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 아빠의 파이팅 넘치는 육아일기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마음껏 표현해 본게 언제일까? 이 글을 쓰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사람 좋은 호인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좋은 건 좋은 거고 나쁜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
그러다보니 일이 많아서 생기는 스트레스만큼이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부탁도 들어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그런데 이런 관계에서 착용하는 가면, 혹은 어느정도의 방어 기재가 가족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편해서인지 그렇게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마냥 사랑스럽고 뭐든지 다 해 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난 잔소리쟁이가 됐다. 따라다니면서 하나 하나 주워라, 버려라, 챙겨라, 잘해라, 조심해라!!! 지금 생각하면 지긋지긋했을 것 같다. 여튼 아이들은 따라주었는데 옆에서 하는 잔소리가 아이들의 습관을 고치게 하거나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잔소리가 없이는 행동을 못하거나 말문을 닫아버렸다. 그 상황에서 나름 방어를 할 수단이었는지 부모와 부딪힐 일을 만들지 않았다.
아들이 셋인 집이라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형이 있었다. 2:2로 할 수 있는 농구, 탁구, 축구, 캠핑, 밤하늘 별보기 등등. 움직임이 큰 여러가지의 활동들을 친구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한국의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고속도로를 타는 것과 같은 것 같다.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차들과 함께 뒤쳐지지 않게 달려가고 그 안에서 역주행하거나 빠져나와서 국도를 타거나 휴게소에 들러서 길게 쉬는 것은 위험 그 자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의 감정과 기분,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끝을 향해서 달려가야 한다. 사실 끝이 어디쯤 있는지는 지금의 나도 잘 모르지만, 여튼 아이들과 뭔가를 함께 할 수 있었던 때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인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각자의 생활에 바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공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사춘기에 접어드는 흔한 청소년들의 일반적인 과정인 것 같다.(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인데 청소년 중 사춘기를 겪지 않는 아이들도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는 한국보다 그 비율이 더 높고...)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지거나 감정의 변화를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럴 때 흔히 쓰는 말이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왜 갑자기 저러는거야?"
속으로 꾹꾹 참고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속시원하게 말하면 좋겠는데 자꾸만 "아니에요"를 반복하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근데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다. 여전히 아빠와 아이의 대화는 단편적이고 난 동네 아저씨 같고... 이 답답함이 언제 깨질지 고민이 많았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난 지켜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이 몇 년이 될지라도 내가 개입해서 될 문제는 아니라는 걸 몇 년에 걸쳐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방법을 써 보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첫째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갑자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목소리는 작아지지 않았다.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그리고 가족들의 일상에 간섭을 하기 시작하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치거나 피했을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민했다. '이걸 막아야 하나?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으려나?'
그런데 상황은 정당했다. 할 말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뒀다. 그리고 둘째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들이 모여서 짜증을 내면 그 상황도 참 당황스럽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냥 뒀다. 잠시 지나면 자기네들끼리 정리가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더 어렸을 때 이랬어야 하는데,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어떤 계기로든 표현을 잘 하지 않던 아이들이 짜증을 내거나 목소리가 내기 시작하면 잠시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제서야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반가운 신호가 아닐까?
가정에서 자신의 묵은 감정과 긴장을 털어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그토록 원했던 모습이 이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