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선미 Apr 01. 2023

2023년 1분기

커피/책/성수맛집/여행

커피

1월은 커피의 달이었다. 그라인더로 말코닉 홈,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라마르조코 리네아 미니를 들였다.


리네아 미니는 중고로 구매했다. 식당에서 썼다는데 호스 상태가 안좋아서 청소하는데 애먹었다. 커버를 따려고 근처 조명 가게에서 긴 드라이버도 빌리고 유튜브를 얼마나 찾아봤는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지금은 깨끗하게 청소하고 잘 쓰고 있다. 오히려 이제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좀 생겼달까. 고장나도 수리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왼쪽부터 해부 당하고 있는 리네아 미니, 세팅이 끝난 리네아 미니, 말코닉 홈과 기타 여러 커피 도구들


말코닉은 캘리브레이션(0점 조정)이 필요한 기종인지 몰라서 사용하는 초반에 애를 먹었다. 리네아 미니가 힘이 좋은 기계이기도 하고, 기존 먹던 원두들보다 약하게 로스팅 된 원두를 내리려다보니 분쇄도를 가늘게 잡아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단계를 낮춰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낮춰도 추출 시간이 안정화되지 않았다. 줄줄 새는 에스프레소를 보면서 '오 이러면 물을 따로 안 부어도 아메리카노가 되겠는데? 이 커피는 에스프레소 skip 아메리카노라고 부르자'라는 동거인의 조롱을 몇 일간 들어야 했다.


조롱을 듣던 시절 썼던 커피 노트 ‘다 망함...‘ 에서 당시의 처참함이 느껴진다


홈 바리스타 클럽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비슷한 사례를 열심히 찾아보고 용기를 얻어 직접 캘리브레이션을 했다. (영상: Mahlkonig x54 calibration) 뭐든 직접 하고보면 별거 아니다. 지금은 중배전 원두는 4단계, 중강배전 6.5단계 정도에서 18g 원두를 36g 추출하는데 29초 정도에서 안정화됐다. 아니 그래도 프로들한테 파는 그라인더도 아니고 가정용이라고 해놓고 0점 조정을 직접 해야하는건 말코닉이 잘못한 것 같다.


다양한 원두들을 사서 내려먹어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요즘에는 로우키에서 우연히 구매한 샴페인 블렌드를 맛있게 먹고 있다. 그냥 커피라는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산 브라질 카라멜라도 중강배전,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중강배전도 한동안 맛있게 먹었다. 특히 브라질 카라멜라도는 특유의 단 맛 때문인지 오트밀크와 잘 맞았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중강배전 원두는 가스가 빠지길 기다리고 있다.



읽은 책

일하느라 읽은 책들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취미로 읽은 책은 이 정도인 것 같다. 권 수도 많지 않은데 그마저도 이슬아, 박완서 작가 책을 여러권 읽었다.


이슬아,『새 마음으로』, 헤엄

이슬아,『가녀장의 시대』, 이야기장수

오은영,『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김영사

박완서,『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세계사

박완서,『나의 아름다운 이웃』, 작가정신

박완서,『박완서의 말』, 마음산책


좀 다양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다르면 다를수록'이라는 생태 에세이, '난처한 클래식 수업 1: 모차르트, 영원을 위한 호소', '명품 가구의 비밀: 르 코르뷔지에의 의자부터 루이스 폴센의 조명까지' 같은 평소에는 선택을 안했을 책들도 사보았지만 책장에서 도통 나올 생각이 없다.


대신 이 목록에 있는 책들은 모두 재미있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이슬아 작가는 일간 이슬아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팬이었는데, 해가 갈수록 더 멋진 글을 쓴다. 가녀장의 시대는 물개박수를 치고 다리를 동동거리며 읽었다. 새 마음으로는 우리 주위의 어른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집인데 구석구석 들어간 사진이 아름다웠다.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순간에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었다.



읽고 있는 책

요즘에는 여러번 읽기를 시도했지만 완독에 실패한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 최성은 옮김, 민음사


여행, 떠남에 대한 에피소드를 엮은 소설인데 방콕의 어지러운 풍경 속에서 읽으면 참 잘 읽히겠다는 잡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닐 뿐 시간을 낸 것 만큼 많이 읽진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위한 여행을 가고 싶다.



성수 맛집

우리 회사는 일주일에 단 하루, 월요일 오후 2시에 출근해서 회의를 하고 저녁을 다 함께 먹는다. 덕분에 성수에 있는 맛집을 몇 개 알게 됐다.


카페

매뉴팩트커피 성수점, 로우키에 가끔 원두를 사러 간다. 매뉴팩트에서는 카멜리아, 로우키에서는 샴페인 블랜드를 최근에 잘 먹었다.


이월로스터스 성수점에 두 번 갔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으니까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는 일이 줄어드는데, 만약 가게되면 필터커피를 마신다. 집에 드립 도구들도 다 있지만 내가 내리면 어쩐지 이 맛이 안나기 때문이다. 게이샤 원두가 블렌드 된 메뉴가 맛있었다. 꽃차나 과일차 같은 느낌이 난다. 가끔 밖에서 마시는 커피는 무난한 맛보다 특별한 맛이 나는게 좋다.


얼마전에 이월 로스터스에서 마신 필터커피 원두


식당

성수에 의외로 두 번 이상 가는 식당이 별로 없다. 워낙 식당이 많으니까 정말 괜찮은 곳이 아니라면 ‘굳이...? 새로운데 가보자’ 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진짜 맛집인걸 보여주는 지표는 지도 별점이나 많은 블로그 후기가 아니라 재방문을 했는지 여부가 아닐까. 두 번 이상 간 곳만 써보겠다!


다로베: 버섯 크림 파스타가 땡기면 간다. 쫄깃하게 잘 삶아진 면과 진한 버섯 크림소스가 잘 어울린다.

스시이치바: 근처 직장인들이 많이 가는 초밥가게. 회덮밥과 치킨가스도 맛있다.

난포: 모던한 분위기의 퓨전한식집이고 묵은지 광어 초밥과 연잎쌈밥이 맛있었다.

쵸리상경: 솥밥집이다. 연어, 스테이크 솥밥이 맛있다.

송흥: 고수, 스리라차 마요가 함께 나오는 닭튀김을 시킨다.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맛인데 사무실로 돌아오면 일을 해야하니까 참느라 힘들다.

송계옥 성수점: 닭 구이와 함께 얼그레이 하이볼을 꼭 곁들어야 한다.

댓길: 큰목살과 계란찜을 포함한 여러 사이드메뉴가 맛있다. 원래 다 구워주는 집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직접 구워야한다.



여행

3.18 ~ 3.19 글램핑

친구들과 글램핑에 다녀왔다. 한 명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고 해서 환송회 겸 나들이 겸 만들어진 여행이다. 용감한 친구는 워홀 막차를 타겠다며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직접 인테리어한 집도 내놓았다.


나와 호주로 가는 친구를 제외한 세 명이 슬램덩크에 꽂혀있었다. 글램핑장에 가기 전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산정호수에 차를 댔다. 친구 하나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불꽃남자 정대만 굿즈를 꺼냈다. 식당에 들어가 밥이 나오면 같이 사진을 찍어야 한댔다. 저 멀리서 늦게 도착한 다른 차 친구들이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친구의 검은 트레이닝 바지 한 쪽에 SHOHOKU(슬램덩크 주인공들이 다니는 북산 고등학교의 원작 일본 이름)가 대문짝만하게 쓰여있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온건지, 북산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온건지.


평균 나이 서른 살들의 더덕구이 정식, 능이버섯 만두전골, 그리고 슬램덩크가 함께한 글램핑은 정신없이 행복했다.


왼쪽부터 할리갈리, 마시멜로우와 빈츠, 산정호수 놀이기구



3.29 ~ 3.30 워커힐 호텔

애인의 직장 찬스로 워커힐 호텔에 하루 묵고 왔다. 클럽 라운지 이용이 포함된 객실이었는데 티타임, 해피아워, 조식까지 야무지게 다 챙겨 먹었다. 해피아워에 다양한 와인을 비교해보며 마시는게 재밌었다.


왼쪽부터 클럽 라운지 해피아워, 스카이야드 야경, 조식


총 4가지 화이트 와인이 있었고, Vivino 라는 와인 어플에 찍어놓은 것을 다시 보니 캘리포니아에서 온 샤도네이를 가장 맛있게 마셨다. 와인도, 커피도 경험해 본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아서 재밌다. 모든게 새롭다보니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역치가 매우 낮다. 쉽게 행복해진다.


Scotto Family Wines 11th Hour Cellars Lot 1883 Chardonnay 2018 California, United States


클럽 라운지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테니스 코트가 보였다. 저녁 7시쯤이었는데 코트에 사람들이 있었다. 1년이 좀 넘도록 테니스 레슨을 받고 있는데, 어디에 놀러가 테니스 코트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다. 갑자기 코트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부러워졌고 꼭 호텔이 아니라 해외에 놀러가더라도 코트만 있다면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는 랠리를 못하니까, 주변 사람들한테 테니스를 많이 전파해놓아야겠다. 일단 같이 호텔에 간 애인부터 설득해서 테니스 레슨에 데리고 다닐 계획이다. 서른 세 살은 뭔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라며 돌아오는 길에 살살 구슬러놨다. 생일 선물로는 테니스 라켓을 사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샹들리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