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1회 차 상담 후기
접시그릇도 코 박고 있으면 그릇에 있는 무늬가 전부다. 여긴 왜 이렇게 굴곡지고 진득한 물감인가. 왜 파란색인가 엉엉하다가 잠깐 뒬걸음질쳐서 보면 그냥 간장종지에 있는 그림일 뿐이다.
뭘 그렇게 헤쳐나간다 착각하고 머리를 박고 울었을까.
창호네 큰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아기가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밥을 잘 못 먹는다고 하니까 언니가 시간 되면 통화하자고 하셨다. 늦은 저녁에도 시간을 내어주심이 항상 감사해서 정말 고민될 때만 연락을 하게 된다.
"아이가 쉬고 싶은데 엄마가 불안함에 감정적으로 하는 거예요"
"아기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기회, 그 엄청난 힘이 있는데 엄마가 개입하면서 평균의 사람을 만드는 거야"
언니는 열은 올랐다 내렸다 하는 거며 무서운 건 마른 열이라고 했다. 땀도 안 나고 해열제를 먹여도 떨어지지 않는. 땀도 나고 약먹이면 떨어지는데 다시 오른다고 하니 언니가 아기가 바이러스랑 싸우는 거라고 했다.
그렇다. 제리가 한 말이랑 같다.
왜 그런데 제리가 약보다는 지금 쉬어야 할 때라고 하면 그렇게 서운하고 불안할까
왜 내가 사랑하는 제리의 말은 잘 듣고 믿지 않으면서 별별 이유로 그게 맞는지 증명하려고 할까
"남편이 되게 잘하시네. 이럴 때는 남편 말을 믿어요"
아이 열은 떨어졌고 아직 힘든지 잘 먹지 못했다. 장하다 아기야. 그렇게 하나씩 해내가는구나.
또 크고 하나의 면역력을 얻는구나 너가. 아기는 잘 크는데 내가 불안하다고 떡칠을 하고 있다. 손바닥에 진흙을 잔뜩 묻혀서 우느라 눈을 박박 닦아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질퍽질퍽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시간이 뭐냐고 손발짓하다가 진흙탕으로 끌어당긴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가 된 거 같다.
이번에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추천받아서 지원금을 받았다. 건강하게 마음을 이겨내야지 하고 신청했는데 지금 필요하다. 이 불안함에 내가 잠식되고 싶지 않다. 다들 첫쨰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병원 간호사 선생님도 내 모습을 보고 되려 귀여워하시기도 했다. 그래 지금 이건 지나가는 거구나. 누구든 겪는 시간이며 준비되어 엄마가 되는 건 없구나...
그래도 건강하게 지혜롭게 하고 싶다. 사랑하는 제리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나를 절실하게 돕고 싶다.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니. 예전에는 짜증이 나면 왜 화가 나는지 실증이 나는지 이유를 알았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말 제리 말대로 오줌똥칠을 하는 아기를 옆에 끼고 아무도 들이려고 하지 않을걸 지도 모른다.
이 아이의 대단한 설레임을 안다. 나도 크나큰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지금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다. 호르몬이다 첫 엄마라고 넘어가기엔 제리와 엄마에게 선 넘는 짓을 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멋진 나를 이렇게 방치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 친구 건너 건너 누군가가 산후 우울이라고 하면 어머 놀랐다가 마음이 다 헤아려지지 않았다. 이전에도 자기 관리를 못 했던 건 아닌가? 운동하고 밝게 지내면 되지 않나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겪어보니 설명이 되지 않는다. 큰 이유도 모르겠고 극복할 방법도 알겠지만 그게 안된다 그냥 안되고 하고 싶지도 않다. 운동해라 너를 위한 시간을 보내라는 말도 과제처럼 느껴지고 알면서도 안 하는 시간과 눈빛이 심장을 더 죄여온다.
감기에 걸렸는데 배까지 아프면 병원에 가봐야 한다. 이전에는 기껏 감기 걸리면 목 아팠다가 콧물로 끝났는데 갑자기 살살 배가 아프다면 다른 증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모를 때는 도움이 필요하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에서 상담가능한 리스트를 보내주셨다. 정부지원사업이면 번거로운 거 아닌가 내가 원하는 선생님을 찾기 어려운 건 아닌가 싶었지만 미루면 또 내 마음을 무시하는 것 같다. 리스트를 보고 집에서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곳에 전화를 했다. 몇 군데 전화해 보고 마음에 드는 곳에 가야지 했는데 첫 번째 선생님 목소리가 꽤 적극적이시다. 그럼 한번 상담 오시죠 하는데 영업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주셔야 마음이 힘든 분들이 그나마 억지로라도 가게 되는 것 같다.
만나서 지원사업 절차상 서류를 체크하고 하셨는데 살짝 피로도가 느껴졌다. 별건 아닌데 그냥 이름 쓰고 주민등록번호 쓰는 게 일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이 총 8회 지원인데 그렇게 계약하면 된다시길래 1-2회 해보고 저랑 맞으면 해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인데 주변에서 선생님과 잘 맞아야 된다고 들었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이게 맞을까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피곤할 때 그냥 낮잠을 좀 더 자는 게 좋지 않을까. 운동을 하는 게 나을까 싶다가.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일단 집밖으로 나올 수 있음에 의미를 둔다.
오피스텔을 사무실처럼 쓰는 곳이었다. 처음 만나자마자 마음을 다 쏟아내기엔 모르는 사람이라 경계가 생긴다. 판단할 것 같고 정의할 것 같다. 그런데 뭐 그 사람의 시간을 산 거니 쭉 말해본다. 나를 평가한다 해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엄마나 제리에게 대화를 하면 온갖 감정이 진득해져 대화 흐름이 편하지가 않다.
그러니 남에게 던져본다. 이 감정의 쓰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