다.
"제리야 아기 숨소리가 이상해!"
제리가 아기를 안더니 지금 추워서 떤다고 했다. 아니 열이 나는데 왜 춥지? 열도 떨어졌는데?
다시 재보니 38도를 치고 올라간다. 겁에 잔뜩 담긴 아기가 날 본다. 아 미안해 아가야!
열 경 기단어가 생각나서 무서웠다. 제리가 몇 시간 동안 물수건을 했냐길래 한 시간 했다고 시계를 보니
아 두 시간이다. 일단 119에 전화를 했다. 지금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겁이 나서 일단 전화를 하니 전문의료 상담 센터가 있다고 한다. 네! 연결 부탁드릴게요!
아기가 지금 오한이 오는 거라고 했다. 몸 체온 조율이 되지 않아서 춥다고 느끼는 거라고 따뜻하게 해 주고 발이 차갑냐고 물어셨다. 발가락이 오므라져있고 보라색이다. 아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데 끈 한 줄 낑낑 잡으며 또박또박 묻는다. 담당자분은 열경기가 올 수 있으니 지켜보라셨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여쭤봤다.
오한이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열을 내릴 수 있게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했다.
시간이 사라져 온몸으로 시계의 추가 덕지덕지 붙는 것만 같다. 불안함이 나를 움켜쥐는데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하니 몸이 차가워진다. 제리는 아기를 계속 안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점점 숨이 돌아온다고 했다.
이제 다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침대에 앉아 얼굴을 감싸 눈물을 뜯었다.
미지근한 물수건이라고 몇 번을 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열을 식힌다 생각했는지 수건이 차가웠다.
찬 수건을 4개월 아기에게 갖다 대고 잠도 푹 안재운 건다. 미안해 정말
해열제를 먹고 잠들었는데 제리는 지금은 푹 자야 한다고 했고 나는 열을 식혀야 하니 물수건질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아기가 잠들어서 열이 더 올라 무슨 일이 생기면 어째!
제리는 이제가 우리에게 알려줄 거라고 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리 말이 다 맞았다.
물수건은 따땃- 미지근할 정도여야 하고 몸을 닦아주면 증발하면서 열을 식히는 거라고 했다.
아이가 해열제를 먹고 잠들면 그대로 재우고 혹시 불편한 게 있으면 아이가 낑낑거리거나 울 거라고 했다.
(미국에 있는 의사친구는 앞이마를 차갑게 해도 된다로 이야기했다. 매번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미국과 한국의 방법과 문화차이 때문에 곤란할 때가 많다.)
결국 나는 밤새다시피 목요일을 보냈다. 금요일 오후 2시에는 마케팅 컨설팅이 있는데 정신이 없어서 도망치고 싶었다. 시간을 미뤄야 하나 하는데 제리가 다녀오라고 한다. 이제가 기운이 없지만 놀려고 하고 있고 무슨 일 있으면 병원에 데려간다고 했다. 머리도 제대로 묶지 못하고 시간 맞춰 컨설팅을 하러 갔다. 밥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친구랑 전화를 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친구다. 의료계 쪽에서 일도 하고 그런데 그 친구가 6개월 전 아이가 열이 나는 건 흔하지 않다고 하는 거다. 심장이 들썩인다. 머리의 모공까지 씩씩 거리는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애써 집중했다. 클라이언트가 약사 셔서 다 마무리하고 나오는 길에 여쭤봤다. 그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래! 괜찮겠지! 끝나고 나오는 길 바로 제리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가 아파도 일을 한다는 게 마음이 불편했지만 또 너무 붙잡고 있을 필요 없다. 제리가 돌본다고 했으니까
"제리야! 덕분에 잘 마무리했어. 아기는 괜찮아??"
"이제가 지금 39도라서 병원가 보면 좋을 거 같아"
"뭐?!?!"
재빨리 제리 쪽에도 택시를 잡아서 보냈다.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택시 타고 가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린다.
병원에 도착하니 제리랑 태현이가 보인다. 발갛게 오른 이제가 입술이 퉁퉁한채로 안겨있다. 귀여워...
문 열고 들어가니 바로 간호사 선생님이 약국 내려가서 약을 먹으란다. 이미 전화해 놨으니까 먹이면 된다고 했다. 제리가 이제 열이 39.7도라고 했다.
미칠 거 같다. 아이를 안고 1층으로 내려갔다.
6개월 전 아기가 38도가 되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기운이 괜찮으면 꼭 해열제 안 먹어도 된다고 하고.. 쳐지는 건 아니길래 38.5도가 되면 해열제를 먹였었다. 그런데 39.7도라니 미칠 거 같다.
약국에서 어화둥둥 아이를 안으면서 약을 먹이는데 몸이 너무 뜨거워서 내 목구멍도 뜨겁게 조여져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니까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둥실둥실 아기 약을 먹였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으로 올라가는 길. 마른침을 삼켜가며 정신을 차려본다. 온갖 시간이 쏟아진다. 이제가 태어나고 3일 뒤에 입원한 중환자실. 줄들이 덩실덩실 달려 있던 인큐베이터. 어머니 어떻게 하실 거라고 묻는 사람들. 여러 영어 단어와 숫자를 몇 번이고 돼 여쭤보며 적었던 메모들. 입원을 결정했던 시간과 울기만 했던 도로 위. 짧은 면회시간. 그때 선생님이 열나는 게 제일 위험하다고 했는데 지금 열이 난다. 39.7도
*다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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